휴식 에세이
[에세이] 2025년 현충일을 보내며
한결
6월은 호국보훈의 달,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에 대해 빚진 삶을 살고 있는 우리다. 오늘은 군 생활을 하고 있는 경기 포천으로 아들 면회를 간다. 현충일에 군인 아들을 면회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거니와 6월 7일에는 약속이 있어 겸사겸사 면회를 가기로 했다. 지난 번 면회 때는 군인 가족 전용 회관을 예약해 소고기를 맘껏 먹이려 했는데 하필 심하게 아파 달랑 고기 두점 먹더니 토할 것 같다고 먹지를 못하고 차 안에서 잠만 자고 들여보냈었다. 귀대한 아들은상비약을 먹고도 열이 39도 까지 오르고 배탈까지 나서 일주일간 거의 아무것도 못먹고 물만 먹었다고 한다. 군 병원을 가고 사회 의원 진료를 받았다고 하는데 기관지 염이라고 링걸 한 방하고 약만 주더란다
면회를 간 다음 주 뜻하지 않게 주말 외출을 나오게 되어 아침일찍 군부대 앞에서 기다렸다가 바로 포천에 제법 큰 사회 병원으로 내달렸다. 혈액으로 염증검사를 하고 CT를 찍은 결과 폐렴, 간수치 상승, 장염 등 아픈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어서 당장 입원하라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는게 군대다. 일단 진단서를 떼고 귀대시킨 후 아들 소대장님께 이사실을 문자로 넣었다. 사회병원에 가려면 월요일 군 병원에가서 군의관 소견을 받아야한다고 한다. 군병원에서 아들은 사회병원에가서 검사도 제대로 해보고 치료받고 싶다고 또박또박 말했다고 한다. 군의관님의 허락을 받아 집 근처 대학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독감부터 코로나 검사, 심전도 검사, 폐 CT까지 검사를 다했더니 한참 심한 단계는 다 앓았고 지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젊어서 이겨낸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퇴원해서 통원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이유는 요즘은 의사가 모자라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나 긴급한 수술을 요할 겨우나 입원을 시키는 사정이라고 하니 완전히 쾌유한 후 퇴원시키고 싶은데 입원실도 모자라 3일 만에 쫓겨나야하는 과정을 겪고 다시 자대에 복귀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다. 나라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아들들에 대해 아픈 것 만큼은 제대로 치료해주어야하는데 아직도 군 의료체계가 허술한 것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사회 병원까지 나와야하고 저절로 좋아져서 다행이지만 적절한 치료시기늘 놓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현실에 화가 난다. 전역할 때까지 제발 아프지 않으면 좋으련만 늘 부모는 자식 걱정이다.
드디어 먹음직스런 소고기가 나왔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고 고기는 물론, 밥 두 공기에 된장찌개지 지난 번 못먹은 것까지 합해서 우적우적 잘먹는 모습을 보니 안심도 되고 얼마나 예쁜지, 눈에 넣어도 안아프겠다. 더구나 특급전사가 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니 기특할 뿐이다. 어디서든 목표를 설정하고 세부계획을 세워 실천한다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다. 후에 사회에 나와서 살아가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맛나게 식사를 마치고 위병소 옆 면회실로 간다. 그 안에는 군인들이 서빙하는커피숍이 있고 용사와 그의 가족 등 면회객이 있다. 천천히 둘러보니 하나같이 늠름한 모습이 모두 내 아들같다. 준비해간 수박으로 후식을 먹은 후 산책도 할 겸 부대 안에 부대이름을 딴 기념관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들러보았다. 부대연혁부터 역사, 각종 무기 들, 바깥에는 탱크와 자주포, 장갑차까지 있다. 작지만 아주 알차게 꾸며 놓은 곳, 6.25전사자의 명단 앞에선 호국영령에 대한 감사와 영원한 안식의 묵념을 올렸다.
이제 헤어질 시간, 아쉽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자신의 청춘을 담보로 병역의 의무를 하러간 용사들, 그들의 피와 땀으로 우리는 일상을 영위한다. 내 아들이 그 중에 있다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이젠 진급도 병 기본, 체력검정, 사격 등 일정 점수를 통과해야 진급을 시킨다니 발바닥에 땀나게 생겼다. 늘 아기인 줄만 알았던 아들을 군에 놓아두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어쩌겠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오기전 위병소 앞에서 아들을 폭 안아 주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니 내가 아들 품에 폭 안겼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렇게 하루가 저물고 올 해 현충일도 지나간다.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있기까지 내 아들 나이에 전쟁에 참여해서 산화하고 희생 했을 호국영령들께 감사하면서 차에 오른다. 군에 보내고 집에서 늘 걱정만하던 아들인데 오늘은 왠지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