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장마
한결
드디어 장마가 집 앞에 도달했나보다. 아침부터 비가 만만치 않게 내린다. 오늘도 출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니 역시나 신발은 바로 빗물을 머금는다. 그래도 여름 철 비가 낫긴하다. 춥지는않으니까. 가을에 이런 비가 내리면 감기가 들기 십상이고 공기도 쌀쌀해진다. 그나마 지금 내리는 비가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진다. 아스팔트에 쏟아내리면서 수많은 동심원을 만들어낸다. 울주 암각화를 그려진 동심원이 고대인이 비오는 날 땅에,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동그란 파동을보고 절벽에 새긴 것은 아닐까. 그 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고래를 잡을 맑은 날을 꿈꾸며 동굴 속에서 배를 만들고 창을 만들었을지 모른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덩어리가 불어오고 내 앞에서 수백 개의 빗방울로 쪼개져 들이친다. 우산 사이로 흘러 손목을 적시는 차가움을 잡고 의자에 앉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운행정보가 뜨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회사에 도착하고 출장준비를 한다. 쨍쨍한 햇살과 바짝 마른 공기의 여름이라도 맑은 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비오는 날이 무척이나 싫다. 높은 습도로 눅눅해진 실내공기는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아무리 돌려도 맑은 날을 따라잡기 어렵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한 아열대성 기후는 계속 불쾌감을 증가시킨다. 맑은 날의 햇볕이 벌써부터 그립지만 장마는 이제 시작이고 회색 하늘 뒤로 숨은 먹구름안에 얼마나 많은 비를 숨겨두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장마때문에 햇살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지도 모른다. 매일 우중충한 날씨만 계속된다면 밑으로 계속 가라 앉는 부유물처럼 찐득찐득한 찜찜함이 일상을 지배하고 어느덧 그러려니 하는 포기의 마음으로 도배되어 침잠되어 있을 것이다. 내게 장마는 피하고 싶은 귀찮은 방문객이다. 잠에서 깨면 아침마다 두들기는 차가운 소리, 언제 터뜨릴지 모르는 잔뜩 웅크린 하늘의 눈물 주머니, 눅눅해진 공기를 마시고 피어나는 곰팡이, 비에 젖어 투덜거리며 벗겨내는 양말 쪼가리, 축축하게 젖어 마른 수건으로 아무리 닭아내도 다시 씻어내야하는 머리결 등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어서 가주었으면 하는데도 눈치없이 곁에서 떠나지 않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습기 가득한 차창에 낙서를 하며 혼자만의 즐거움에 집중하듯 유리창을 두드리며 아래로 계속 미끄럼틀을 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혼자 상념에 젖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땐 평상시 여유가 없어 생각하지 못햇던 문득 마주치는 것들이 있다. 비를 그리 맞아가면서도 전혀 거리낌없는 초록 잎사귀들 사이로 검정고무신을 벗어 양 손에 쥐고 신작로를 한없이 내달렸던 어린 시절, 언젠가 비를 맞으며 걸었던 목장이 있던 언덕과 강둑에 두고온 청춘의 사랑 이야기, 군대 시절에 세차게 내리던 비를 맞으며 발이 부르트고 젖은 군복에 사타구니가 쓸려 피가 베어나오고 어기적 거리며 수십킬로를 걸어야했던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흘려내며 어머니를 생각했던 날, 메말라 감추어져 있던 추억과 시간들이 나뭇가지에 물이오르듯 다시 살아 숨쉬고 점점 나이가 들어 무디어지는 감정들을 꺼내어준다. 장마는 어쩌면 서랍장 안 깊숙히 넣어두어 찾지 못한 옷을 찾은 것처럼, 점점 잊혀져가던 나의 감정들을 꺼내어 마주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언젠가는 끝나갈 장마이기에 애써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애쓸일도 없고 애쓴다고 끝날 일도 없다. 그냥 장마가 가져다 주는 것이 묵은 감정이든 옛 추억이든 그냥 마주하고 그것들에 젖어보는 것도 꽤 가치있는 일이다. 장마는 천둥과 번개로 현실에 잠든 나를 깨우고 비를 쏟아부으며 평소 내가 얼마나 한여름의 태양에 말라 비틀어져 있었는지 일깨워 준다. 지금내게 필요한 건 따스하고 고소한 커피 한 잔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 하나다. 그곳에 앉아 유리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을 허용하면 그 빗물이 가슴까지 다가와 내가 부드러워진다. 맑은 날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