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에세이
[에세이] 선물
한결
오늘은 아들 녀석이 군대간지 3개월만에 신병휴가를 나오는 날이다. 요즘은 현역병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짧아져 벌써 일병을 달았다. 아직은 생활관 막내인 탓에 이 것 저것 눈치보느라 힘들었을거고 3개월이 3년보다 길었을터 3박 4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아들에게는 무엇보다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시간일 것이다. 더구나 자대배치 받은지 얼마 안되어 폐렴을 심하게 앓아서 대학병원에 입원도 했었고, 자신도 놀라고 나 또한 한참 애를 끓여야했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고 MZ세대들이 군생활을 하기에 군도 거기에 맞추어 변하기야 했겠지만 절차와 보고 등이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고 통제가 있을 수 밖에 없어 치료 절차가 내 맘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여차저차해서 위기를 넘기고 건강을 회복하고. 나온 첫 휴가, 아들을 군에보낸지 이제 3개월되었는데 늘 걱정에 파묻혀 산다.
"오고 있니?"
"네. 선임들하고 택시타고 구리까지 가서 경의 중앙선 타고 갑니다."
할머니 병원 면회시간이 12시 30분쯤 되니까 먼저 할아버지께 들려 인사하고 할머니 면회부터 해라."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녀석은 없다. 학교 동창 들이 거의 모두 군대에 있어 날짜를 맞추어 함께 휴가를 나왔다더니 친구들을 만나러간 듯하다. 옷을 갈아입으려 내 방에 들어가니 침대 위에 '로카티'라 불리는 군인용 반팔 티셔츠가 있다. 늦은 어버이날 선물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할머니께는 수분 크림도 사다 드리고 가족마다 선물을 다 사왔다. 기특한 녀석, 자기 살기도 빡빡할텐데 이거 저거 신경써줌이 고맙다.
선물이란 가격보다는 가치다. 선물의 선(膳)자는 한자에 착할 선(善)이 들어있다. 선물은 정성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정성은 착함이 바탕이 될 것이고 즉, 선물의 바탕에는 착한 마음이 들어 있기에 진정한 선물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선물은 그냥 의례적이거나 어떤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일 수 있다.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 선물을 받는 것 만큼 설레는 일도 드물다. 그러나 모든 선물이 다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선물의 기쁨은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다 착한 마음이어야한다. 주는 사람은 정성, 받는 사람은 감사의 마음이다. 아들 훈련소 수료식에 가는 날, 회사 상사에게 커피 모바일 쿠폰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생각도 안하고 있던 차에 쌀쌀한 날씨지만 아들과 따뜻한 시간보내라는 메시지엔 어떤 사심도 들어있지 않은 작은 정성이 있었다. 기쁨과 감동이 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나도 결혼 기념 일이라고 조기 퇴근하는 후배에게 행복한 저녁 보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커피와 조각케익 쿠폰을 보냈다. 조건 없는 선물의 선순환이다.
선물은 기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극명히 희비가 나뉜다.만일 어떤 이가 기념일을 맞아 큰 기대를 갖고 선물을 받았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선물의 가치는 희석되고 만다. 주는 사람과 다른 기대를 갖을 때 이미 선물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실망이나 상대방에 대한 원망으로까지 번진다. 오늘 아들이 내 방에 놓은 티 한 장 가격은 만원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지만 힘든 군생활을 하면서 자기도 살아남기 힘들테데 아빠를 잊지 않은 아들의 마음이었고 세상 그 어떤 명품보다 가치 있는 선물이었다. PX에가너 뭘 살까 고민하는 아들의 얼굴이 생각나 한동안 가슴이 뭉클했다.
저녁에 언제 들어올지 밤 11시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모두 군인이니 할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먼저 잠이들고 아침에 일어나니 아들도 일어나 있었다. 낮에 친구 들을 만난다고 하여 얼마간의 용돈을 쥐어주려니
"아빠, 저 돈있어요. 충분해요."
"임마, 아빠 마음이 어디 그러니?, 맛난 점심 사먹어"
나도 아들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로 용돈을 주었다.아침인데도 날은 포근하고 햇살이 따스하니 오늘 따라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