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부터 2024년 여름만을 기다렸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정한 건 없었으나, 어디가 되었든 여름방학 2주 정도 아이랑 둘이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2022년 여름에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기에, 다시 제주도를 가는 건 내키지가 않았다. 우리나라 지도를 꺼내 놓고 바다 근처의 유명한 여행지를 하나씩 따라갔다. 그러니 금세 답이 나왔다. 2024년 여름은, 강릉이다!
정신없는 1학기를 보내던 중, 6월을 맞이했다. 서둘러 방학 근무표부터 작성하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배려를 해준 덕분에 정확히 2주의 시간이 생겼다. 일정이 정해지니 다음은 숙소 예약을 할 차례. '리브애니웨어'라는 앱에서 강릉 숙소는 죄다 뒤져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드는 숙소가 바뀌었다. 같은 숙소를 다음 날 보면 뭔가 갑자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겼다. 그렇게 며칠을 숙소에 투자하니, 몇 번을 봐도 마음에 드는 숙소가 생겼다. 다만, 내가 마음에 들면 누군가의 마음에도 들 확률이 높기에,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기간의 일부분만 머물 수 있어 숙소를 두 군데로 나누어 예약했다. 한 곳은 소돌해변, 한 곳은 사천진 해변 근처로. 숙소가 정해지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잊었다. 강릉 2주 살기에 대한 모든 것들을.
그리고 다시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러 7월 19일 금요일, 여름방학일을 지나고 나니 다시 스멀스멀 올라와 나의 뇌 한 구석에 머무는 '강릉 2주 살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서 빨리!......'운전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다, 나는 아직 초보운전. 아니 쌩초보운전이다. 내 앞을 누가 위험하게 끼어들어도 핸들을 손에서 놓는 것이 무서워 클락션 하나 누를 수 없는 쌩초보.
그런 내가 차를 끌고 아이랑 둘이서 강릉을 가며, 2주나 더 머무르겠다니.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가지 말까', '내가 왜 그랬지?'를 외치며 오락가락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한결같이 말했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얄미운 남편의 말에 힘입은 건지, 어쨌든 나는 무사히 강릉 2주 살기를 마치고 왔다.
떠나기 전 남편이 말했다.
"도대체 왜 가? 돈 주고 사서 고생을 왜 해? 복덩이는 기억도 못할 걸"
(좀 더 순한 버전으로 위와 비슷한 말을 주변 사람들도 나에게 전했다.)
이때마다 나는 당당히 말했다.
"복덩이 때문에 가는 거 아닌데? 내 추억 만들러 가는건뒈???"
제대로 이어지지는 못한 인연이었으나, 20대에 만난 그 시절 내 마음의 고삐였던 '첫사랑' 그와 나눈 이야기가 있다.
내 마음의 고삐였던 그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고 싶어 했다. 나는 굳이, 추억을 '만들어 놔야'겠다,라고는 생각을 안 했기에 궁금해하는 나에게 말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잖아. 나는 행복한 추억을 먹고살고 싶으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그가 내 마음의 고삐여서 그랬는지, 그냥 그 시절의 내가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이제는 모르겠으나 그 이후로 그때의 우리(라고 쓰니까 뭔가 불륜 같은데...?)의 대화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행복한 추억을 먹고살고 싶다.
그렇다고 노년에 '내가 말이야, 왕년에 말이야~'라고 말하거나,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에만 젖어 살겠다는 건 아니다. 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흐릿한 기억, 10대의 차가운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처럼, 20대의 술냄새나는 기억들에 뻘쭘한 웃음을 보이는 것처럼, 노년의 나를 웃게 할 기억들은 적어도 흐릿하거나 차갑지 않고, 뻘쭘하지 않은 온전한 웃음이길 바라기 때문에, 나는 그런 '기억'들을 만들어 저장해 두고 싶다.
글로 쓰고 나니 장황하다. 뭐 결론은 그래서...... 나는 돈 주고 고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