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제도의 한계만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장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벽을 함께 넘는 순간, 복지사의 삶은 더 깊고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뇌병변장애인 분들과 함께한 ‘맛집 탐방’ 활동은 내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기억이다. 단순한 외출 프로그램이 아니라, ‘삶을 함께 맛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작은 외출에서 큰 행복을’이라는 다소 소박한 슬로건으로 시작됐다. 겉보기엔 소풍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식당 선정이 가장 까다로웠다.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지, 입구에 턱이 없는지,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내부 통로는 얼마나 넓은지, 좌석은 이동이 편리한지, 장애인 화장실이 따로 있는지, 주차장에서 식당까지의 동선은 안전한지… 지도와 사진만으로는 부족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채워나가야 했다.
첫 번째 맛집 탐방 장소는 서울 노원구의 한 된장찌개 전문점이었다. 외관은 투박하고 소박했지만, 음식 맛 하나로 소문난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입구에 경사로가 잘 설치되어 있었고 내부도 널찍해 휠체어가 돌아다니기 편했다. 도착 전날 밤까지도 긴장했지만 참여자들을 한 분씩 도와 자리에 앉히고 따뜻한 국물이 담긴 뚝배기가 테이블 위에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하자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뚝배기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은 말 그대로 ‘향기로운 환영’이었다. 두 손이 자유롭지 않은 분들에게는 숟가락을 들어 도와드리며 그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조심스레 첫 숟갈을 입에 머금은 참가자 한 분이, 눈을 지그시 감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지사님… 된장찌개 먹으니까 고향 생각나요. 엄마가 매주 끓여주던 그 맛 같아요.”
그 한마디에 식탁 위 공기가 사르르 달라졌다. 모두가 잠시 말을 멈추고, 각자의 기억 속 ‘된장찌개의 추억’을 꺼내 놓았다. 누군가는 전라도에서의 어린 시절을, 누군가는 할머니의 장독대를, 또 누군가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겨울 저녁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탐방이 이어질수록 참여자들의 변화도 감지됐다. 그전에는 외출 자체를 망설이던 분이 “이번엔 제가 가고 싶은 음식점이 있어요”라고 먼저 의견을 내시기도 했고 말수가 적던 분이 “쫄면이 이렇게 매콤한 줄은 몰랐네요!” 하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식사 중에는 음식에 대한 감상뿐 아니라, 최근 본 드라마 이야기, 가족 안부, 마음속 외로움까지도 조심스레 꺼내졌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에게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순간이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는지를.
물론 매번 순탄한 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비가 쏟아져 휠체어 바퀴가 질척한 길에 잠시 멈추기도 했고 식당 측의 예약 누락으로 급히 장소를 변경해야 했던 날도 있었다. 한 분은 외출 중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응급 처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돌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함께 우산을 나누고, 때로는 서로의 팔을 빌려 디딤돌을 만들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배려와 이해로 앞으로 나아갔다.
맛집 탐방은 단지 ‘맛있는 것’을 먹는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음식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매개체를 통해,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의 길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수많은 문서를 작성하고, 조정과 협의를 반복하고, 종종 무기력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참가자 한 분이 조용히 건넨 말 한마디는 모든 수고를 잊게 해 주었다.
“복지사님, 오늘은 진짜... 사람다운 하루였어요. 고마워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