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나는 수많은 ‘가족’과 만난다. 그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사연과 형편을 안고 살아가지만 하나같이 삶의 무게를 말없이 짊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말보다 긴 침묵 속에서, 때로는 눈빛 하나에서 그 무게가 전해져 온다. 그런 많은 인연 중에서도 나는 이번 성인보호자 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한 어머님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분은 중증 뇌병변장애를 가진 아들을 홀로 돌보고 계신 60대의 여성분이었다. 남편은 오래전에 가족을 떠났고 혈육이라고 할 수 있는 친척들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세 식구도 아닌, 둘도 아닌, 단 둘 뿐인 가족. 그마저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지탱하는 어머니, 두 사람의 삶은 철저히 어머님 한 사람의 두 손에 달려 있었다.
나는 어머님을 처음 만난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상담실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오신 그분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조용한 단념 같은 것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눈가에는 말 못 할 고단함이 맺혀 있었고 손등 위로는 무수한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이런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을지 몰라서요.”
처음 내 앞에 앉아하신 말씀이었다. 도움을 받는 것조차 죄송해하시는 그분의 모습이 마음 깊이 박혔다.
그 아이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고 말도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어머님은 아들의 손발이 되어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밥을 먹이고 약을 챙기고 몸을 씻기고 경련이 일어나면 밤을 새워 곁을 지켜야 했다. 스스로의 시간, 건강, 욕구는 이미 오랜 시간 잊고 살아오신 듯했다. 하지만 몸은 정직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 아이를 들다가 주저앉을 때도 있어요. 제가 먼저 무너질까 봐 그게 제일 겁나요.”
그 말에는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아픈 몸보다 더 두려운 건, 자신이 무너지면 아이를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었다.
검사를 받아보니, 척추의 디스크가 심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위장도 오랜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로 염증이 심각했다. 의사는 더 늦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님은 망설이셨다.
“병원에 입원하면 아이는 누가 돌보죠… 그리고, 치료비가… 그것도 걱정이에요.”
그 두 문장은 오랜 시간 스스로를 포기해 온 이들의 전형적인 방어였다. 돌봄은 어머님 인생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고, 그 돌봄 속에서 자신의 존재는 언제나 뒷순위였다.
나는 이분이야말로 의료비 지원이 꼭 필요한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성인 보호자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자로 신청했고, 다행히 선정될 수 있었다. 지원금 100만 원은 어머님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 신중하게 사용되었다. 척추 치료를 위한 통원 진료비, 위장 내시경 및 조직검사 비용, 약값, 그리고 아픈 허리를 지탱해 줄 복대까지.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치료를 넘어 어머님의 삶 전체에 깊이 관여된 필수적인 항목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다시 복지관에 들르신 어머님은 전보다 조금 밝아진 얼굴로 내 앞에 앉으셨다.
“복지사님, 몸이 조금 나아졌어요. 아이도 저도, 이제 조금 더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 말이 어찌나 가슴에 울리던지, 나는 그만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더 괜찮아짐’이라는 그 작고 단순한 말이 그분에게는 얼마나 큰 희망이었는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치료 한 번이 이렇게 절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의 일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다시금 실감했다.
우리는 종종 돌봄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은 강하고, 견고하고,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돌보는 사람도 지치고, 아프고, 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돌보는 사람의 건강과 안녕이 무너지면 그들이 돌보는 사람들의 삶 역시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의료비 지원은 단순히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가족을 지켜낸 일이었고 돌봄이라는 고리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희생만 해온 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 일이었다. 단 한 사람의 회복이, 그 가족 전체의 존속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인 자녀를 홀로 케어하는 어머님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도 돌봄의 대상이 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는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당신이 견디며 살아낸 모든 날들을 존중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