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아이가 제주도에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 말을 듣고 전화를 끊은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뇌병변장애로 인해 의사소통과 움직임이 어려운 A씨는 20대 후반의 청년으로 오랜 시간 우리 기관을 이용하며 가족과 함께 묵묵히 일상을 살아온 분이다. A씨는 늘 조용히 앉아 있지만 무엇인가에 집중할 때면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말은 없지만 감정은 분명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의 미소. 그것이 바로 A씨가 주는 가장 큰 표현이었다. A씨와 함께 오시는 가족도 언제나 한결같았다. 어머니는 늘 꼼꼼하게 준비해 오셨고 아버지는 묵직한 책임감으로 휠체어를 밀며 그림자처럼 곁을 지켰다. 형은 동생의 행동 하나하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함께하는 순간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는 이 가족의 따뜻함을 말없이 이어진 사랑의 모양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초록여행의 11월 제주 항공여행 참가자 모집 소식을 접했다.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의 공간이지만 중증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는 거리, 비용, 시설 접근성 등 수많은 장벽으로 인해 멀고도 낯선 장소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항공권과 장애친화 차량, 유류비까지 모두 지원되는 프로그램이었기에 나는 곧바로 A씨 가족을 떠올렸다.
조심스레 A씨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신청을 권유드렸다. 수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물으셨다.
“우리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속엔 기대보단 망설임이 설렘보단 현실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며칠 후 다시 연락이 왔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는 한결 밝아져 있었다.
“신청했어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렇게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해요.”
그리고 정말로 얼마 뒤, A씨 가족은 선정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드린 날, 어머니는 우리 기관에 들러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 가족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단지 정보를 전달했을 뿐이지만, 이분들에게는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전한 것이었다.
며칠 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A씨 가족이 오랜만에 다시 기관에 방문했다. 낯익은 얼굴인데도 어디선가 전보다 밝아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A씨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 눈빛은 조금 더 깊고 편안해 보였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여운과 감사가 어려 있었다.
작은 상담실에 둘러앉아 여행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머니는 조심스레 하나하나 기억을 꺼내놓기 시작하셨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모든 게 달랐어요. 기사님이 친절하게 인사하시고 차량에 리프트가 달려 있어서 아이를 무리 없이 태울 수 있었죠. 그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너무 감사했어요.”
제주도에 도착하던 순간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추는 그 공항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셨다. 아이는 처음엔 낯선 공간에 약간 긴장한 듯했지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자 눈을 크게 뜨고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고 한다. 그것이 어머니에겐 “행복하다”는 무언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성산일출봉 근처 바닷가에 갔는데요, 그날은 바람이 좀 불었어요. 그런데도 파도 소리랑 햇빛이 너무 좋아서 우리 가족이 바위에 나란히 앉았어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냥… 그 순간이 너무 벅차서요. 우리 가족이 참 잘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잠시 목소리를 멈췄다. 눈을 닦는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가 제 손을 꼭 잡았어요. 평소에도 잘 그러진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아주 오래 꼭 쥐고 있었어요. 그 순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아, 이 아이가 참 좋았구나. 편안했구나.' 그런 마음이 느껴져서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초록여행은 단지 한 번의 여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장애가 있어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명이었고 ‘우리 가족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자긍심의 회복이었다.
무엇보다 세상의 일부가 되어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존재의 인정이었다. 나는 복지사로서 늘 ‘삶의 질 향상’을 이야기해 왔지만 이토록 선명하게 그 의미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 A씨 가족이 제주에서 보낸 이틀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지탱해 줄 소중한 추억이자 희망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가족들에게 이런 기회를 연결해주고 싶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나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힘이다. 초록여행이 만들어준 이 여정이 누군가의 삶에 또 한 조각의 따뜻한 기억을 더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