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마릴라 아주머니. 저 정말 겁이 나요. 기다리던 때가 막상 다가오니까 도리어 무서워졌어요. 만약 그 애가 절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죠? 제 인생에서 가장 크게 실망한 비극적인 날이 될 거예요."
"단짝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를 만나러 가는데 그 아이 어머니가 싫어하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주머니도 저처럼 떨게 되실 거예요."
"저, 다이애나 단짝 친구가 될 만큼 날 좋아해 줄 수 있니?"
"응, 그럴 거 같아. 네가 초록 지붕집에서 살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친구가 생겨서 얼마나 좋은 지 몰라, 근처에는 같이 놀 만한 여자애가 없고, 여동생은 아직 어리거든."
<초록지붕집의 앤> 12장 엄숙한 맹세 중에서
앤이 다이애나를 처음 만나러 가는 날의 대사입니다.
단짝 친구가 될지 모르는 다이애나를 만나러 가는 앤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살포시 미소가 지어집니다.
흡사 청혼한 여자의 집에 인사하러 가는 예비 신랑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앤은 친구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납니다.
그리곤 친구가 되어달라고 합니다.
친구가 되어 달라고 먼저 손을 내밉니다.
서로 내민 손을 잡고 단짝 친구로서 충실하기로 맹세를 합니다.
앤과 다이애나의 관계를 보면 친구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 소중한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입니다.
앤은 이야기합니다.
친구가 되어달라고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친구는 소중하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합니다.
앤이 퀸즈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하고 다이애나는 퀸즈 대학을 포기해서 둘은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조차도 함께 친구로 서로를 응원하고 인정합니다.
비록 같은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을지라도 서로는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기뻐해줍니다.
앤의 수다도 다이애나는 다 받아주고 앤의 상상력을 칭찬해 주죠.
이렇게 맘이 맞는 친구를 둔 앤과 다이애나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에게 단짝 친구로 긴 세월을 함께 합니다.
전에 언젠가 친구가 몇 명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60을 훌쩍 넘기신 분이 "친구 별로 없어요. 그냥 아는 사람만 있어요."라고 답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들도 친구가 많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친구라고 말하지만 그 친구들과 자주 만나거나 일상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뿐이죠.
그러나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친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친구라는 정의에 너무 인색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가 뭘까요?
사전에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합니다.
가깝다는 말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겠죠.
오늘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네게 어떤 친구였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예전 그들을 만나 처음 관계 했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설레는 맘으로 관계를 한 친구도 있었고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조금씩 조금씩 옆으로 다가가 길들여지면서 친구가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때로는 실망하게 한 적도 있었고, 마음 아프게 한 적도 있었고 무심하게 바라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만 그랬을까요?
저 또한 그렇게 대했겠지요.
맘에 드는 친구란 게 있을까요?
맘에 드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서로를 묵묵히 응원해 주는 게 친구인데
자꾸 내 기준에서 생각하다 보니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난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바보가 아니야. 하느님이 만드신 바로 그 필라파 고든 자체로 난 받아들여줘. 내 결점까지 이해하고 나면 날 좋아하게 될 거야.
<레드먼드의 앤> 4장. 4월의 숙녀 중에서
위의 대사는 필리파 고든과 앤 그리고 프리실라가 처음 만나는 날 대화한 일부 내용입니다.
쭈뼛 거리는 필리파 고든을 바라보던 프리실라와 앤은 고든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그러자 고든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죠.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 필리파는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여달라고 그리고 이해하면 자신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누가 처음 만나는 친구한테 이렇게 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필리파는 참 솔직한 친구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히 말하고 그리고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합니다.
내 기준에서 해석하려 하지 말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말은 쉽지만 행동하고 생각하는 건 참 힘듭니다.
요즘 관계에 대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관계가 힘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자꾸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는 거죠
그러다가 실망하게 되고 마음 아프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힘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기대하지 않기.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꼬아 듣지 않기.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입니다.
'내가 친구가 되어 줄게요.' '나는 너의 친구야.'라고 먼저 말해 보는 하루를 만들어봐요.
" 난 항상 너를 지지해 주는 친구야'를 먼저 말해주는 하루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