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NINETEEN 05

2019년의 뉴욕여행. 뉴욕에서 먹고, 보고, 경험한 19가지 이야기

by 임히엔

NEW YORK NINETEEN

2019년의 뉴욕여행. 뉴욕에서 먹고, 보고, 경험한 19가지 이야기


이런 공연도 있다니, SLEEP NO MORE!


뉴욕여행을 준비하면서 친구 권유로 메신저오픈단체방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슬립노모어'라는 무언극이었다. 슬립노모어(Sleep No More)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토대로 한 이머시브 공연으로 관객이 마치 맥베스의 성에서 벌어지는 왕 살해 등 여러 사건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든 공연이다. 이머시브 공연은 한마디로 체험형 공연인데, 가만히 앉아서 공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무대로 관객이 들어가면서 함께 움직이며 관람할 수 있는 매우 역동적인 형태의 공연을 말한다. 2000년대 런던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슬립노모어 역시 2003년 런던 초연을 거쳐 2009년 뉴욕에서 선보였고, 2011년부터는 뉴욕의 맥키트릭 호텔을 전용극장으로 삼아 상설 공연에 들어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2016년 중국에 라이선스가 팔려 상하이에서도 공연이 진행된다고 한다.


슬립노모어 공연은 대행 사이트 없이 직접 사이트에 들어가 예약을 할 수 있어서 나와 친구는 여행일정이 확정된 후 미리 예약을 하고 공연을 보러 갔다. 가기 전 검색을 해보니 예약을 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30분 전에는 미리 가서 줄을 서라고 하길래 우리도 최대한 빨리 공연장으로 가서 줄을 서보았다. 가서 보니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예약한 공연시작 시간인 7시에 딱 맞춰서 입장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고 그룹을 나누어서 제일 앞 번호 그룹부터 직원분들이 어딘가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몰랐던 우리. 내 친구는 4번 카드, 나는 5번 카드를 받아 우리는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또 한 가지 이 무언극의 독특한 점은 관객들이 모두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스크림의 얼굴같이 생긴, 어떻게 보면 조금은 공포스러운(?) 가면을 쓴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배우들은 혹시라도 무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의 얼굴을 직접 보면서 공연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 친구와 이산가족이 되기 전으로 돌아가보자면, 극장 1층에서 짐을 맡기고(짐보관은 유료라서 친구와 둘이 합쳐 한꺼번에 보관했다) 올라가면 마치 호텔의 바처럼 되어 있는 공간이 나온다. 조명은 살짝 어둡고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있으면 앞 번호부터 부르면서 관객들을 차례로 들여보낸다. 친구를 먼저 보내고 두근거리며 조금 더 대기하고 있던 나는 같은 번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런데 심지어 한 그룹을 모두 같은 층에 내려주는 것도 아니고 한 층 한 층 몇 명의 사람들을 떨궈주고 문이 닫혔다. 그렇게 나도 몇 층인지 모를 층에 거의 혼자 버려지고 멍해진 것도 잠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슬립노모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해외에서 겪는 방탈출(?)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하필 조명까지 어둑어둑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나 보다.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무슨 귀신의 집에 온 것처럼 공연장 이곳저곳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돌아다니던 층은 상점가였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배우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오? 이 공연에 동양인 분도 나오는 건가?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배우 분은 가루 같은 걸 뿌렸다가 지웠다가 하는 연기를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주변에 관객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내가 계속 졸졸 따라다녀서일까. 그 배우 분은 나를 향해 손짓하시더니 영어로 말씀하시다가(아마 대사였겠지…?)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갑자기 한국말을 하시는 거다! 순간 내 눈이 아마 완전 동그래지지 않았을까?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한국배우시라니?! 그분은 놀라며 당황해하고 있는 내 손에 특이한 형태를 한 표식 같은 것을 쥐어주시고는 밖으로 내보내셨다.


KakaoTalk_20230327_233049075.png 이 분이 바로 그 배우분이셨더랬다!


순간 내가 무슨 일을 겪은 것인가 멍하니 터벅터벅 걸으면서 계단 쪽으로 나섰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누가 봐도 배우 아우라를 풍기는 여자배우 분이 급하게 계단을 올라오고 있고, 마치 아이돌을 따라오는 것처럼 관객들 여러 명이 우르르 그 뒤를 따라 함께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이것이 바로 슬립노모어로구나!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도 이곳저곳 공연을 즐기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슬립노모어의 경우 많은 수의 배우들이 여러 층에 걸쳐 공연장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연기를 펼치기 때문에 한 배우만 쫓아다니거나 아니면 그때그때 본인이 보고 싶은 장면들을 쫓으면서 공연을 관람해야 한다. 공연장의 여러 층을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다 보니 생각보다 큰 체력 역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배우만 줄곧 따라다니기보다는 체력이 허락하는 내에서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구경하듯 공연을 관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이 내가 어떤 경로로 어떤 배우를 따라다니든 간에 자연스럽게 결말이 펼쳐지는 연회장으로 향하게 된다.


사실 이 날의 공연을 통해 공연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공연의 모든 장면들을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맥베스 내용을 꼼꼼히 이해하고 가지도 않았으므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진행된 3시간이 전혀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오기 전에 공연 내용과 진행방법에 대해 좀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올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공연을 여러 차례 관람하는 사람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나도 뉴욕이나 상하이에 살았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20190929_220315.jpg 입장순서가 적힌 카드와 한국배우 분께 받은 표식 같은 무언가


처음 경험한 형태의 공연이었던 슬립노모어의 파장은 엄청났다. 나와 친구는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과 숙소로 돌아온 이후에도 내내 이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친구와 나는 입장시간이 달라서 처음부터 따로 공연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물론 중간에 잠시 마주치기는 했지만 공연 특성상 자연스럽게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보았던 장면들이 꽤 달랐더랬다. 예를 들어 나는 친구가 충격을 받았던 (그리고 찾아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마녀들과의 EDM 파티 신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서로 보았던 장면들과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공유하고 공연에 대한 놀라움과 감상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피자를 사들고 숙소에 돌아왔다.

마침 숙소에는 루프탑이 있어 숙박객들에게 오픈이 되어있었는데, 우리가 간 9월 말은 루프탑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돌아오는 길에 사 온 피자와 맥주를 들고 숙소 루프탑에 가서 우리만의 피맥을 하며 공연이야기를 더했다. 게다가 슬립노모어의 여운을 잊지 못하고 공연 때 쓰고 있던 마스크와 트럼프카드를 가져와서 기념사진까지 찍은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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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노모어가 얼마나 인상에 깊게 남았냐면, 우연히 이 여행 이후 한국에서도 이머시브 공연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시작되었을 때 슬립노모어에서의 독특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이 공연 역시 얼른 보러 갈 정도였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 그런데 우리가 본 직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어 알고 보니 위대한 개츠비는 조기종영이 되었다고 한다. 너무 아쉽다. 이제 엔데믹으로 가고 있으니 어느 시점에는 다시 재연될 날이 오지 않을까?



<정보>

Home page: https://mckittrickhotel.com/sleep-no-more

Map: The McKittrick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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