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 2023년 9월 3일 part 2
2023년 9월 3일 토요일
오늘의 일기 part 2 - Day 5 그림기록 (2)
Flagstaff Gardens
브런치와 서점 투어 말고는 정말 하나도 계획하지 않았던 멜버른의 마지막 날. Books for Cooks 구경까지 마치니 정말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분명 내 mbti는 J인데 이번 여행은 P 같은 여행이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 마무리되면 숙소에 들러서 짐을 찾고 공항을 가야 하기 때문에 이미 오후가 된 지금, 멀리까지 새 여정을 떠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주변에 있는 곳들 중 한 곳을 가야 했는데, 그런 나의 눈에 들어온 장소가 바로 이 Flagstaff Gardens였다. 그래, 날도 좋으니 공원에서 여유를 느껴보자!
이 날은 멜버른에 온 이래로 가장 따뜻한 날씨였다. 갖춰 입은 옷들이 처음으로 약간 덥게 느껴지는 날씨. 즉, 그만큼 매우 좋은 날씨였다는 뜻이다. 공원에 들어서니 관광객보다는 거주민들이 많이 찾는 것 같은 느낌의 공원으로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잔디밭과 얕은 언덕이 저절로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돗자리를 가져왔으면 너무나 좋았을 것을... 대신 공원 건너편의 높은 빌딩숲을 감상할 수 있는 잔디밭 끝에 서 보았다. 자리를 잡기 전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것인데, 그런 나의 모습을 보던 근처의 한 남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여성 분과 그보다는 어려 보이지만 40대 전후로 보이는 남성 한 분. 지인의 조합으로 보이는 이 두 분은 나에게 어디서 왔냐는 어찌 보면 해외 여행객에게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질문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 나는 뒤에 특별히 일정이 잡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꽤 길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점점 뭔가 종교라는 특정 주제로 이야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교사를 하시다가 은퇴하셨다고 하는 여성 분이 계속해서 기독교와 하느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교인 나는 사실 특정 종교에 막 거부감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여유로운 시간을 이렇게 허비할 수는 없지! 내가 그분들을 오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고 공원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약 그분들이 정말 전도를 하려는 분들이었다면, 멜버른에 와서 그런 일을 겪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정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여행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공원의 다른 편으로 걸음을 옮겼고,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여운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수다를 떨거나 누워서 따뜻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등등.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한 곳 정도만 더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일정. '어떤 일정으로 마무리를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여행 초반에 갔던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이 생각났다. 도서관 안에서 저마다 필요한 공부나 독서를 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나도 저 안의 1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드디어 그 경험을 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 마지막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보자. 가자, 도서관으로!
State Library Victoria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은 숙소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풍경의 연속이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멜버른의 명물인 35번 트램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가야 할 곳의 루트와는 맞지 않아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35번 트램. 혹시라도 여행기간 동안 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결국 타보지 못하고 가는 대신에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클래식한 모습 때문에 높이 솟은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이 트램이 보이면 멜버른의 풍경을 한 껏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날도 어느덧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어색하게 도서관 안에 들어가 빈자리가 있는지 살펴본다. 저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조심히 한 걸음 한 걸음 복도 끝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다가가보니 다행히 비어있는 한 자리가 눈에 띄었다. '오예! 여기에 앉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냈다. 혹시 몰라 일기장과 연필을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도서관에서 펴 볼 줄이야!
평소 여행을 다닐 때 보조배터리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나의 특성상 이렇게 충전을 할 수 있는 장소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숙소로 향하기 전까지 약 한 시간 남짓. 핸드폰에 충전 케이블을 연결해 놓고 일기장을 열어 오늘 하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분이 왠지 한국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었기에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한국어로 말씀하시는 느낌? 여행객으로서가 아닌 이곳에 거주하는 입장에서 멜버른은 과연 어떤 도시일까? 살짝 궁금해졌지만 다시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숙소에 짐을 맡긴 후 브런치와 서점, 공원에서 보낸 시간들이 일기장 위에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하루동안 일어난 일들인데 마치 며칠 전의 일 같다. 짐을 찾으러 호텔에 돌아가기 전 도서관에서의 한 시간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매일 저녁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일기를 쓰고 하루를 마무리했었는데 아무래도 마지막 날은 그런 루틴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하게 여행 마지막 날을 마무리할 수 있다니! 이번 멜버른 여행은 나만의 '혼자 여행 루틴'을 만들 수 있었던 뜻밖의 기회였던 것 같다. 앞으로 또 혼자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혹시라도 생긴다면, 그때도 이러한 흐름으로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공항으로!
도서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쉽지만 이제는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 이번여행을 함께 한 내 몸만 한 보라색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어느덧 멜버른은 저녁시간이 되었고 맑았던 하늘은 어두워졌다. 아침이나 낮시간이 아닌 하루의 마무리를 하는 저녁 시간에 공항으로 향하니 뭔가 여행이 진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나를 멜버른 시내로 데려다주었던 붉은색 공항버스를 타고 이제는 멜버른 공항으로 다시 향한다.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은 밤 11 시대 비행기. 멜버른 첫날 오전에 도착을 했으니 정말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꽉꽉 채워 멜버른을 경험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사실 여행을 계획할 때에는 여행 의욕이 확 떨어졌을 때라 처음 가보는 호주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이동이 귀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멜버른 한 곳만 오는 것으로 결정을 한 터였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역시나 여행은 여행이고,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여행이 시작되니 몸과 마음도 너무나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홍콩을 경유하였는데 경유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길었다. 경유시간 동안 짧게라도 홍콩을 둘러본 생각이었기에 멜버른에서 한껏 높인 여행 의욕을 유지하며 홍콩으로 갈 생각이다. 멜버른 안녕, 만나서 반가웠고 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 다시 멜버른에 오게 된다면 이번에 가보지 못했던 서점도 가고, 너무나 좋았던 온천도 더 길게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