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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Sep 10. 2022

#07 커리어는 30년 뒤의 투자

표현력 하나만 가지고 취업하면 벌어질 수 있는 일

수업을 하다 보면 지금까지 글에서 나왔던 잔소리 같은 이야기에 지치거나 앞으로 하게 될 더 많은 과정에 질려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당연해요 우리가 미술 공부를 하면서 평생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걸 요구하고 있는 거니까요.


근 10년 가까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제야 부랴부랴 머리에 쑤셔 박고 실무자 눈높이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면 지칠 수밖에 없어요. 사회는 분명 UX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늘 한 템포 늦는 대학교의 커리큘럼은 UX가 뭔 지조차 제대로 알려주는 클래스 하나 없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요.


그럴 때마다 전 동기부여 삼아 약간은 속물 같은 이야기를 꺼내놓곤 합니다. 그러고는 꼭 물어봅니다. "친구들은 30년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첫 직장은 앞으로 여러분의 30년 뒤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대기업인 S◯ 그룹사의 매니저인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친구는 커머스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데 쉽게 생각하면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쇼핑몰에는 하루에도 수 없이 바뀌는 광고 배너부터 며칠 걸렸다가 사라지는 프로모션 기획전 등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들이 범람하는 곳이기도 하죠.


물론 저도 이런 일을 해봤기 때문에 생리를 잘 알지만 제삼자의 목소리로 다시 증명하고 싶기에 술김에 또 물어봤습니다. "야, 저런 건 누가 다 만드냐? 너네 팀원이 대체 몇 명이냐?" 대답은 당연하게도 "그걸 왜 우리가 만들어? 파견직이나 하청 주지"


사실 너무 뻔한 사실이죠, 대기업 직원씩이나 됐는데 배너나 만들고 있자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보통 이런 곳의 정직원들은 자잘한 배너나 이벤트보다는 서비스 자체를 고도화하는 UX/UI 작업에 많이 투입이 됩니다. 그리고 배너나 이벤트는 한다고 하더라도 그룹사에서 총괄하는 주요 프로모션이나, 아니면 하청이 작업해야 할 디자인 가이드라인 구축할 때 아니면 크게 투입되지 않습니다.


생각할 일이 별로 없는 일거리는 결국 외부에 맡긴단 뜻이죠. 사실 엄밀하게는 배너 하나에도 UX는 존재합니다. 배너의 형태와 배색, 레이아웃에 따른 정보 전달력에도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UX도 내부에서 다 가이드라인을 세워주고 단순히 수행(Operation)만 할 영역만 넘겨주고 있으니 생각할 일은 더더욱 없어지게 되죠.


생각은 하기 힘들고 당장 가지고 있는 뛰어난 비주얼 퀄리티만 가지고 취업을 한다면, 크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하지 않더라도 위와 같은 하청/파견을 하는 유지보수 업체에는 지금당장 롸잇나우 취업이 가능할 겁니다. 아니면 이런 비슷한 업무 성향을 가진 곳 역시도 여러분을 두 손 들어 환영할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이런 곳은 기대 연봉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업체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초봉은 대충 2천만 원 후반대에서 3천만원 초반대를 할 겁니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초봉이니 그렇게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 봅시다.



사람은 꽤 많은 유비 지용이 듭니다

한 기업 내에서의 연봉 인상률은 중소기업의 경우 2~3% 정도예요, 뭔가 큰 성과를 달성하는 등의 일이 있다면 5~7%도 가능하죠. 연봉 3,000에서 5% 인상해도 150만원입니다. 월 10만원을 조금 넘는 금액이에요.

첫 직장을 3천만원 연봉에 입사해서 2년 차가 되었을 때 3,150만원이 되었네요. 월급이 대충 260 정도 됩니다. '어? 괜찮은데?'라고 생각이 든다면 아래로 내려가 봅시다.


일단 월급이 나오면 고용보험이나 의료보험, 각종 세금이 붙어 3~40만원 정도는 사라집니다.

거기에 조그마한 원룸 월세라도 잡았다면 못해도 월세에 관리비로 50~70만원은 사라지겠죠. 자 이것만 해도 일단 100만원이 사라졌어요. 

남은 돈은 160입니다.


여러분이 출퇴근하면서 내는 교통비, 휴대폰 통신비 그리고 요즘 점심 밥값도 어지간하면 1만원을 족히 넘는 시대입니다. 커피도 회사에 있는 맥◯ 커피만 타 먹을게 아니라면 종종 커피도 사 먹어야겠죠? 대충 70만원 정도는 나갈 거예요. 

이제 90 남았군요.


사람이 어떻게 점심만 먹고살아요? 위에 식대는 한 달의 워킹데이 20일 기준으로 계산한 금액인데, 아침/저녁에 주말에도 뭔가는 먹어야 하잖아요? 아무리 알뜰하게 아껴도 40만원도 부족할 거예요.

이제 50 남았습니다.


저는 지은 죄가 많아 와이셔츠를 입고 일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오래 입는 옷이 아니라서 종종 다시 사야 해요. 여러분 역시 시기마다 계절마다 옷도 사야 하고 새는 비용이 생길 겁니다. 거기에 사회인이 되고 나면 직장 내에 종종 생기는 경조사마다 축의금/부의금이 나가고 주변에는 하나둘씩 결혼하는 친구들이 생기면 의리로 축의금도 내야 할 겁니다.


아직 제대로 된 취미생활에 투자도 못해봤는데 이제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없을 거예요. 거기에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주택청약이나 연금저축, 실손보험은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세상은 너무나 억울합니다. 과연 아프니까 청춘일까요?


반면에 UX를 선도하는 유수의 기업에는 초봉은 못해도 3천 후반에서 4천 초반은 보통입니다. 심지어는 그보다 더 되는 곳도 있죠. 그 친구들은 아마도 덜 아플 겁니다. 너무 불공평한 일인 듯도 하지만 그만큼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는 거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나에게도 점프업 할 기회가 오는 건가요?

이미 초봉이 낮은 상태에서 계속 장기근속을 해봐야 오르는 연봉 인상률로는 아픈 청춘을 벗어날 기회를 잡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린 연봉이 가장 크게 오를 수 있는 일확천금의 기회 이직이란 게 있죠. 이직할 때는 보통 연봉의 앞자리(천만원 단위)부터 바뀌는 경우들이 허다하니 금전적으로는 점프업 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하지만 여기서도 불공평은 이어집니다.

네◯버 2020 취업연계 디자인 인턴십 모집요강


참고로 들고 온 여러분을 확실히 점프업 시켜줄 기업의 모집 요강이에요.

제가 너무 게을러 2020 자료이긴 합니다만 최근에도 크게 변하진 않았더군요. 전 여기서 가장 무서운 대목이 '전공무관' 이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저것과 밑의 세부 조항들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전 이렇게 읽히거든요.


'우린 이제 스킬만 뛰어난 디자인 전공은 필요 없어,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도 좋아. 고객을 이해하고 탐구하면서 문제를 풀어낼 줄 알면 돼, 그리고 이걸 단순히 주관이 아니라 근거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어'


이제 여러분은 신입이 아닌 경력직 이직으로 취급이 되어야 합니다. 인턴십/신입 취업보다 더 높은 눈높이로 여러분을 평가하게 될 테고 그동안 여러분이 실무에서 쌓아온 결과물은 그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쌓아온 실무 결과물은 과연 무엇이냐! 유지보수로 속도감 있게 쳐내 오던 배너와 이벤트 디자인들이 그득할 거예요.


자의던 타의던 여러분의 포폴에는 네◯버가 기대하는, 그리고 앞으로 포스트 네◯버가 되기 위해 UX를 고도화하고 있는 기업들이 추구하는 생각하는 인재와는 거리가 벌어지고 말았어요. 오히려 힘든 과정을 거치고 생각하는, UX로써 성장할 수 있는 인재임을 증명하고 취업한 친구들은 이런 곳으로 이직하며 크게 점프업 할 기회마저 독차지할 겁니다.


할 수 없이 여러분은 또다시 비슷한 업무 성향을 가진 업체들로 눈높이를 낮추게 될 거고, 업체는 강력한 스킬로 무장된 신입 디자이너들로 매년 채워가며 연봉을 계속 높게 쳐줘야 하는 여러분은 슬슬 밀어내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높은 연봉 인상을 전제로 한 이직은 더더욱 힘들어질 테죠.


이제 힘들어도 UX라는 산을 넘었던 친구들과 여러분은 해가 갈수록 경제적인 부분에서만큼은 확실히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축하합니다. 부모님의 유산이라도 크게 물려받을 게 없다면 더욱 큰일이 났습니다. 이때 생각나는 소설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소설 마션(Martian) 도입부 / 출처 리디북스


절반은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제 주변에 지금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실제로 저런 악순환에 갇혀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던 지인이 부모님께서 큰 질환을 얻어 고생하실 때 병원비도 제대로 마련 못해 끝내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을 때 장례식에서 오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나치게 속물 같은 이야기지만 이 글이 여러분이 앞으로의 UX 프로젝트라는 험난한 과제들을 헤쳐나갈 때 동기부여가 됐으면 합니다. 제 수강생들이, 제 학생들이 저런 눈물을 흘리는걸 저도 원치는 않으니까요.




그럼 다음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프로젝트 준비로 넘어가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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