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가능성, 인간에 대한 이해부터가 시작
저도 이제 연식이 되다 보니 내로라하는 회사에도 몇몇 지인이 있는데, 자주 술잔을 기울이는 형님 중에 국내에서 3위 안에 드는 유명한 모 디자인 에이전시의 그룹장이 한분 있습니다. 예전에 형님에게 호기심에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죠. "형, 형은 신입 뽑을 때 뭐 보고 뽑아?" 그랬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결하더군요.
생각할 줄 아는 놈
이유를 알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왜 디자이너인데 스킬이 가장 우선이 아니냐고 술기운에 장난 삼아 치근덕대며 캐물어 봤는데 대답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더군요.
자기 밑에서 키워낸 애들만 세어봐도 이제 세 자릿수는 된다고 하는데, 요샌 벤치마킹도 쉽고 공개 라이브러리에도 좋은 게 너무 많아서 스킬(표현력)은 어느 정도 기본만 되고 감각만 있으면 퀄리티 끌어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고 합디다.
문제는 표현의 근거가 되는 생각,
특히 요즘같이 UX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에는 감각만으로는 이걸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신입을 뽑을 땐 무조건 1순위는 생각을 그나마 할 줄 아는 사람인가를 가장 먼저 보게 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세계에 내놔도 표현력 자체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는데 역으로 생각을 들여다보면 표현력만큼 못하다는 평이 종종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아마 교육과 입시환경의 문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보통 디자인 전공인 친구들은 대부분 중/고교 시절부터 예체능 계열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리고 입시미술 한다고 하면 학교에서 다른 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요샌 이런 게 없나요?) 같은 것도 다 빼주고 학원 가서 실기 연습할 시간을 보장해주죠. 그러다 보니 표현력 자체는 길게는 10년 가까이 다루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니 표현력은 좋을 수밖에요.
하지만 우리가 학원에서 풀네임도 제대로 모르는 아그리파*를 그려대는 동안에 잃어버린 건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아닐까 싶어요.
(*아그리파의 풀네임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로 평민 출신이지만 카이사르의 양자이며 로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를 보좌한 장군이자 정치가입니다)
차라리 멜로 소설이나 추리물이라도 읽었다면 인간의 심리라도 상상해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학교에서조차 원서로 된 비주얼 위주의 디자인 서적들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그저 읽을 수 있던 글이라면 인간의 극히 일부의 행동 원리를 간접적이나마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타이포나 편집디자인 서적 정도였을 겁니다. 아마도...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UX 디자인입니다.
User Experience 사용자(인간) 경험을 기반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직업이죠. 그런데 정작 인간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무슨 수로 내가 아닌, 그것도 완벽한 타인인 사용자의 경험 시나리오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걸까요?
이건 마치 진짜 외로움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 제멋대로 도둑질해간 아싸와도 같은 이치인 거죠. 기만자 놈들... 이건 차라리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되죠. 하지만 UX 디자인 지원자가 인간을 모르는 건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시장 조사를 하고, 구체적인 형상화를 위해 퍼소나를 그려나갑니다. 그 모든 자료들을 분석하고 증명 가능한 가설을 수립하는 것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인간을 이해하는 건 UX에 있어서 생각의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 본 시리즈의 첫 글을 읽을 땐 포폴 주제 하나 골라 뚝딱 만들면 취업에 성공할 거 같았는데, 뭔가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죠?
복잡한 거 없이 지금까지 잘해왔던 내 손끝의 스킬만으로 취업에 성공하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그건 또 다음 글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