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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닭 Dec 03. 2023

사랑 2 - 만남

이상형과 만나기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OO아 소개팅 받을 생각 있어?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 예기치 않은 톡을 받았다.  연애 생각은 크게 없었지만, 나를 좋게 봐준 것에 감사하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남녀가 만나 인연이 맺어지게 되는 경우는 정말 다양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위의 사례처럼 소개로 만나는 경우가 많아진다. 어릴 때는 교에서 많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에 비해, 점차 노력 없이는 한정된 인원만 접하기 때문이다.

  소개를 해주거나 받는 경우, 빠지지 않는 물음이 있다. 바로 '이상형이 어떻게 돼?'다. 소개팅 견적을 잡기에는 이만한 질문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형 맞지 않은 사람과도 인연을 이어간다. 이상형이 아니어도 사귀기엔 충분하거나, 이상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워 타협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남은 이상형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허나 '상대가 이상형에 맞냐 아니냐'는 나에겐 무의미한 논쟁이다. 나는 '이상형'이란 표현 자체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이상형'에 집중하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형 파고들기



  아무튼, 나는 덜컥 소개팅을 수락했다. 짧은 대화로 만날 약속만을 잡았기에, 뒤늦게 직업도 나이도 모르는 상대에 대해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상상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생각은 길어져, 내가 원하는 이상형은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이전에도 나의 이상형과 관련 있을 글들을 쓰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더 확고해지거나 달라진 부분들이 존재했다. 최근 내가 이상형을 고민하면서 집중한 부분은, '환상 깨기'였다. 아래 문단의 내용은 유튜버 '길 인간학연구소'의 영상을 참고했다.

  인간 내면의 심상을 정의하는 용어 중에 아니마(Anima : 남성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여성적 심상)와 아니무스(Animus : 여성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남성적 심상)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무의식 속의 '진정한 자아'를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상대에게 투영한다고 한다. 가령, 남성은 자신 속에 있는 여성적 심상(아니마)을 다른 실제 여성에게 투영하여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즉, 상대 여성 자체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덧씌운 환상에 끌리는, 콩깍지가 씌는 것이다. 이때 남성은 여성을 실제와 다르게 우상화하거나, 숭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실제 여성이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그러나 사랑의 격렬한 감정은 유효기간이 있기 마련이고, 콩깍지(환상)도 벗겨지기 마련이다. 나는 환상만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원치 않았기에, 이런 환상을 깨고 싶었다.

  내가 가진 이상형의 조건을 쭉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그 조건들을 곱씹어보면서, '내가 가지길 원하는 조건'인지, '상대가 가지길 원하는 조건'인지 구분해 보았다. 어려운 작업이었으나, 지난 여러 경험들을 바탕으로 하나씩 분류할 수 있었다. 과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조건들을 덜어낸다. 그러면서 반성한다. 나 자신이 갖추길 원한 조건을 상대한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구나. 이런 분별력 없는 생각이 나와 상대를 괴롭게 만드는구나 등. 거름종이에 걸러내듯, 핀셋으로 분류하듯, 차근차근 돌아본다. 어떤 조건은 깊게 생각하는 게 독이 되고, 어떤 조건은 깊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자 마지막 한 방울의 결정체를 걸러낼 수 있었다. '초면에도 잘 웃는 사람을 만나자'. 이 조건만 만족하면, 불타던 사랑이 잔불이 되어도 관계는 따뜻할 것이다.



오늘부터 1일



  만남의 날이 되었다. 평소에 안 입던 옷들을 다림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적당한 긴장감으로 약속 장소에 늦지 않게 찾아간다. 많은 기대는 하지 말자. 나를 포장하지는 말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솔직한 모습에도 웃는 사람인지 보자. 식당에 먼저 찾아가 착석한다. 뒤이어 소개팅 상대가 들어온다. 음식을 시키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잘 웃는 사람이다.

  함께 방문한 장소가 어난다. 상대에 대한 정보를 쌓아간다. 소개로 이어진 만남의 시작은 펜싱과 같다. 여러 부분을 찔러보며 유효타가 나오는 부분을 찾아낸다. 아파하는 부분에선 물러나고, 간지러워 웃는 곳에 집중한다. 또한 만남의 과정은 숨겨진 보물을 발굴하는 것과 같다. 불안한 마음으로 미지를 조심히 탐색한다. 불안을 이겨내고 찾아낸 보물은 짜릿한 성취감을 준다. 상대에게 중독되기 시작한다.

  이상형에 대한 정의가 재조합된다. 내가 빠져든 눈앞의 상대가 나의 이상형이 된다. 상대의 겉모습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확장되듯이 나와 상대가 함께하고 있는 공간의 분위기도 인식하게 된다. 주변 모든 정보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소재로 변하고, 상대의 모습이 자동으로 아웃포커싱된다. 내가 상대에게 빠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기대했던 이상형과는 만날 수 없었으나, 결국 이상형과 만나게 되었다.

  이상하다. 상대가 마음에 들 수록 유효타를 찾거나 보물을 찾으려는 계획이 흐지부지 된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 뚝딱뚝딱 삐걱삐걱하며 나아간다. 서로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울수록 신뢰는 커진다. 결국 각자의 시간에서 살아가던 둘은 낭만적인 출발선을 공유하기로 약속한다.



"오늘부터 1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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