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전쟁으로 고아가 되다

by mari

아빠는 한국전쟁 기간에 태어나셨다.

전쟁을 겪은 세대. 내가 상상할 수 없지만 무척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태어난 지 두 살 무렵 아빠의 아빠는 전쟁에 참여하셨고 전사하셨다.

아빠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아빠는 왜 아빠가 없어?"

"나는 몰라. 아빠 얼굴도 생각 안 나."


어린 나는 아빠의 대답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묻고 또 물었다.


전쟁에서 전사하신 할아버지는 전몰전사자라 유품도 시신도 찾지 못하셨다.

유일한 전사통지서.


"아빠의 엄마는 어딨어?"

"나도 몰라. 어릴 때 나 버리고 나가셨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20대의 젊은 부부였다고 했다.

남편을 잃은 할머니의 심정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갓난아이 두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야 했던 할머니.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아빠는 그저 미움과 원망만 있으셨다.


그렇게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되어버린 아빠.

할아버지가 아빠를 키우셨다.

자식을 잃고 젖도 띠지 못한 갓난아기를 키워야 했던 할아버지.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에서 젖동냥을 하며 아빠를 키우셨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무서운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하셨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슬픔을 뒤로하고 어린 손자를 키워 야했던 심정을 이해하기엔 아빠가 너무 어렸다.


아빠의 유일한 피붙이 형.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소아마비가 되셨다.

돌아가신 큰아빠에 대해 아빠는 ‘집 나간 엄마’때문이라고 하셨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큰아빠의 치료시기를 놓치고 한쪽 자리를 저는 장애자가 되었을 때 아빠는 할아버지가 아닌 집 나간 ‘엄마’를 탓하며 원망하셨다.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아빠의 어린 시절은 무척 위태롭고 위험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아빠의 어린 시절의 힘겨움을 드러낸다.


식탐과 무양념.


뭐든 잘 먹는 아빠의 모습이 흉처럼 되었던 것은 식탐 때문이다.

아빠는 밥상이 다 차려지기도 전부터 수저를 드셨다. 반찬이 하나씩 올려질 때마다 미리 다 먹어 버리셨다.

그럴 때마다 '같이 먹자'는 엄마의 잔소리가 있었지만 아빠는 고쳐지지 않았다.

누가 먹기 전에 먼저, 많이, 빨리 드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먼저 밥상에서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다.

오로지 밥만 먹고 일어서는 아빠.

어린 시절 한마디의 말도 없이 식사만 하는 아빠의 모습이 의아했다.


우연히 들었던 배고픈 아빠의 이야기.

호랑이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빠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끼니 때우기도 힘이 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 차려진 밥은 무조건 빨리, 많이 먹어야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아빠의 아픈 어린 시절의 시간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차려지기 전에 앉아 차려지자마다 드시고 일어나신다.

가족과의 식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식사 때에도 그렇다. 항상 먼저 식사를 마친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셨다. 내 눈에 비친 아빠의 이런 모습은 처량하고 부끄러워 보였고, 엄마는 아빠의 그 모습이 꼴 보기 싫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아빠의 어린 시절의 아픔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기에.

모른 척 하기가 싶지 않다.


식사를 대접할 때마다 메뉴가 똑같다. 비싸고 좀 더 맛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고 싶은데 아빠는 언제나 두부된장찌개다.


엄마가 끓여놓은 된장찌개. 집된장과 두부가 유일하다. 흔한 호박, 감자도 없는 보기에 부실한 된장찌개다.

너무나 맛있게 드시는 아빠를 따라 한입 먹어보았다. 아무 양념 없는 된장과 두부만 들어간 심심한 찌개인데 세상 최고의 음식인 양 드신다.


"너무 맛있어. 너도 한번 먹어봐"


거슬러 올라가 아빠를 키운 할아버지의 요리 솜씨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어린 손자에게 먹여야 할 된장찌개.

아이를 위해 양념 없이 심심하게 끓여 먹여야 했을 할아버지의 노력들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빠를 위해 끓인 나의 된장찌개에는 뚝배기가 넘칠 정도로 재료가 가득했다.

나는 너무 맛이 좋은데 아빠는 말로만 맛있다 했지 입술에만 적시고 끝내셨다.


"아빠, 재료가 많이 들어가야 맛있어"


아빠는 가장 배고플 때 먹었던 된장찌개의 맛을 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재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때의 허기를 채워준 그 맛을 지금도 찾고 계신 아빠.


뭔가를 선택하기엔 너무 어렸던 아빠.

생각해 보니 아빠는 혼자가 가장 편해 보이셨다. 손을 내밀어 잡아 달라할 이도 손을 함께 잡을 이도 없는 삶이셨을 것이다.


혼자가 익숙해버리고 혼자가 편하게 느껴지는 삶은 어땠을까.


나에게 아빠의 손은 잡는 손이 아니었다.

그저 바라만 보았던 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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