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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te greentea Mar 21. 2023

아침에, 수영 어때요?

아침수영, 올가 쉬베데르스카야, 2020

아침 햇살이 물가에 비춘다.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한 걸까. 사라락 물결 소리와 스치듯 지나가는 푸른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 듯하다. 두 여인이 아름다운 자태로 수영을 하고 있다. 위쪽 여인은 홀터넥의 하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반짝이는 주황색 긴 머리를 동그랗게 묶고 핀으로 앞머리를 단단히 고정했다. 수영에 능숙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무심한 듯 미소를 숨긴다. 하지만 어딘가 평화롭다. 손끝 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끝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까 상상해 본다. 짙은 녹색 수풀이 우거진 숲 속에서 나무 가지 위에 하얀색 새가 아침잠을 못 이기고 꾸벅 졸고만 있을 것 같다.

아래의 여인은 튜브탑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고 배영 하듯 물에 반쯤 잠겨있다. 왼손에는 노란색 꽃봉오리가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다. 그녀는 꽃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건네준 것일까. 물가에 핀 꽃봉오리를 탐해 꺾어 온 것일 수 도 있겠다.

이 작품은 러시아 작가인 올가 쉬베데르스카야의 그림이다. 그림 속 그녀들이 있는 곳은 어딜까, 답답한 실내는 분명 아닐 것 같다. 탁 트인 호숫가 일 것 만 같다. 핑크빛 장미 넝쿨이 감싸고 있을 것 같고, 여린 초록빛 나뭇잎들이 가득한 숲 속에 숨어있는 곳일 것 만 같다. 러시아의 호수라니. 얼음 가득한 바이칼 호는 아닐 것 같고. 작가가 상상하는 완벽한 아침의 모습을 그려낸 것일까.

우리의 아침 수영은 늘 스포츠 센터 속 일상이었는데, 이렇게도 다른 풍경으로 아침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삶이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그림이다.

벌써 꽤 오래 전이되어버린 회사에서 한창 바쁜 삶을 살았을 시절이 기억이 난다.

팀장님과 외근을 나갔었는데 외근 처는 회사에서 퇴직한 분들이 자리를 옮기시는 곳이었다. 긴 회의를 마치고 외근처 임원분이 우리에게 비싼 일식을 점심으로 사주셨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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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말이야, 그 회사에 다닐 때에는 그렇게 밤낮없이 치열하게 사는 게 정답이고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여기로 와보니 정말 다른 삶이라는 게 있더라고. 월급도 얼추 비슷한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자네들도 너무 회사에 목메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고 다른 삶의 방식도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살았으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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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도 안 맞는 맑은 대구탕을 먹으며 속 편한 이야기 하시네라며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왜 생각날까.

아침 수영 작품을 보며, 지금 내가 보고, 믿고, 결정하며 살고 있는 삶의 방식과 모습이 언제까지나 절대적이지 않음을. 지구 반대편, 아니 서울에서 몇 시간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있을 것 같은 그곳에서의 삶은

놀랍도록 다른 방식이 존재함을. 답답한 이 현실에서 잠시 도망칠 수 있는 숨구멍을 찾은 것 같은 생각을 들게 해 주는 이 작품. 오랜만에 소장하고픈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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