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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 Oct 27. 2022

8.3 교사는 처음인데... 저한테 왜 이러세요

낯설고 서툰 첫 교직 생활 적응기

  아이가 태어나서 스스로 성장할 수 없듯, 교직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교사도 도움이 필요하다. 교직이 처음이라 잘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많은 분들이 내가 교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글을 적어본다.  




  나는 아직도 대구 모 사립여고에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이 낯섦은 설렘이자 두려움이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설렘이 조금 더 컸다. 그 학교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밝고 인상이 좋아 보인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냥 늘 웃고 다녔다. 교단에 서는 것,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부끄럽지만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나의 교직 생활 첫해를 꺼내본다.

 

엥? 자리가 이게 뭐야

  교무실에서 내 자리는 국어과 비담임 원로 선생님의 옆자리였다. 그 학교는 신규 기간제 교사를 동 교과 비담임 원로 선생님 옆 자리에 배치하였다. 등 뒤에는 수학과 비담임 선생님들께서 계셨고, 동기였던 수학과 신규 기간제 선생님들이 그 옆에 앉았다. 표현은 못했지만 음료수 하나 사러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 원로 교사와 함께 있는 그 자리가 불편하고 어려웠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그 선생님들께서는 자식뻘인 신규 선생님들을 편안하게 대해주셨고 연구용 교재가 있는 서가와 교과 교실 위치, 국어과 교육과정 등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게다가 고등학교다 보니 수업 관련하여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옆자리에 국어과 선생님이 계셔서 바로바로 여쭐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학생을 교육하시는 모습에서도 배울 점들이 많았다.


  어느 날은 원로 수학 선생님께서 중학교 근무하실 때 가르쳤던 학생이 한 울타리 안에 있는 남고로 진학을 했는데, 그 학생이 스승의 날 점심시간에 찾아왔다. 해맑게 웃으면서 ‘선생님, 스승의 날이라서 왔어요.’라고 했는데 ‘야, 이놈아! 너는 스승의 날에 빈손으로 오냐? 빨리 매점 가서 박카스 한 명 사 갖고 다시 와라.’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엄청 놀랐는데, 내 표정에서 그걸 읽으셨는지 그 선생님께서는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스승의 날에 선생님 찾아와서 음료수 얻어먹고 가면 안 된다고 하시며 이런 것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이 다 예뻐서 사탕을 마구마구 뿌리고 다녔었는데 과연 내 행동은 교육적이었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음... 생각해보니 그 선생님도 평소에 학생들에게 사탕이나 과자, 음료수를 자주 주시던 것이 떠올랐다. 단, 나는 그저 내 기분에 취해 퍼주기만 했고, 그 선생님께서는 나누는 것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부담임은 비담임 아닌가요

  나는 동교과의 나이가 좀 있으신 남자 선생님이 맡은 반의 부담임을 맡았다. 그 선생님께서는 한 달간 조종례 때 나에게 같이 교실에 가자고 하셨다. 첫날에 학생들에게 부담임이라고 소개를 해주셨는데 교생실습 때가 생각났다. 조종례 하시는 동안 멀뚱히 서있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부담임은 원래 담임교사가 있을 때는 비담임이라고 들었는데 나에게 왜 그러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학생들을 파악하고 학교교육활동에 대해 빨리 이해할 수 있었고 어느새 조종례가 끝나면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중엔 남자 선생님께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나 자신의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꺼낸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 해 동안 담임의 역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다음 해 담임을 맡았을 때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학생들과 과자를 나눠먹으면(앞에서 말했듯, 학생들에게 뭐든 다 나눠주고 싶었다.ㅎㅎ) 항상 새까만 손으로 집어가던, 손 좀 씻고 다니라는 내 잔소리에 연필 가루 밥을 많이 먹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던 아이가 2년 뒤에 내가 근무하는 경주로 찾아왔다.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고, 대구벽화사업에 참여하여 동남아(캄보디아였던 것 같다) 여행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밥을 사겠다고 했는데, 차마 얻어먹지는 못했다. 그 아이의 손톱 밑은 여전히 까맣게 빛나고 있었고, 그 손이 멋있고 대견해서 내가 밥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아, 저는 여전히 나눔을 가르치기 어렵습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부담임이랍시고 학급과 연결해주신 담임 선생님 덕분이다. 담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가 담임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담임으로서의 보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방학 중 학급 캠프

  한 학기가 끝날 무렵, 1학년 5반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방학 때 학교 재단 연수원으로 1박 2일로 캠프를 갈 계획인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신규 선생님들께 물으셨다. 그 반에  수업은(그 학년 자체를) 안 들어갔지만 그 반은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3월부터 자잘한 사건이 많기로 유명한 반이었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학급 캠프가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같이 가겠다고 했고, 수학과 선생님 한 분도 함께 했다.


  교사 세 명이 몇 번의 협의회를 하여 나는 동화를 활용하여 여성의 주체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고, 수학 선생님은 놀이 활동을 맡기로 했다. 학교를 벗어나 학생들과 물놀이도 하고, 롤링페이퍼도 쓰고, 촛불 서약식도 하면서 때로는 들뜨기도 하고, 때로는 진지하기도 한 아이들의 모습을 짧은 순간에 다 볼 수 있었다. 캠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2학기에 그 반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소문도 들렸다.


  확실한 것은 이 활동이 나의 교육활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담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범위를 넓혀주었고, 나중에 담임을 맡아 학급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도움이 되었다. 단, 내가 꼼꼼하지 못했기에, 내가 운영했던 학급 교외 활동이 무모했던 건 비밀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우! 아찔하다.


 

  많은 선배 교사들의 도움으로 나의 첫 교직 생활은 배움으로 채워졌다. 교직에 임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어떤 선배 교사인가를 되돌아본다. 선배 교사의 역할을 잘하고 있나?라고 자문하니 그전에 요즘 후배 교사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곰곰이 따져 보니 나는 교사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후배 교사보다는 선배 교사와 더 많은 대화(논쟁이나 설득일지라도ㅋ)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선배 교사가 편하다 보니 후배 교사와의 대화나 일에 소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불통인, 어려운 선배 교사가 되어가는 것일까?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셨던 선배 교사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위트 있고, 젠틀하고, 몸은 바빠도 마음은 여유롭고 따스했던 그분들. 나도 그런 선배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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