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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Sep 24. 2022

소방관으로 살다 PART 1.

- 누군가에게는 환상, 누군가에게는 현실, 나에게는 무모한 도전.

의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진 않죠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자랑스러워 할 만 한 멋진 직업이다. 소방관은 무엇보다 명예로운 직업인데 그 이유는 각종 국가재난에 동원되는 국민의 슈퍼맨 역할을 하기 때문인 듯하다.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존경한다. 특히 그 일의 고됨과 노고를 옆에서 봐와서, 또 짧지만 나 역시 소방관으로서 살아봐서 그들에게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소방관으로 있었을 때 소방관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강연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소방관과 의사는 모두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고귀한 직업입니다. 그런데 소방관분들이 더 훌륭한 이유가 있어요. 의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진 않죠. 그러나 소방관은 목숨을 버리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소방관님들을 더 존경합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나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누구는 목숨 바치고 싶어서 바치는 줄 아나. 나도 시켜만 주면 의사가 더 하고 싶거든. 


    

 "너 나랑 같이 소방공무원 시험 볼래? 여자는 불 안 끈대!"


첫 대학에선 멋진 동아리 선배에게 빠져서 밤새는 줄 모르고 노느라 , 두 번째 대학에선 관심 없는 전공을 선택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느라 시간만 보내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너 나랑 같이 소방공무원 시험 볼래? 여자는 불 안 끈대!"

세상모르는 분야로 진로를 삼아보자 했을 때(세상모르는 분야를 진로로 삼는 사람도 없겠지만)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직업인가를 고민해 보았어야 함이 지당함에도 아니 난 도대체 왜 거기서 고뤠?! 그럼 함 해 볼까!! 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진정 모르겠다. 소방관을 뽑는 시험과목이 국어, 영어, 사회, 국사였던 것이 내가 그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지금은 소방법이필수과목이지만 그 시절 나에겐 왠지 친숙한 과목들로만 구성된 그 시험에 무모한 용기를 냈다. 무모하고 용감한 나는 두 달 뒤에 소방관시험에 응시한다. 그리고 합격. 


  사실, 두 달 공부해서 공무원시험에 합격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수능을 여러 번 봤고(이후에 또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학원에서 과학과 사회를 가르치는 알바를 하고 있었기에 시험을 보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았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하긴 했다. 겸손을 위해 내 노력까지 별게 아닌 걸로 만들 순 없지. 다만 그 해 소방공무원자격시험에는 사상 유래 없이 많은 인원을 뽑았었고 특히 119구급대원으로 한정되어있던 여성소방관의 역할을 화재진압 현장으로 확대하자는 목소리에 힘입어 여성대원을 100명이 넘게 뽑는 파격 행정이 있던 해였기에 분명 운도 따라주었다. 그 이후에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많은 인원을 뽑지 않았던 것 만 봐도 내 실력만으로 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높지 않은 경쟁률이었고 한번 해 볼 만 한 도전이었다.      

  필기만 합격한다고 소방관을 시켜주진 않았다. 2차는 체력검정. 이게 큰일이다. 일단 몸무게 제한부터 통과하자. 48키로가 넘어야 했지만 그때만 해도 날씬했던 나는 그 기준에 한참 미달이어서 동전을 양쪽 주머니에 가득 채워 넣고 체중계에 올라갔다. 너그러운 감독관은 볼록한 내 주머니가 쨍그랑 거렸지만 눈감아주셨다. 이제 진짜다. 무엇보다 오래달리기가 너무 자신 없었다. ‘설마 떨어지겠어’ 싶은 마음으로 그저 달렸다.


살면서 진심 죽을뻔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였다. 


마지막 한 바퀴를 돌아 들어오면서 감독관이 날 안아서 받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나뒹굴며 폐가 입으로 튀어 나왔을 것이다. 나는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내가 지금 응시하고 있는 체력시험이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소방공무원을 선출하는 시험이고 이정도 달리기에 나가떨어질 체력이면 알아서 자격을 의심 해봐야했고 또 내가 진짜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았던 시험과목들과 사상 유래 없던 많은 인원선발, 너그러웠던 감독관 덕분에 

나는 그렇게 소방관이 되었다. 


'삐~~~!! 삐~~~!! 화재출동! 화재출동!'


낮이나 밤이나 울려대는 무서운 화재출동 벨소리. 


벨소리라기보다 큰일이 났으니 당장 뛰어나오지 않으면 오일남 할아버지의 말처럼 "모두 다 죽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 공포의 소리. 그 시절의 화재출동 벨소리에 발작을 일으킨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던건 분명하다. 고통을 호소하는 소방관들이 늘어났고 지금은 뱃고동 소리나 소쩍새 소리 등으로 대체된 그시절의 화재출동벨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울려댄다.

  벨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바로 반응한다. 이어서 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사수보다 먼저 소방차에 타야한다. 사수까지 타면 요란뻑쩍지근한 싸이렌을 울리며  소방차가 출발한다. 달리는 차안에서 빛의 속도로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착용한다. 불이 난 지점이 소방서에서 5분 이상 걸리는 곳이면 그래도 가능하지만 가까운 곳 이라면 내가 내 몸을 지킬 복장을 착용 할 시간 따위는 없다. 사수가 준비 되면 나도 따라 내려야하고 관창(소방수가 나오는곳)을 끌고 앞으로 전진 하는 사수가 중간에 호스 때문에 버벅거리지 않게 호스를 잘 당겨줘야 하며 사수 뒤에 바짝 붙어서 물이 차서 무거워진 호수를 어깨위로 높이 들거나 겨드랑이에 바짝 끼워서 조수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여자는 불 안끈다고?

소방관이 된 첫날 새벽부터 거의 매일을 긴 밤 한번 자본적이 없이 출동했다. 물론 그곳은 경기도에서 불이 두 번째로 많이 나는 지역이긴 했지만 소방관이 이렇게 불을 열심히 끄는 일일 줄은 진정 꿈에도 몰랐다. 

도대체 왜 국어, 영어, 사회, 국사로 소방관을 뽑은 거지? 

또한 나는 어느 조직이나 막내가 하는 일,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도 해야 했는데 가령 공기호흡기에 공기가 가득 차 있는지 체크하는 일, 교대 근무자들의 짐을 꺼내고 우리 팀의 방화복과 안전화, 공기호흡기를 차에 세팅하는 일, 그리고 아침 교대 시간에 모두를 위해 커피를 타서 대령하는 일, 소방서장님이 소방서에 와서 식사하시는 날엔 아침을 차려드리는 일 등이 그것이었다. 1년 정도 지난 뒤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그 일이 넘어가기 전까지 가장 막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했다. 나는 그런 부차적인 일에 더 힘을 쏟았던 것 같다. 현장에서 한 사람 몫을 해 낼 수 없는 현실을 그런 일을 하며 만회해보려는 마음이었다. 소방서역시 공공기관으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무적인 일들이 즐비해 있었고 그건 자연스레 내 몫이 되어가고 있었다.     


"너희 집에 불 안 났어!"     


내가 좋아했던 우리 사수는 대머리 반짝이 노총각이었다. 안 그래도 소방서는 항상 인력이 부족했는데 소방관을 400명이나 뽑았을 때 그들은 일을 덜어줄 건장한 청년이 오게 되기를 얼마나 기대했을까. 

내가 신규직원으로 들어갔을 때 당황스러워하던 그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원망스러운 건 당연히 나 자신이었다. 

화재현장에서 나의 역할은 재빨리 움직여 선배들을 돕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 것 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수는 나를 한 번도 자괴감을 느끼거나 이곳에서 필요 없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몸으로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나를 귀엽게 봐주었고 소방서 생활의 작은 팁부터 불 끄는 요령, 또 조수로서 해야 하는 일 들을 나에게 일임함으로 소방관으로서 존재가치를 갖게 해주었다. 

 여자가 불을 끄는 것에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소방서에는 키 158인 나에게 맞는 방화복도,  발사이즈 220에 맞는 안전화도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내 운동화를 신고 그 위에 소방안전화를 신어야 했다. 그랬어도 신발은 헛돌았고 벗겨지지 않게 언제나 발등에 힘을 꽉 주고 걸어야 했다. 방화복 소매는 서너 번은 접고 바지는 접어올린부분만 30센티. 그런 차림으로 불을 끄던 작은 여자아이에게 사수가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너희 집에 불 안 났어."

  소방관이 안됐더라면 여기저기서 불이 진짜 그렇게 많이 나는지 몰랐겠지. 그리고 가끔 만나게 되는 엄청난 화마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 집채 만 한 불이 활활 타고 있으면 당장 들어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 마음으로 서두르다가 무서운 일을 당하는 경우를 여럿 본 선배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 남편의 눈앞에서도 생겼던 그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우연히 일어난 건 아니었다. 초보소방관의 안전을 위해 그가 해준 말이 있다. 글쎄.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막 들어온 초짜에게 선배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 너희 집에 불 안 났어. 

풀어보자면, '네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 서두르지 말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나는 절대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정도겠지. 

물론 대머리 반짝이 내 사수가 툭 던진 그 말이 정말 저 의미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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