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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27. 2022

스위스 제네바의 두 고양이

꼬리 없고 앞발 없는 스위스 고양이들의 예쁜 우정을 다룬 동화

차가운 이슬이 뽀얗게 내리는 스위스 제네바의 새벽, 가로등이 줄지어 선 거리가 빛으로 아름답습니다.

마치, 곱게 빻은 별가루를 뿌린 듯 보도가 반짝거립니다.

바다와 같이 푸르고 넓은 레만 호수 근처에 살고 있는 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적 외교 도시, 제네바에 살고 있는 고양이 '초코치즈'입니다.


여느 날처럼 나는 깨끗한 레만 호수 앞 햇살 좋은 계단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하얗고 우아한 백조 여러 마리가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서로 받으려고 옥신각신한 모습을 한동안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햇빛에 눈이 부셔서 솜사탕 같은 앞발을 쫙 펴고 호수를 바라보니 발가락 사이로 제토 분수가 하늘로 힘차게 쭉 하고 뻗어 오릅니다.

기분이 좋은 나는 노란색의 구슬처럼 빛나는 나의 눈동자 주위에도 침을 발라 한껏 가지런히 다듬어 놓습니다.

개구진 호수 바람이 살랑 불어와 내 가지런한 머리털을 훅 하고 불어 놓고 깔깔거리며 지나갔지만 그 호수 바람도 얄밉지 않습니다.

'이때쯤이면 '플라빈'이 나올 시간이 되었는데...?' 하며 나는 플라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내가 사는 이곳 스위스는 고양이와 강아지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지나갑니다.

걷다 보니 벌써 플라빈의 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큰 창문들 사이로 맨 아래 작은 구멍이 보입니다. 그것은 고양이가 지나다니기에 딱 알맞은 크기이지요.

그런 고양이 구멍이 있는 곳에는 나무나 철제로 만든 직선과 곡선을 잘 섞어놓은 작은 사다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양이 사다리'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는 집집마다 저런 '고양이 사다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창문가에 걸쳐진 저 작은 사다리들은 집주인들이 집고양이의 외출을 위해 만들어 놓은 특별한 사다리로 스위스 집고양이들은 평생 집안에만 갇힌 삶을 살지 않습니다.

외출이 하고 싶을 때는 아무리 높은 곳에 사는 집고양일지라도 집집마다 놓인 저런 사다리를 통하여 자유롭게 외출을 즐길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고양이들은 스위스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플라빈'이라고 불리는 집고양이인 그 애는 빌라 3층의 하늘색 나무 창문이 달린 예쁜 집에 살고 있습니다.

햇병아리처럼 노란 털을 가진 그 애는 언제나 성격이 매우 밝고 쾌활합니다.

플라빈은 하늘색 창문가에 앉아서 호기심이 가득한 노란 눈동자로 밖을 바라보다가 사람들이 조용한 틈에 살며시 얇은 나무 계단으로 날렵한 앞발을 먼저 내밀어 사다리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하늘색 창문 옆에 있는 2층 집 고양이 사다리를 지나고, 1층의 사다리를 반쯤 내려올 때 날렵한 몸놀림으로 몸을 날려 가뿐히 바닥으로 뛰어내리곤 합니다.

어찌나 몸이 날렵하던지 플라빈은 공중에서부터 미리 안정된 착지자세를 잡고 사뿐하게 바닥에 뛰어 앉습니다.

플라빈의 집사가 창밖을 보며 크게 말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플라빈! 오늘도 잘 놀다 와!"

"네! 뭐 이 정도쯤이야! 고양이에겐 식은 죽 먹기죠, 안 그래?" 플라빈이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멋있게 말합니다.

나는 그런 그 애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멋있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전에 사고로 꼬리가 잘려 나가 높은 곳에서 중심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뛰어내려 앉는 것은 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나는 집사가 챙겨주는 아침밥을 일찍 먹고 외출을 하여 레만 호수 계단에 앉아 플라빈을 기다렸습니다.

유유히 수영하던  백조 무리가 갑자기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생겼으니 아담한 둥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수컷 백조와 다정스레 말하던 암컷 백조 한 마리도 '앗! 깜짝이야! 뭔 일이야!'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나는 무슨 일인데 저렇게 갑자기 요란해졌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레토 분수쪽으로 가까이 달려갔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요트와 요트 사이에서 크게 부딪쳐 떨어졌는지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앗! 저 노란색 털은!" 내 친구 플라빈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요트를 손보고 있던 어떤 아저씨가 두발로 성큼성큼 물안으로 들어가더니 움직이지 않는 플라빈을 들어 올렸습니다.

동물병원에서는 플라빈의 마이크로칩을 확인하여 집사에게 사고 소식을 알렸습니다만 그 사고로 플라빈은 앞발 하나를 잃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플라빈은 밖으로 산책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플라빈이 좋아할 간식을 하나씩 물고 플라빈의 집 고양이 사다리를 타고 병문안을 가곤 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나는 하늘색 나무 창문이 있는 3층 플라빈의 집 앞에서 '야옹!'하고 플라빈의 이름을 불러 보았습니다.

잠시 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플라빈의 병아리색 노란 털이 창문 구멍으로 나오더니 한쪽 앞발로 조심스레

고양이 사다리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플라빈은 조심조심 세발로 고양이 사다리를 타고 1층까지 절뚝이며 걸어서 내려왔습니다.

"고양이 사다리가 유용하네!"나는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혹시나 항상 폴짝폴짝 자유롭게 뛰어다니곤 했던 플라빈이 앞발을 잃고 슬퍼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되던 터라 평상시보다 더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플라빈! 친구! 오늘은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어. 우리 함께 가보자고!"

"어이쿠! 이 길치 고양이, 초코치즈께서 나를 어디로 데려간다고? 야옹"

맞습니다. 나는 길치 고양이기도 하지만 플라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플라빈, 우리는 UN본부로 갈 거야"

플라빈은 아무렇지 않은 듯 평상시처럼 웃었지만 절뚝이는 자신의 모습에 평소와 달리 살짝 울적해 있었습니다.

나는 예전에 내가 꼬리가 잘려 나갔을 때의 기분과 같을 거라 생각하며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모른 체 했습니다.

세발의 플라빈과 나는 파랗게 빛나는 레만 호수 쪽으로 향하여 걷다가 버스를 타고 사람들 틈에 끼어

UN본부 정문 광장에서 내렸습니다.


"들어가야지! 뭘 하고 있어?"플라빈이 말했습니다.

"아니, 안 들어가도 돼. 우리 이리로 가보자!"나는 광장 쪽으로 향하며 말했습니다.

그때, 플라빈은 갑자기 움찔하더니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저기, 너도 보이지? 저 커다란 의자 보이지?"

바닥에 깔린 분수 너머로 12m의 거대한 갈색의 나무의자를 보며 플라빈이 말했습니다.

"그래, 저거 *'휴머니티 앤 인 크루전'이라는 사람들이 만든 의자잖아. 너도 알지? 전쟁에서 지뢰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을 의자로 말하는거."하고 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나는 위태로운 세발의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우뚝 서 있는 큰 나무 의자의 굳센 의지가 보여." 하고 플라빈이 말했습니다.

"초코치즈! 오늘 나에게 보여주려던 것이 UN본부가 아니라 사실은, 이 세발 의자였지? 그렇지?

난 오늘 감동받았어! 저 의자도 나도 세발로 우뚝 서 있어! 우린 넘어지지 않고 우뚝 서 있다고! "

순간, 플라빈의 노란 눈망울이 샛별처럼 빛이 났습니다.

"그래, 플라빈. 사실, 내가 오늘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저 의자였어."


"하하하. 그래, 고양이 두 마리가 한 마리는 꼬리가 잘려나가 없고 또 한 마리는 앞발이 없네! 그렇지만 우린 이렇게 즐겁게 씩씩하게 지낼 수 있지. 우린 정말 멋진 고양이야! 그렇지? 초코치즈!"하고 플라빈이 나의 어깨를 뚝 쳤습니다. 우리는 씩씩하게 세발 의자 밑으로 지나가며 서로의 얼굴을 비비며 웃었습니다.

우리를 보고 있던 장난꾸러기 호수 바람도 반대쪽 UN본부 만국기를 후루룩하고 불어 날리며 웃으며 날아갔습니다.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 영리 조직으로 전신은 'Handicap International'입니다.

'부러진 의자'는 전쟁에서의 민간인 피해자의 위태로운 상황을 형상화시킨 작품입니다.

*예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UN장애인 권리 협약'회의에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동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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