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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06. 2022

최루탄을 맞은 서점 고양이, '메르하바'

고양이의 천국, 튀르키예



기다란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카디쿄이 골목길에는 사랑스러운 상점들이 가득합니다.

그 기다랗고 자그마한 상점 골목에는 언니들이 좋아할 반짝이는 작은 액세서리부터 오래된 앤틱 소품을 파는 상점, 레코드 턴테이블을 파는 상점, 예쁜 빛깔의 구두를 파는 상점, 시럽의 찐득한 달달함이 뚝뚝 흐르는 바클라바 가게, 화려한 모자이크 전등 가게, 돈두르마를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줄을 서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상점 진열대마다 고양이들이  마리 이상 살고 있다는 것인데요, 고양이들은 심지어 도로가에 주차된 자동차 지붕 위에서도 편하게 늘어져 낮잠을 잡니다.


우리의 서점 고양이 '메르하바' 역시 늦은 아침을 먹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앞발로 양볼을 연거푸 비벼대며 세수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유럽 쪽 탁심 거리로 치킨 다리를 한나 얻으러 갈 요량이거든요.

주위의 친구 고양이들은 능청스럽게 느릿느릿 거닐며 사람들이 던져주는 고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보스포루스가 보이는 해안 도로 가장자리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평화롭게 그루밍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초록색과 파란색을 함께 섞어놓은 듯 출렁이는 바다에는 종종 돌고래 떼가 와서 헤엄을 치고, 동그란 ‘시미트 빵'에 맛들인 통통한 갈매기들은 바닷바람을 마주하고 가뿐히 배위로 날아오릅니다.  

얼마나 그림 같은 풍경인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행복해지지요?

그래서 서점 고양이, '메르하바'는 이곳 아시안 사이드 '카디쿄이'바다 근처 서점에 살고 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고양이를 쫓아내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고양이들도 역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 요염하게 사뿐사뿐 다가가서 고로롱고로롱 골골송을 부르며 양볼을 손등에 비벼대지요.

'부이룬!(여기!) 습습습습!' 하고 고양이를 부르는 사람들의 입술소리가 여기저기서 납니다.

'습습습습!' 이렇게 불러야 터키 고양이들은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메르하바는 자존심이 강하고 콧대 높은 고양이라 ‘습습습습'하고 불러도 쉽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아주아주 도도하고 고집있는 서점 고양이거든요.

세수와 그루밍으로 멋을 낸 메르하바는 '카디쿄이' 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베이욜루'의 '퍼니큘라'를 탔습니다.

'퍼니큘라'를 탄 이유는 가파른 오르막 언덕을 한껏 멋을 낸 도도한 고양이가 어찌 걸을 수 있겠어요?

메르하바는 도도한 발걸음으로 콘스탄티노플 시대 만들어진 오래된 갈라타 타워 근처에서 사뿐히 내렸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한가득 하고 빨간 트램의 종소리가 '땡땡땡땡’ 하고 정신없이 울리는 곳이 '탁심'의 '이스틱랄' 거리입니다.

그 거리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의 수많은 다리 사이로 쏙쏙 피해 가는 메르하바의 유연함이 보이시나요?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저기는 독일 사람, 인도 사람, 여기는 프랑스 사람, 한국사람… 온갖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여기로 오는군!

이 많은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 빨간 트램이 지나갈 수 있는지 항상 의문이야…” 메르하바는 구시렁거리며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메르하바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칫하고 섰습니다. 얼굴을 보니 깜짝 놀란 기색인데요.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메르하바의 기분 좋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걸까요?

메르하바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앞발로 코끝을 재빨리 가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거 무슨 냄새지?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는 거야?"


바로 그때, 메르하바 옆으로 노란 어미개가 달리며 소리쳤습니다.

'어이! 거기! 고양이! 어서 도망가! 오늘 거리에 시위가 있어! 위험해! 어서 도망가!'

메르하바가 고개를 빼고 아래를 보니 정말 시위대가 얼굴에 붉은색 복면을 하고 뭐라고 뭐라고 크게 외치면서 무엇인가를 던져대고 있었습니다.

거리 아래부터 '총... 사임하라!'라고 쓰인 여러 플래카드와 피켓들 뒤로 시위대와 전투경찰들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빈병 같은 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더니 길바닥에서 펑! 하고 터졌습니다.  매캐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주위로 하얗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최루탄이다! 어서 피해!"

사람들은 기침을 콜록콜록 해대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메르하바도 놀라서 도도함은커녕 공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허둥지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메르하바는 이리저리 뛰면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회색 연기가 거리에 가득 차도록 최루탄을 던지고 또 던졌습니다.

뻥! 뻥! 하고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른들과 아이들, 외국인들의 비명소리가 가득 찬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내 '이스틱랄' 거리는 따갑고 매캐한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게 되어 마스크와 복면을 쓴 사람들조차도 뒤죽박죽으로 바닥에 쓰러져 눈물과 콧물을 범벅으로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바리케이드 뒤의 경찰들도 기침을 연신해대며 콜록거리며 서있었습니다. 


메르하바도 그 독한 연기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뿐 아니라 두 눈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앞발로 눈을 계속 비비고 닦아내 보았지만 그럴수록 두 눈을 점점 더 피가 나는 듯 따가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근처 마트의 생수를 사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과 얼굴을 계속 씻어내고 있었습니다.

메르하바를 비롯한 거리의 고양이들과 강아지들은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멍멍 짖고 야옹야옹 비명을 지르고 쓰러져서 따가운 눈과 코를 계속해서 앞발을 이용해 닦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습습습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메르하바 곁으로 어떤 남자 어른이 다가왔습니다.

생수를 들고 병마개를 열더니 '메르하바'의 눈에 생수를 붓고 침이 흐르는 입을 깨끗한 생수로 씻어내 주었습니다.

따가움에 감긴 쓰린 눈도 씻어내 주었습니다.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 사람들도 생수를 사서 자신의 얼굴에 붓고는 주위에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얼굴을 씻어 주었습니다.

메르하바는 한결 눈뜨기가 수월해졌습니다. 조금 전처럼 그렇게 따갑고 맵지 않았습니다.

메르하바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고맙다고 '미아~우'하고 인사하였습니다. 고마움의 표시로 양볼을 그 아저씨의 바지자락에 비벼댔습니다.

얼마 후, 시위대는 출동한 경찰들에 의해 정리가 되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거리에 자욱한 가스와 연기도 보스포루스 골든혼의 바닷바람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 거리는 곧 안정이 되었습니다.


메르하바는 원래의 목표대로 치킨가게 옆을 도도하게 어슬렁거리다가 통통한 닭다리 하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야” 메르하바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객선을 타려고 내려오는 카라쿄이의 생선가게 옆을 지날 때, 치킨을 포식한 메르하바는 목이 몹시 말랐습니다.

골목골목 사람들이 마련한 작은 그릇들에 고양이를 위한 마실 물이 보였습니다.

물그릇 옆에는 사료그릇이 깨끗하게 놓여 있었고 사료그릇 옆에는 겨울 추위를 피할 강아지와 고양이들의 안식처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여전히 다투고 때론, 큰 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메르하바는 이곳 튀르키예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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