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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27. 2022

프라하의 고양이가 된 공주이야기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의 할로윈 고양이 공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한 프라하에 올해도 10월이 되자 할로윈 호박등이 더해져 거리가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뾰족하고 까만 첨탑 모퉁이 위에 새와 사람을 합쳐 놓은 듯 기괴하게 생긴 가고일이 못생긴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공주님. 이번에는 꼭 성공해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셔야죠. 저를 보세요. 가엽게도 마법을 풀지 못해 이런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잖아요. 공주님은 이번 할로윈엔 꼭 진실한 집사를 찾으세요. 그럼, 예쁜 공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허영심이 가득했던 공주는 하루종일 고양이처럼 잠을 자거나 거울을 보며 치장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나라 일로 바쁜 신하들을 함부로 부려 먹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은, 허브가 미용에 좋으니 정원과 들판의 허브를 모조리 베내어서 무언가를 만들라 시키더니 갑자기 향기가 맘에 안 든다며 모두 가져다 버리라고 시켰습니다.

농부들은 궁궐로 몰려가 올해 허브 농사를 공주님이 다 망쳤다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들은 왕은 공주를 불러 겉모습만 가꾸려는 허영으로 농부들의 한해 허브 농사를 모두 망쳐 놓은 걸 꾸짖었습니다.


그래도 공주는 허영심을 반성하기는커녕 이번엔 그 나라의 예쁜 장미꽃을 모조리 꺾어 오라고 시켰습니다. 장미꽃으로 방을 한가득 치장한 공주는 이번엔 향수를 만들라 명령하면서 나머지는 필요없으니 모두 가져다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아무리 예쁜 장미꽃도 내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공주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습니다.

화가 난 정원사들과 농부들은 공주가 장미꽃을 모조리 함부로 꺾어 갔다며 궁궐 앞에 몰려와 항의를 하였습니다.

화가 단단히 난 왕은 공주의 방으로 얼른 달려갔습니다.

공주는 또 무슨 작당을 꾸미는지 하인들에게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공주님, 그것은 정말 안됩니다. 왕께서 아시면 저희는 물론 공주님도 큰일 나실 것입니다..."


"공주! 이번엔 또 뭘 하려고! 허영심이 너무 과하구나! 정말 안 되겠다. "

왕은 마법의 지팡이를 흔들며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얼굴이 납작하고 털이 부숭부숭한 못생긴 고양이로 변신하였습니다.

"공주는 하루종일 자고 외모만 가꾸는 것이 고양이같구나! 다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진실한 집사를 만나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달아야 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공주는 저기 저 성당의 흉측한 가고일이 되고 말 것이다. 시간은 내년 할로윈까지 주마!" 왕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고양이가 된 공주는 비투스 성당 가고일 위에 앉아 못생긴 고양이가 된 자신의 얼굴을 솜털이 부숭한 손바닥으로 가리고 마구 울어댔습니다.

어찌나 심하게 울어댔는지 공주의 눈물은 흉측한 가고일의 입을 타고 빗방울처럼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른 할로윈의 저녁, 프라하 하벨 시장 상점들에 불이 켜지고 마리오네트 인형들도 진열대 창가에 줄을 섰습니다.

아이들은 할로윈 복장을 하고 무리를 지어 'Trick or Treat'를 외치며 사탕바구니를 들고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사탕바구니에 더 많은 디저트와 사탕을 채울수록 더 많은 영혼이 구원된다는 전설에는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그저 사탕과 초콜릿을 많이 받을 욕심에 들떠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된 공주는 그 아이들의 반대쪽에서 거리를 쭈뼛쭈뼛 걷고 있었습니다.

"히야! 저거 봐! 하하하하! 정말 못생겼다! 진짜 고양이가 저렇게 못생겼네?"하고 작은 스파이더맨이 외쳤습니다. 드라큘라 복장을 한 작은 아이도 덩달아 "이 못생긴 고양이! 이거나 받아라!"하고 사탕을 하나를 꺼내 세게 던졌습니다. 사탕을 머리에 맞은 공주는 깜짝 놀라서 얼른 반대 방향으로 뛰어 도망쳤습니다.

잠을 자던 지붕 속의 박쥐들이 이 떠들썩한 소리에 깜짝 놀라 후투둑 하고 거리의 불빛이 비친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오늘 밤  내가 정말 좋은 고양이 집사를 만난다면 나는 이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어..."

화려한 불빛들에 어두움이 진해질수록 동화 같은 프라하의 풍경들이 더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날렵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행렬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치치치치 치치치" 한껏 멋을 낸 여자가 자세를 낮추더니 고양이를 부르는 프라하 사람 특유의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자 그 검은 고양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가 된 공주도 그것을 보고 살며시 그 여자에게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여자는 "악! 못생긴 고양이! 너는 저쪽으로 가!"하고 말했습니다.

공주는 그 말이 뾰쪽한 송곳이 되어 마음에 박히는 것 같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예전엔 나도 예쁘다 생각했지! 그런데 예쁜 게 전부가 아니야!'

공주는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 예쁜 것이 전부는 아니지...'성당 높은 곳에서 지켜보던 가고일도 공주를 내려다보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공주는 네모난 모자이크 바닥돌이 깔려 있는 거리를 지나 성 비투스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정원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의 '장미의 창'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며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된 공주는 그 '장미의 창' 아래에 식빵 굽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예전에 나는 내 허영으로 예쁜 장미꽃을 허락 없이 마구 꺾었었지... 저렇게 아름다운데... 모든 사람이 보고 즐거워할 장미꽃을 내 겉모습을 위해 함부로 했구나... 농부들과 신하에게도 함부로 했었고..." 공주는 진심을 담아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 성당의 예배실 한쪽에서 훌쩍이며 기도를 하는 여자가 보였습니다. 여자는 초불을 켜고 기도를 하며 한참을 흐느껴 우는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가 된 공주는 살금살금 소리 없이 그 여자의 옆에 다가가서 앉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여자의 얼굴은  상처들로 얽어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홀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왜 혼자서 울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여자는 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공주를 잠잠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펫로스 증후군'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고양이도 너처럼 못생겼었는데..."하고 피식 웃더니 여자는 말을 이어 갔습니다.

"사람들은 나와 고양이만 보면 마치 합창으로 입을 맞춘 듯 '못생겼다'라고 노래를 했었지... 그래도 내 눈엔 그 애가 세상에서 제일 예뻤어. 우린 거의 15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지냈단다. 가족이었지. 그 애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나는 다짐했어.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그런데..., 오늘은 죽은 영혼이 돌아온다는 할로윈이잖아. 난 내 고양이가 살아서 왔으면 좋겠어... 정말, 너무 보고 싶단다"


여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공주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단호하게 여자의 눈을 보고 말했습니다.

"키워! 나를! 나를 키우라고! 내 집사가 되라고!"

어안이 벙벙해진 여자는 얼떨떨해하더니, "너를! 너를 키우라고? 내가 너의 집사가 되라고...?"

"어? 어.... " 하고 잠시 망설이던 그 여자의 눈동자가 한줄기 불빛으로 흔들렸습니다.  

뚫어지게 여자를 바라보던 공주는 갸르릉거리며 그 여자의 무릎에 얼굴을 비벼댔습니다.

여자는 "그래! 내가 너의 집사가 되어 줄게! 어쩌면 너는... 할로윈이 내게 준 선물이야!"하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장미의 창'을 통하여 아름다운 빛줄기가 달빛을 타고 성당 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와 고양이 공주는 매일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자가 책을 읽을 때 고양이 공주는 그 여자의 어깨에 기대어 흉터가 남은 여자의 얼굴을 가볍게 햝아 주었습니다. 여자는 나날이 펫 로스의 슬픔에서 벗어나 밝은 얼굴로 생활하였습니다.  

'고양아, 사람들이 너를 못 생겼다 놀리지만, 내 눈에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잘 때도 예쁘고, 밥 먹을 때도 이쁘고, 똥을 싸도 귀여워! 사랑해"라고 여자는 공주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공주는 그 여자 집사와 사는 매일매일이 행복했습니다.

 

1년 뒤, 주황색 호박등이 켜지는 할로윈 저녁에 왕이 나타나 공주에게 말했습니다.

"공주가 진실된 좋은 집사를 만났구나. 그럼 이제 마법을 풀고 우리 별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가자!"


"아니. 싫어요! 난 여기에 남아 집사랑 같이 살래요. 난 지금 행복해요. 돌아가지 않겠어요"

하고 공주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후회하지 않겠니? 하지만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렴!"

"아니요, 전 여기에 남겠어요!"


그때 마침, "치치치치 치치치, 고양아!" 하는 집사의 목소리가 현관문 밖에서 들렸습니다.

고양이가 좋아한다는 허브 캣잎 장난감을 흔들며 집사가 신발을 벗을 때 공주는 얼른 나가서 집사를 반겨주었습니다.

창문 밖 멀리 보이는 비투스 성당 가고일이 아름다운 프라하의 밤거리를 기분 좋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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