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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Sep 27. 2022

전깃불이 없던 우리 집

산아래 감나무집, 우리 집엔 전봇대도 없었고 전기불도 없었다.

있는 것은 과수원 한가득 달린 초록 감잎과 네 아이의 천진한 웃음과 두 어른의 고단함.


읍내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 국민학교에서 1시간이 걸리는 산아래 우리 집은 6시가 되면 해가 졌다.

해가 지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내준 과제와 베이지색 공책, 그을음이 길게 피는 호롱불과 하얗고 기다란 양초.

엄마는 촛불 두 개를 아궁 위 위에 가지런히 켜고 나지막한 곤로 위에 노란 냄비를 얹었다.

아빠는 큰 가마솥에 성글게 썰은 늙은 누런 호박과 긴 작두로 짧게 썰은 볏짚을 넣어 쇠죽을 끓였다.

해 질 녘에 있는 것은, 늙은 호박이 달짝지근하게 익는 쇠죽 냄새와 애호박과 감자가 끓는 짭조름한 된장찌개 냄새, 그리고 꼬르륵 거리는 뱃속의 천둥소리.

회갈색의 뿔 달린 소들이 먼저 여물을 먹고 닭들이 모두 감나무 가지 위에 참새처럼 올라앉으면 그제야 아빠는 팔다리를 씻고 들어와 호야불 아래서 저녁밥을 드셨다.

바쁘게 움직이는 여섯 식구의 수저 소리,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있던 일을 서로 먼저 말하고 싶어 재잘거리는 네 아이의 웃음소리.

"아빠가 후제 읍에 가서 맛있는 빵덕 사줄께이!"

있는 것은 빵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후제는 빵떡을 먹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커지는 웃음소리와 빵떡이 있는 읍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이제 숙이도 얼마 안 있어 여중생이 될 텐데... 외딴집,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 살아서 될까? 학교도 오가고 걸어서 두 시간이 넘는데..."

"그렁께... 걱정이네..." 아빠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도 동네 가서 살자. 저기 동네는 전기도 들어오고 수돗물도 들어 온대. 친구들은 다 거기에 살고 우리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응?" 나와 동생도 한마디씩 끼어들었다.  

있는 것은 젊고 가난한 부모의 걱정거리와 천진한 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서울에서 아빠만 보고 갓 스무 살에 시집온 엄마는 아기가 생기자 결심을 했다고 했다.

어떡해서든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전기가 환하게 들어오는 읍내에 애들을 살게 하겠다고.

그래서, 감나무 과수원 일만 해도 힘든데 밭을 빌려 콩을 심었고 뙤약볕에 호미질을 하고 토마토와 가지를 심었다. 가족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깜깜한 경상도 시골로 내려온 엄마는 시골농사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삶에 대항하는 생활력과 도전이 대단하였다.

장날이 되면 엄마는 나를 걸리고 동생을 업고 큰 것만 골라 담은 토마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1시간이 넘는 시골길을 걸어 읍내 장에 갔다.

부끄러웠지만 엄마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고 했다.

"토마토 사세요..." 작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엄마는 난생처음 장터 난전에서 쪼그려 앉아 토마토며 시골 야채를 파는 일이 처음엔 부끄럽고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전기불도 안 들어오는 산골 외딴집에 철없이 놀고 있을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했다.

"토마토 좀 사세요! 정말 맛있어요!" 마침내, 엄마는 토마토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먼저 팔았다.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종이를 고깔 모양으로 말아서 한 봉지에 100원 하는 번데기를 사주곤 했다.

이때, 엄마에게 있는 것은 아이를 등에 업고 일하는 장삿일과 농사일, 조금씩 늘어가는 적금과 삶의 희망, 우리들이 흘려대는 군침, 그리고 밥해주고 장가도 보내야 할 아빠의 작은 남동생.


감나무 가지에 잎이 나고 열매가 맺혀 노란 감이 익은 가을 저녁에 두 명의 아저씨들이 과수원에 왔다.

촛불 아래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야야, 여기는 전기가 안 들어오나?"하고 물었다.

 "요새 전기 안 들어오는 집이 어데 있노?  대통령한테 편지라도 써봐라. 그라믄, 전기 들어올 수 있다!"

나는 아저씨들의 말에 용기를 얻어 연필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호롱불 아래에서 밤늦도록 편지를 썼다.

엄마가 시장에서 용기를 내었듯 나도 용기를 내어 먼 서울 청와대에 있다는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청와대 비서실에서 답장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희망을 걸고 아빠와 함께 읽어 보았다.

'현장조사를 했으나 귀하가 사는 곳은 동네와 한참 떨어져 있어 전봇대 설치에 많은 비용이 소요됨으로 전기설치가 어렵다'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실망감이었고 전기가 있는 동네 속에 한 번 살았으면 하는 소원이었다.   


2년이 지난 5일장이 서는 어느 날, 아빠와 엄마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읍내에 좀 다녀올 테니 너희들은 싸우지 말고 집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따라나서고 싶다고 같이 간다고 졸랐으나 집에 한 대밖에 없는 자전거를 아빠가 꺼내 세우면서 말했다.

"자전거에는 두 명밖에 못 타니까 동생들이랑 사이좋게 놀고 있어. 엄마하고 갔다 빨리 오께. 잘 기다리고 있으면  아빠가 읍에서 맛있는 빵떡 사오께"

우리는 맛있는 빵떡이란 말에 홀려서는 집에 얌전히 있겠다고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

언덕 너머 내리막으로 아빠가 자전거를 운전하고 엄마가 뒤에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작게 보였다.


우리는 바위에 걸터앉아 소꿉놀이를 하고 한참을 놀았다. 주황 색깔 깨진 항아리 조각을 돌에 빻아서 초록색 풀잎으로 반찬을 만드는 엄마, 아빠 놀이를 하였다.  점심때가 지나 배가 고팠던 우리는 엄마가 삶아 놓은 못생긴 보라색 물고구마를 김치와 함께 나눠 먹었다.

오후가 되어도 엄마, 아빠가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린다고 애가 타는데...

우리는 작은 소쿠리를 길게 줄로 연결해서 어리숙하게 걸려드는 참새를 잡으려 하거나 마당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닭머리에 아빠의 검정 양말을 씌워 놀리든지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쯤이면 엄마, 아빠가 보일 텐데... 언제 오려나...

아빠가 대문에 올라가면 위험하니까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만, 거기에 오르지 않으면 멀리 까지 볼 수 없었기에 대문에 조심조심 올라 언덕 저 아래를 내다보았다.

안 보인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 넷은 정말 기다리다가 눈이 빠질 지경이다.

아이들에게 있는 것은 애가 타는 기다림과 늦은 가을 햇빛.  


5시 정도가 되었나... 오후 해가 집 뒤에 아홉산에 걸리려고 할 때 언덕에서 아래에서 아빠의 자전거가 보였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오솔길로 달려 나갔다.

6학년이 된 내가 달리기가 제일 빨랐지만 3살 된 막내 동생을 안고 있었기에 제일 꼴찌에 달렸다.

엄마는 언덕을 올라올 때부터 얼굴이 빨갰다. 왜 그러지?

엄마는 울어서 얼굴이 부어 있었다.  그리고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구석 풀밭으로 급히 가더니 치마를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엄마는 소변을 얼마나 참았던지  한참 만에 일어나 울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직 아기인 막내는 엄마한테 안기고 싶어서 엄마가 우는데도 아랑곳없이 엄마 쪽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옆에 서있던 아빠는 거친 손등으로 눈 주위를 쓰윽 하고 닦았다.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데 분위기가 이럴까 서로 눈치를 보고 서있었다.

엄마가 울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읍에 내려가서 산다! 우리도 이제 전깃불이 들어오는 집에서 산다! 이제 너희들 불 켜고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실컷 놀아!'

'아빠! 엄마! 읍에다 집 샀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꿈일까 싶어 소리를 지르며 여섯이 한 덩어리가 되어 펄쩍펄쩍 뛰었다.

엄마, 아빠는 그동안 모아놓은 적금을 찾고 기르던 소를 팔아서 읍동네에 집을 계약하고 온 것이다.

이것은 엄마, 아빠가 결혼해서 1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엄마는 소변이 마려운 것도 꾹 참으며 우리가 살 집을 찾아 읍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빠와 자전거를 끌고 오면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뱃속으로부터 응어리진 울음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전기가 있는 읍내에  이사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된 해 봄이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제 케이크 촛불과 전기가 들어오는 집, 그리고  여섯 가족의 웃음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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