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안다리차기
겸손이 미덕인 줄 알고 자랐다. 작은 성과라도 이루면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서 자랑이란 걸 제대로 할 줄 모른다. 어쩌다가 ‘참 잘했어요’란 칭찬을 들으면 자동으로 “아유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하죠”를 입에 달고 살았다. 말이란 건 참 힘이 있어서, 자꾸 그러다 보니 내가 해온 일들이 별거 아니게 여겨지는 순간이 많았다. 요즘같이 자기 가치를 스스로 높여야 성공하는 시대에 이 얼마나 도움이
안 되는 삶의 자세인가.
집에서 겸손한 바가지 도장에서도 겸손할 것 같지만, 어머나?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잘한 것 같으면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코어 힘이 생각보다 세다고 하시면 씩 웃고, 사범님이 좋아요, 라고 칭찬하시면 속으로 껄껄댄다.
그래? 내가 잘했어?
이건 아마 내 재능이 전무하다시피 한 분야라서 그런 듯하다. 못하는 게 당연한 분야에서 1년에 서너 번쯤 칭찬을 들으면, 심히 즐거워지는 것이다. 도장에서는 사소하게 뭐라도 잘한 것 같으면 ‘아유, 아닙니다’가 아니라, ‘크흐, 계속 운동해도 되겠네’ 싶어진다. 주로 발차기를 할 때 그랬다. 호신술이나 형(품새) 등 에서는,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하는 이도 없건만 자꾸 머릿속 지우개가 맹활약하여 맨날 거기서 그 타령이지만, 발차기는 좀 나은 편이었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동작이나 기술보다는 열심히 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1년 반쯤 흘렀을 때였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와 모기도 기분 좋게 활개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많은 사람이 출석해서 우리는 유색 띠와 검정 띠로 나누어 발차기를 했다. 유색 띠는 도장의 맨 뒤를 보며 한 줄로 서고, 검정 띠는 앞을 보고 한 줄 서 한가운데에 나란히 선 두 사범님에게 다가가 그들이 들고 선 쌍미트를 치는 것이다. 그러면 유색 띠와 검정 띠 들이 자연스럽게 원을 그리며 이동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앞차기부터 시작했다. 앞차기, 안다리차기, 찍어차기는 발차기의 기본이므로 제아무리 검정 띠라도 이기본 발차기를 해야 그다음 단계인 연속안다리차기, 회축(뒤돌려차기), 턴차기 등을 할 수 있다. 검정 띠들은 기본을 건너뛰고 어서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발차기를 하고 싶어 안달일 때도 있다. 이해가 됐다.
발차기의 진짜 멋은 몸을 회전하는 동작부터 발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본 발차기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 유일하게 칭찬을 듣는 발차기가 이 기본에서이기 때문이었다. 그 칭찬이란 다름 아닌 “기계”라는 말이었다.
수석사범님은 종종 내게 칭찬의 의미로 “기계”라고 말씀하신다. 시키는 그대로 교과서처럼 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이게 좋게 해석하면 입력 값만큼 출력된다는 뜻이고, 나쁘게 해석하면 그 이상이 없다는 말도 된다. 실제로 사범님은 내게 야생적으로 움직여보라고 주문하실 때가 있다. 그래야 1을 입력했을 때 딱 1만큼만 나오는 게 아니라 3이나 4만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일 텐데, 운동감각이 유난히 뒤처지는 인간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도한 대로만 나와도 감지덕지였다. 그나마, 기본 발차기에서나 그렇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1을 입력해도 마이너스 값이 도출되기 일쑤였다.
그날도 마이너스겠거니 하고 연속안다리차기를 하고 난 뒤였다. 갑자기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검정 띠 라인에서 되게 멋진 자세가 나왔다 싶었으나, 아닌 듯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지금 나한테 박수 치는 거야? 나 지금 날고 기는 중고등학생들에게 박수 받은 거야? 에이, 설마. 이런 의심을 사범님께서 불식하셨다.
“와- 제희 님, 오늘 진짜 좋은데요!”
이게 무슨 일이람. 나는 박수를 치는 나의 중학생 동료들을 향해 쌍엄지를 치켜들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았느냐, 동료들아. 나의 현란한 발차기를!’
그다음 차석사범님이 들고 있는 미트에 접근했을 때에 나는 최대한 몸을 자연스럽게 회전하며 다시 연속안다리차기를 했다. 이번에도 사범님께서 “오, 좋은데요?” 하시는 것 아닌가. 마음속에서는 자만이 싹을 틔워 금세 꽃까지 피웠다.
아, 나 좀 했나 보네.
이제 뭔가 내 몸이 회전의 감각을 조절하는 거야. 그치?
나는 영원히라도 연속안다리차기를 할 수 있을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 그날 내내 어서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고, 미트 앞에서도 전처럼 위축됨이 없이 몸을 회전시켜 다리를 걷어차 올렸다. 잘했다고 생각될 때마다 즐거움이 솟아올랐다. 성서에서 이르길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라고 했건만, 웬걸, ‘우주에서 나만큼 잘 차는 40대 운동치 있으면 나와봐’ 심정이 되어, 박수칠 때 떠나기는커녕 도장의 지박령이라도 될 기세였다.
그날의 박수와 환호는 그렇게 헤매더니 마침내 입력 값의 근사치만큼이 도출된 데에 놀라서 나온 반응이란 것쯤은 나도 안다. 그 뒤 그날처럼 찬 적이 드물기도 하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신체 기량이 퇴보할 일만 남은 줄 알았건만 시키는 대로 계속해왔더니 나아지기도 하는 것 아닌가. 사람은 마지막까지 배움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이 보편타당한 진리를 특공무술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박수 칠 때 떠날 생각일랑 말고 때로는 자아 도취되기도 하면서 더 열심히 하자. 그러면 좀 더 즐겁고 뿌듯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