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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희 Jul 11. 2024

보상이 없는 장래 희망을 품을 것

#에필로그

무술대회     


얼마 전 에세이 쓰기를 주제로 강연을 하기 위해 초등학교에 갔을 때였다.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오전에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던 터라 아이들이 지쳐 있을 테니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다. 수업 주제가 ‘장래 희망’이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어휴 너무 이해가 되었다.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고생하셨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요즘 어린이와 청소년은 진로 문제를 어느 시대보다 치열하게 고민한다더니 사실인 모양이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면서 십대 초중반에 진로를 결정하라는 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더욱이 과학기술 발전으로 시대 변화가 숨 가쁜 마당에 자꾸 장래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질문하면, 묻는 자나 답하는 자나 어느 정도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이제 사람이 일평생 직업을 몇 번이나 바꾸어야 할지 모르는 시대라고들 한다. 한 가지 직업으로 21년째 사는 나조차 그다음 밥벌이를 고려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으니 과거 내 장래 희망이 뭐였든 현재의 나에게 큰 영향은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장래 희망이 뭔지 한 명씩 일어나서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때 뭐가 되고 싶은지 몰랐다. 마침 아버지께서 전직 모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책상에 “대통령”이라는 글자를 새기면서까지 큰 꿈을 꾸었노라고 말하며 압박하신 게 기억에 남아, 까짓 나도 대통령이라고 하지 싶어서, 그렇게 말했다. “내 꿈은 대통령입니다.” 그 순간 부끄러움이 엄습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지부조화가 시작되었다. 실제 내 꿈이 대통령인 듯한 기분으로 순식간에 전환된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쥐었던 듯도 하다. 사춘기 소녀의 사고란 그렇게 허무맹랑하게 흐르기도 하는 법이다.


장래 희망이라는 건 보통 대가와 보상이 뒤따르는 밥벌이를 의미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니, 자녀가 보상이 적거나 없는 일에 매진하겠다면 당연히 걱정도 될 거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살아갈수록 무엇이 될지보다 어떤 삶을 살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지 방향을 잡지 못하면, 무엇을 하며 살든 행복하지도,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기 어려워진다. 나는 어쩌다 보니 내 몸 하나는 건사하고 있지만, 과연 좋은 삶을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잠시 망설이게 된다. 자신의 행복에는 아주 오랫동안 무관심한 채 지내왔기 때문에 오롯이 나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여전히 마음 한편이 조금은 무거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특공무술이란, 순수하게 아무 망설임이나 죄책감 없이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 만큼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게도 된다.

지난 주말, 우리 도장의 유일한 동년배인 다현 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다음 날, 전국무예대축전이 있고 우리 도장 에이스인 주원이네 형제가 특공무술 부문에 출전하니 같이 가서 응원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 맞아. 대회가 있었지.


수개월 전엔 나도 참가하고 싶어 했지.


관심이 있었다. 무술을 시작한 이상 10초 만에 끝나더라도 대회에 나가보고 싶었다. 안 된다면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사범님께 제 연배에도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어보며 간을 보던 차에 물리치료를 받아오던 팔과 손목의 상태가 악화돼 마우스 클릭조차 힘겨워졌다. 대회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도장에서도 손과 팔을 많이 써야 하는 대련이나 호신술은 되도록 피하고 하체 운동과 발차기, 형을 열심히 했다.


더욱이 문자를 받은 토요일 저녁엔 왕복 다섯 시간 거리를 이동하며 강연을 하고 온 터라 지쳐 있었고, 다음 날 쉴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였다. 아, 가는 게 좋을까? 사범님께서 응원을 해주면 좋겠다고는 하셨는데? 잠시 고민한 끝에 답했다.


그러시죠, 가시죠.


소규모인 우리 도장에서 동료가 참가하는데 응원이라도 해줘야 할 듯했고, 특공무술을 배우는 이상 대회 현장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고(언젠가 나도 나갈 테니까?), 배려심이 깊은 다현 님이 내가 관심 있어 했다는 걸 기억해 건넨 제안이었기에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같이 운동한 지 2년이 다돼가지만 개인적으론 만나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이 일요일 아침 8시 반에 만나 학부모가 아니라 일원으로서 나섰다. 그리고 결과는… 아오… 진짜 특공무술인의 의리로 간신히 하루를 버텼다,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우리 두 사람은 계획형인지라 아침 8시 30분이라는 고지된 시간을 철석같이 지켜 현장에 갔지만, 제시간에 시작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도장 사람들도 안 보였다. 공개된 식순도 없어서 스태프들에게 묻고 물은 끝에 특공무술 대회는 오후에나 열린다는 걸 알았다. 음 오후. 몇 시 몇 분이 아니라 그냥 오후.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우리 도장 친구들이 참가하는 타격 대회는 오후 1시가 돼서야 시작한다는 걸 대략 15분 전에야 알 수 있었고, 그마저도 당사자들의 순서는 언제인지 기약이 없었다. 무술 대회란 참가자나 관람자나 기다림의 연속이었는데, 오래전부터 무예인이었던 이자들은 그런 기다림 따위 아랑곳없는 듯했다.


사무직에 최적화된 다현 님과 나는 “세상에 식순 안내도 없어”, “맙소사 관계자들도 순서를 몰라”, “세상에 그냥 오후래 몇 시도 아니고 그냥 오후래”, “이거 실화인가요”를 반복하며 계속 광화문 주변을 배회하고, 산책하고, 도장 친구들에게 간식을 좀 사주고, 그러다 지쳐 점심을 먹고, 그러다 마침내 여섯 시간과 여덟 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순서가 도래했을 때 무더기로 출전하는 상대 도장 청소년들에 맞서 목소리 터져라 응원하고, 형제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뒤, 바람과 같이 귀가했다. (대형 도장 무술인들아 보았느냐, 고작 두 명이 출전했으나 모두 승리하는 모습을?)


그렇게 온전히 하루를 함께하며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 가운데, 내 마음속에 자리한 말은 다현 님의 “대가 없는 일을 해보자 싶어서 나왔어요”였다. 자신은 어려서부터 보상이나 대가가 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너무도 당연했으나, 돌이켜보니 그러한 이유로 추억이 적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는, 가령 교회에 다니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자원 봉사를 하는 등 그 모든 행위에는 추억이라는 대가가 따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이 없었다. 아, 내가 뜻하지 않게 감정에 따라 해온 소소한 일들, 그 실익이 없던 일들은 그래 맞아, 나에게 때로는 고뇌에 찬 관계를 경험하게 해주었고, 때로는 특별한 문화 체험을 하게 해주었고, 더러는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과, 결과적으로 추억이라는 걸 안겨주었지. 그래서 오늘도 내가 이 자리에 있구나, 그래서 내가 난데없이 특공무술을 하고 있구나, 나로서는 큰 도전인 역동적인 운동을 했었노라고, 언젠가 추억하겠구나. 이런 순간을 함께하자고 해주다니, 최태수 사범님, 김웅 사범님, 한다현 님,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다.


특공무술을 일주일에 서너 시간 한다고 해서 갑자기 신체 건강이 혁신적으로 좋아지진 않는다. 이 운동을 계기로 대인관계를 넓혀서 외향적으로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적지 않은 나이, 유난히 뒤처지는 운동 신경, 내향인이라는 부침을 무릅쓰고 이 운동을 해나가는 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나름의 답을 내리는 것이었다.


과거 어린 시절의 나는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몰랐고, 여전히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장년이 되었다 해서 희미한 연필 스케치 수준의 미래를 선명한 펜화인 양 그리지는 못한다. 그때그때 즐겁고, 비교적 잘 맞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보통 사람의 인생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게 뭐 그리 문제인가. 하지만 적어도 삶의 자세가 확실해졌다는 점만은 펜으로 그린 세밀화 이상이다.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해보며 인생의 영역을 한 발자국씩 넓혀가고, 그러면서 자신을 더욱 잘 알고, 그래서 지금보다 즐거울 것 그리하여 역동적으로 평화로울 것. 지금의 나에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통령”이라는 대답 대신 그렇게 말할 것이다.


사범님 두 분과 동료들은 우리가 온 자체에 놀라고, 지나치게 고마워하거나 신경을 썼다. 그건 보상이 없는데 왜 왔을까 싶어서였을 테지만, 우리는 어쩌면 추억이라는 대가를 안겨줄지도 모를 장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가시적인 보상이 없어도 괜찮다. 금세 실력이 늘지 않아도 괜찮다. 타인에겐 왜 그걸 하는지 의문을 안겨주는 선택이어도 괜찮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지금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든 바로 그 일을 해야 하는 때이며, 그 순간들이 점처럼 모여서 우리의 장래를 또렷한 선으로 그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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