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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제희 Jul 09. 2024

비고란은 비워둘 것

#승단시험

“제희 님 신청 서류를 써야 해서요, 진짜 승단 시험 보실 거예요?”


수석사범님께서 물으셨다. 


“네 사범님.”


사범님의 눈빛이 아주 잠시이지만 흔들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언제였던가. 내가 보호자가 아니라 수강생으로서 입관 서류를 쓰러 왔다고 말한 날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 수석사범님은 웬만하면 당황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질문을 받아도 망설임이 없는 카리스마 자체인지라 나로 하여금 자주 감탄사를 내뿜게 하는 체육인인데, 그런 분이 당황했다는 건 내 열의가 많이 무모하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다현 님과 내게 승단 시험을 보라고 독려했던 건, 어쩌면 그런 정도의 열의로 진지하게 운동하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진짜 이 장년의 수강생이 시험을 보겠다고 할 줄 모르선 말이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다. 승급 시험이 아니라 승단 시험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빨간 띠를 두르고 있었고, 그다음에는 검정 띠이며, 검정 띠 시험은 승급이 아니라 승단용인지라 협회의 타 사범님들 앞에서 치러야 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현 님이 귀갓길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제희 님, 진짜 시험 보실 거예요?”

“네 그래 보려고요.”

“그럼 이제 제희 님과 저는 다른 길을 가는 거예요. 저는 절대 시험 보지 않을 거예요.”

“에이, 한 번 더 생각해보세요.” 

“전 정말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싫어요. 검정 띠 같은 건 필요 없다고요.”


이해가 됐다. 도장에서 승급 시험을 보는 날 둘 다 얼마나 긴장하고 부끄러워하고 자괴했던가. 우리 도장의 사범님들 앞에서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낯모르는 사범님들 앞에 가서, 그것도 넓디넓은 체육관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한다니, 당연히 나도 싫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특공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토록 기피하던 걸 조금씩 하며 살고 있는 셈 아닌가. 나는 대체 승단 시험이란 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경험해보고도 싶었다. 열심히 다현 님을 설득해보았다. 새 도복을 사주겠다, 꽃등심을 사주겠다, 함께 추억을 만들어보지 않겠는가…. 조금도 주효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현 님과 나는 진짜 다른 길을 가는 줄 알았다. 우리 수석사범님이 한다면 하는 분이라는 걸 잊고선 말이다. 어느 날 보니 사범님의 설득과 추진력에 못 이겨 다현 님도 나와 같이 승단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다현 님은 매일같이 슬픈 얼굴을 하고선 도장에 왔다. 


“제희 님, 정말 시험 보실 거예요?”


내 실력을 가장 잘 아는 다현 님 입장에서는 아주 타당한 질문이었다. 유단자가 되고 싶다면, 동작명을 듣는 즉시 그것이 무엇이든 바로 자세를 잡을 줄 알아야 하지만, 나는 발차기할 때나 약간의 총기를 발휘하지 그 밖에는 “진짜 제가 그걸 배웠나요”라는 질문으로 사범님들을  황당하게 하는 열등생이었다. 이래선 곤란했다. 그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떠올리며 목차를 잡아보았다. 총 4쪽에 걸쳐 단정하게 정리된 차례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책을 편집하거나 한 권의 원고를 쓸 때에도 가장 먼저 해보는 일이 이 차례 정리인데, 그러고 나면 어느 정도 각이 잡혔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인지라, 나는 마치 특공무술 백과사전 1권을 정리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다현 님이 왜 그렇게 걱정했는지 깨달았다. 세상에, 그동안 우리가 정말 이 모든 걸 다 배웠어? 정말? 


정말이었다. 500쪽 단행본 분량으로 원고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범님 눈빛이 왜 그렇게 흔들렸는지도 이해됐다.


그때부터였다. 문서로 각각의 세부 동작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찾아보며 아무 데서나 동작을 취해보았다. 회사 화장실 앞, 횡단보도 앞, 지하철 플랫폼, 고향집 마당, 안방과 거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도장에 가면 평소 그림자도 밟지 않았던 사범님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질문했다. 함께 운동하는 학생들에게도 성큼성큼 접근해 제안하거나 물었다. 


“우리 바깥손목수를 해볼까?”

“특공2형에서 회축 다음에 뭐였지?”


친절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들은 몇 번이고 내 질문에 답해주었고, 함께 자세를 잡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붙는다까지는 아니지만 개운했다. 그때그때 시키는 대로만 운동에 임하다가 스스로 배운 내용 전체를 일괄해보니, 아주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았던 집을 쓸고 닦고 정리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혼돈의 세계에 질서가 부여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엔 마의 호신술만 넘으면 어쩌면 통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심까지 들었다. 


그렇게 승단 시험일을 맞이했고, 시험장인 분당의 모 고등학교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잠시 평심에 타격을 받았다. 난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난 왜 저기에 있는 내 친구들, 그러니까 수많은 초등학생의 보호자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고 이 추운 날에 도복만 입고선 맨발로 체육관 바닥에 앉아 있는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스포츠와 시험은 다 정신력 싸움 아니던가. 머릿속으로 동작을 복기해보고, 구석으로 가서 손짓 발짓으로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았다. 그래 떨어져도 괜찮아, 그냥 외운 대로만 하는 거야, 틀려도 기합을 크게 지르면서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쩌면 될지도 몰라!


그렇게 인생의 드라마는 완성된다.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이 실현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고, 함께한 동료들과의 우정은 깊어지며, 매일매일 한 단계 발전해나가면서 우리 인생도 전진하는 거다. 그것이 바로 건설적인 이들의 삶이다! 


정말 인생이 드라마라면 말이다. 


엉망진창이었다. 틀릴 거라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동작들을 취할 때조차 머리가 하얘져서 남들은 한 바퀴 돌아 앞을 보고 있을 때에 뒤를 보았다. 나는 내 몸이 무슨 동작을 취하는지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을 만큼, 긴장했다는 기분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긴장했다. 그저 심사하는 사범님들이 문제를 내면 열심히 자세를 취해볼 따름이었다. 운전면허 실기시험 볼 때 말고는 여타의 시험장에서 떨어본 적이 없던 나는 다시금 절감했다. 아 이 재능 없음의 슬픔이여. 이런 불친절한 체육 같으니라고!


시험이 끝나자 사범님이 다가와서 우리를 위로해주셨다. 잘하셨어요. 

에이, 최소 서너 번은 틀린 것 같은데 잘했다고요? 세 번이면 탈락인데요?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범님이 다시 기운을 북돋아주시려 했다. 


“제가 신청 서류 비고란에 이런저런 걸 적었어요.”


음. 뭘 적으셨을까? 


“방향치 뭐 그런 거 있다고 적었거든요.”


아니, 비고란에 그런 걸 적어도 돼요? 핏, 웃음이 났다. 자세히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우리의 나이와 많이 부족한 운동 신경을 감안해 좀 봐달라고 적으셨구나. 무서운 얼굴로 연습시키더니 사실은 인간미 넘치는 장치를 설치해놓으셨네. 내심 더 아쉬워졌다. 반전 드라마처럼 나 자신과 사범님과 동료를 놀래고, 엄청난 성취감을 얻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비고란에 기대는 것이구나. 그러니까 결국 다음 달에 발표되는 시험 결과가 무엇이든, 다음번엔 비고란 따위 필요 없을 만큼 열심히 해서 다시 잘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참고 사항이 없어도 되는, 본론으로도 충분한 결과를 누구라도 원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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