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차기
최근에 유행했던 디저트 품목 하나를 들자면 단연 약과다. 디저트 가게들이 약과를 활용한 이런저런 메뉴를 출시할 때마다 내심 뿌듯해진다. 이제야 인기를 얻다니, 세상이 비로소 약과의 맛을 이해했구나. 나는 오래전부터 단것들 중 드물게 약과를 좋아했다.
약과는 고등학교 시절 종종 선물로 받은 과자였다. 몇몇 친구가 내게 부탁할 일이 생기면 더러 매점에서 약과를 하나씩사 왔다. 부탁이라야 잘 기억도 안 나는 사사로운 것들이었는데도 충청도 양반의 자제들이라 그런지, 친구 사이에도 예를 차렸다. 그중 가장 많은 약과를 사준 친구는 학구열이 남달리 높은 아이였다. 녀석은 아주 성실한 학생이었던 터라 수업 시 간에 배운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 한 번 더 설명을 듣고자 했다. 전교 1, 2등을 앞다투는 애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학생이 왜 그것도 모르는지 이해를 못할 테고, 뭣보다 그들은 제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나처럼 보통 사람이 제격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어떤 이유로 그걸 이해 못 하는지 비교적 잘알았다. 아는 내용이라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고, 정확히 모르겠는 건 같이 얘기하며 이해도를 높였다. 보상을 바라진 않았으나 약과를 받을 때마다 ‘아휴, 뭐 이런 걸’ 하는 마음이 들면 서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고딩’에게 식욕이란 거의 존재의 본질 아니던가.
약과와 함께 기억에 남는 다른 한 가지는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거나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복습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내가 복습이란 걸 했을 가능성은 낮았다. 자신의 학구열 덕분에 내 성적도 좀 더 올랐다는 걸 그 친구가 알았다면 두 번 사줄 약과를 한 번만 사줬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 끈적끈적한 단맛과 함께 기억된 탓이리라. 그 시절 그 친구와의 복습 시간이 꽤 인상적으로 남아서 성인이 돼서도 누군가 함께 배운 것이나 업무 내용에 대해 보충 설명을 부탁해오면 기꺼웠다. 함께 성장해가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굉장히 크다.
그러나, 도장에서도 이럴 줄 몰랐다. 내가 뭘 가르치는 입장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곳이 있다면 바로 우리 특공무술 도장이었다.
출입한 지 1년이 넘자 소연이라는 중학생 친구가 들어왔다. 소연이는 툭하면 다치고 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특공무술을 재미있어했다. 발차기를 주특기로 삼고 싶어 해서 계속 내게 자신의 동작을 선보이며 어떠하냐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눈치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나는 처음엔 영혼 없이 “잘하네” 했다. 소연이의 바람을 알아챈 건 워밍업으로 기본 발차기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소연이는 자기 차례에 사범님의 지도를 받으며 쌍미트를 찍어 차고 난 다음에 제자리로 돌아와 같은 동작을 연습했다. 나는 무감한 눈으로 보며 ‘열심히 하네’ 생각했다. 그렇게 혼자 연습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난 뒤 소연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돈오라 했던가. 나는 깨달았다.
음, 이건, 다시 약과의 시절이 돌아왔다는 신호잖아. 계속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야? 그다음부터 소연이가 차는 양을 예의 주시했다. 사범님이 어떤 지도를 해주는지도 귀 기울여 들었다. 그러곤 소연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한 번 찬 뒤에 나를 보고, 또 한 번 차고 나를 보았을 때 확신을 갖고 다가갔다.
“소연아, 왼발은 좀 더 틀면서 동시에 오른 다리는 접어서 올렸다가 찰 때 쭉 펴. 아니 아니, 내릴 때도 그대로 접어서 내리고, 아까보단 앞에 디뎌. 균형 잡아보고.”
어색했다. 내가 도장에서 누굴 가르치고 있는 건가. 아니, 이렇게 해도 되긴 하는 건가.
찍어차기는 앞차기와 안다리차기보다는 좀 더 어려웠다. 몸을 틀면서 다리 한쪽을 직각으로 올림과 동시에 쭉 펴서 상대를 친 다음 다시 접어서 내려야 하는 이 모든 과정에서 몸의 균형을 잡기가 초보자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 몸을 한쪽으로 살짝 비틀어 다리를 들어 올린 다음 상대의 얼굴, 허리, 허벅지와 정강이 등을 발등이나 발 측면으로 사정없이 가격하는 동작이 이 찍어차기, 흔히 말하는 돌려차기 동작이다. 서당 개 3년이면 뭐를 한다더니, 내 비록 2년 차이지만 직접 시범을 보이며 그 뭐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소연이는 옆에서 정말 열성적으로 따라 했다. 역시나, 그렇게 타인이 하는 양에 동참하니 내가 각각의 구분 동작 중 무엇을 소홀히 해서 찍어차기의 각도가 어설프게 나오는지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날은 그런 날이었던 듯하다. 그러니까 공자의 유명한 가르침,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의 날 말이다.
수석사범님께서도 소연이의 차례가 되었을 때 말씀하셨다.
“소연아, 앞에서 언니들이 하는 걸 잘 봐. 내가 언니들에게 뭐라고 말하는지도 들어보고. 그러면 내가 방금 한 질문에 답할 수 있었을 거야. 가령, 내가 제희 언니한테도 1 더하기 1은 2라고 말했어. 다현 언니한테도 1 더하기 1은 2라고 말했고. 니가 잘 들었다면, 내가 1 더하기 1은 뭐죠 했을 때 2라고 바로 말할 수 있었겠지.”
우리를 언니라고 하기엔 굉장히 큰 무리가 있었지만, 사범님의 가르침만은 사실이었다. 소연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발차기를 하는 모습과 사범님이 지도하는 내용을 잘 보고 들어보면 설령 내가 잘하고 있었던 듯한 동작도 발전시킬 만한 지점을 알게 되었다. 발차기는 보통 색 띠와 검정 띠로 구분해 연습을 하는데, 우리 색 띠 그룹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1 더하기 1이 뭔지 잘 모르는 거기서 거기인 수준들이라 더욱 그랬다. 과연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익힌다면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연이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다음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쌍미트를 차는 소리가 남달리 우렁찼고, 동작의 연결도 훨씬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자식, 좀 하는데? 내가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치자 소연이가 씩 웃으며 제자리로 왔다.
그래 소연아, 찍어차기 정도는 이제 우리에겐 약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