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활동가의 대중파워 형성기
<주민참여조례 청원 운동 일정 (주 7일)>
08:30 사무실 도착 및 물품 세팅
09:00 오전 청원 활동
11:30 점심식사
13:00 오후 청원 활동
15:00 휴식
16:00 오후 청원 활동
18:00 사무실 복귀 및 뒷정리
나는 90일 간 단순하게 살았다. 주말에도 개인 일정을 잡지 않았다. 주말은 출근하지 않은 직장인 활동가들이 합류하는 날이기에 대표청구인인 나에게는 주말이 따로 없었다.
90일 기간이 시작된 이후 초반 물품 준비에 걸린 2~3일과 조례 기간 중반부터 실행한 매주 월요일 정기 휴식 시간, 명절 정도를 제외하면 나는 매일매일 무조건 수레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는 날엔 굴다리에 테이블을 펼치거나 지하철 입구 부근에 비가 가려지는 곳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그런 날은 주민들을 많이 만나기 어려워서 성과는 적었지만 쉬지 않고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어떤 날은 상가를 돌며 상인분들께 집중적으로 청원을 요청하였고 어떤 날은 큰 공원 근처에서 산책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청원을 요청하였다. 평일 오후에는 건국대학교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학교 정문이나 후문 쪽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웃을 만나기 좋은 장소를 시간대별로도 파악하였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학교를 마친 시간은 학부모를 만나기에 좋았다. 오후가 되면 마트 등 상가 쪽에 사람들이 많아졌고 퇴근이 가까워 오면 지하철 입구 쪽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했다.
열심히 집중하면 하루에 5~70명의 주민들을 만나 청원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것도 정말 많은 인원이었지만 목표인원인 6150명을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90일의 기간 내에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균 70명의 청원을 매일매일 달성해야 했는데 어떤 날은 청원 인원이 50명조차 안 되는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중간 점검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 청원 숫자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우리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길목에서 귀인을 만났다.
“아, 방사능 이거 제가 도와줄게요! 저 청원 용지 좀 줘보세요”
“아 너무 감사합니다. 안전급식 조례 이야기 들어보셨어요?”
“네~ 우리 초등학생 딸아이가 이거 꼭 하라고 어찌나 이야기를 하던지요~”
“초등학생이요? 너무너무 고맙네요~ 청원 용지 몇 장 정도 드릴까요?”
“100장 정도 줘 보세요”
“네?? 100장이요??!”
주민참여조례를 추진하며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난 것 같다. 그중에서도 지나가는 길에 만난 ㅇㅇ 님은 본인이 100명의 청원을 받아오겠다며 용지를 가져가셨다. 사실 마음 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는데, 일주일 후 만난 ㅇㅇ님은 묵직한 청원 서류 뭉치를 돌려주셨다. 청원 운동을 계속하며 점점 체력도 떨어지고 목표 달성에 대한 불안감도 커져가던 시점에 만난 귀한 인연이었다.
알고 보니 ㅇㅇ님은 소문난 동네 인싸! 좋은 성격과 에너지로 사람들이 절로 모여드는 멋진 이웃이었다. ㅇㅇ님에게는 환경글짓기에서 대상을 받은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그 친구가 엄마에게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를 계속 설명하며 꼭 참여하라고 성화였다고 한다.
ㅇㅇ님의 활약이 계속되었다. 동네 인기인답게 친분이 있는 엄마들을 한 자리에 모아주시기까지 했다. 나는 대략의 자료를 만들어 찾아갔고 그분들 앞에서 왜 방사능 안전급식 조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왜 주민참여의 방식으로 이를 진행하는지 설명하였다.
설명이 끝이 아니었다.
“이거 우리 아이들도 다 관련이 있는 것이고 꼭 필요한 건데 우리도 뭐라도 할까요?”
“좋아요, 우리도 청원받는 거 거리에서 함께 해볼까요?”
“일주일에 1번 정도 같이 해요. 우리가 주변 초등학교 끝나는 시간 파악해볼게요”
너무나 감사했다. 엄마들이 마음을 내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청원 운동을 함께 하시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청원을 받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서 괜히 상처받으시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앞장서서 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홍보물 나눠주기라도 하겠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우리 팀 이름은 뭐로 하지?”
“환경.. 엄마들.. 봉사.. E.M.G 어때요? 환경을 생각하는 엄마봉사단!”
“너무 좋은데요? E.M.G 횐님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이름이 지어지고 집에 돌아가니 카톡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ㅇㅇ님의 센스와 추진력으로 진도가 쭉쭉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매주 한 번씩 엄마봉사단과 함께 청원 운동을 했다. 엄마들이 나서자 다른 엄마들이 먼저 호응하였다. 같은 엄마라는 동질감 때문일까? 청원 참여도 흔쾌히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엄마들은 청원 운동을 하며 아는 사람들을 계속 마주쳤고 안전급식 조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만나 뵐 때마다 너무 든든했고 에너지가 다시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봉사단은 나뿐만 아니라 활동가 모두에게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함께 청원 활동을 하며 예비아빠인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덕담도 나눠주셔서 개인적인 배움도 많은 시간이 되었다.
다음은 엄마봉사단과 함께 한 청원 활동을 마치고 나눈 소감나누기의 일부이다.
“내가 우리 동네의 제도를 직접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뿌듯합니다. 평소 정치나 제도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민참여조례를 통해 나도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은 넓고 귀인은 많았다. 함께 해준 활동가들, 엄마봉사단,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신 요구르트 어머니, 우리 가족 책임지겠다며 청원 용지 가져가시는 아버님, 귀여운 강아지와 매일 산책하시는 어머님,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아빠,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으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끝까지 따라오며 무수한 질문을 쏟아내는 어린이들까지.
“처음엔 그냥 뭐 하나, 쓸데없는 짓 하는구나 하고 지켜봤는데 매일매일 하더라고. 다들 예의도 바르고.. 그래서 뭐라도 도와줘야겠다 싶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