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 살아갈 것 같아서요
삶의 낙이란?
삶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은 내가 중학생 시절 온 정신을 사로잡았던 인생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우주로 본다면 매우 작은 존재이며, 우주 전체로 본다면 먼지보다 더 작은 미미한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삶은 눈 깜짝할 사이도 안 되는 시간이지 않을까? 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두 시간은 식은땀이 나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이 심오한 질문은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재밌게 사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결론 아닌 결론을 찾아가게 되었고, 난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게 삶의 이유라고 단정 짓게 되었다.
취미는 무엇일까?
내 취미는 요리, 그리고 전자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거나 수리하는 등의 소소하게 손으로 만들어가는 게 내 취미다. 어릴 때부터 다재다능하신 어머니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쿠키도 구웠고, 우리 집은 맥시멀리스트였기에 내가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해볼 수 있는 도구가 구비되어 있었기에 납땜을 해서 고장 난 티브이도 수리해 보는 등 시도를 많이 해봤다. (물론 콘센트를 뽑지 않은 상태로 전선을 니퍼로 끊어서 눈앞에 섬광이 번쩍하며, 니퍼는 녹아버린 죽을뻔한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게 내 취미가 되었다.
일에만 인생을 갈아 넣고 싶지는 않아요.
앞서 말했듯 건설사 현장에서의 삶은 그냥 일이 나라는 존재와 동일시되는. 무슨 말인가? 하면 그냥 일에 치여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태였다. 물론 처음에는 일을 배워서 내 것을 만들어간다는 재미도 있기는 했지만.. 나의 인생은 재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지만 현장은 내 취미를 하기에는 그냥 불가능했다. 밥은 삼시세끼 흔히 말하는 함바에서 해결하기에 요리나 베이킹은 불가. 전자제품을 뜯어보거나 뭘 하기에는 나만의 온전한 공간인 가설숙소의 내 방에는 침대하나 그리고 바퀴 달린 행거 하나 겨우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도 불가. 그래서 내 취미를 해보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의미는 재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었기에 그래도 어떻게든 낙을 찾아보고자 노력하였다.
걷고 걷고 또 걷다.
저녁을 먹고 나면 잔업을 일주일에 6일은 하였다. 현장의 일이 끝나야 처리할 수 있는 업무들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고, 주 52시간으로 인해 형식상 퇴근을 찍고 나서 다시 나는 내 자리에 앉아서 일을 했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나면 기본 9시. 사무실 문을 잠그고 유니폼 점퍼만 벗어던지고 바로 사무실 가설울타리 밖으로 무작정 향했다. 어디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나갔다. 산속 고속도로 현장이었기에 걸어 다닐 곳이 마땅히 있지도 않았다. 왕복 2차선 산속도로옆에 놓인 인도를 따라서 걷는데, 야밤에도 차들은 구불구불한 길을 시속 5~60은 기본으로 달렸다. 아찔한 상황도 가끔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에어팟을 꽂고 밴드음악을 크게 틀고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다가 몇 킬로를 걸어간 뒤에야 다시 그렇게 싫었던 가설울타리 속의 숙소로 향했다. 거의 매일 그렇게 하다 보니 정리할 생각도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그냥 무작정 걸었다.
바질을 키우다.
가설 사무실 옆 작은 개천이 흘렀다. 그 덕분에 모기가 살기 좋은 완벽한 환경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모기를 막아보고자 찾아보게 되었다. 모기는 향이 나는 풀을 싫어한다고 했다. 안 그래도 살을 빼고자 사놓은 바질씨드가 있었다. 스티로폼 박스에 휴지를 깔고 발아를 시켰다. 며칠이 지나니 콩나물처럼 꼬리가 나왔고, 조금 더 기른 뒤 가설숙소 내 방 창문 바로 앞에 옮겨 심었다. 좁은 가설울타리 안이었기에 바질 새싹을 옮겨 심는 내 뒷모습을 본 상사가 "너 뭐 하고 있냐?"라고 물어봤을 때 괜히 이런 내 소소한 취미를 들키기 싫었기에 "아 그냥 뭐 좀 하고 있다"라고 하며 풀을 치우는 척했다. 무언가를 말하면 우리 현장사람들뿐만 아니라 회사의 다른 현장사람들 그리고 본사까지 모든 사람들이 반나절 안에 그 스토리를 알고 있는 비밀이 없는 회사였기에,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습을 하나도 보여주기 싫었다.
그렇게 바질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서 잎도 나고 점점 자랐다. 커가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그랬기에 창문을 열고 물도 뿌려주고 그랬다. 점점 자라났지만 여름이 되었을 때, 잡초들이 많이 자랐기에 잔디깎이로 잡초와 같이 밀려버렸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바질이 밀리며 하나의 삶의 낙을 잃었고, 낙을 찾는 내 모습은 일에 치여 볼 수도 없었다. 뭐만 하면 “내가 사원일 때는 과장만 되어도 일하나도 안 했는데 내가 이거 해야겠냐?” 등 푸념을 내가 들어야 하나 싶었다. 내가 노력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 분명 알면서도, 그러니 말이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은 계속하였지만 결심을 하게 된 건 소장님이 그만두면서이다. 책임을 지기 싫어서 도망치듯 그만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승진을 하고 임원진까지 되더라도 저 사람들이 내 미래겠구나라는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딜 가나 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좋던 힘들던 아무렇지 않던 술로 밤을 보내는 그들 밑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제대로 된 건설사 현장에서의 낙을 찾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