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감나무 묘목을 심었다. 10여 년이 되자 나무는 제법 굵어졌다. 열매 맛이 다른 데 비해 차지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탐탁지 않았다. 감나무가 지천인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감나무 열매를 즐기지 않았다.
여자는 감나무가 자라는 터에 움막을 짓기로 했다. 감나무를 어떡한다, 눈치 빠른 일꾼은 감나무 네 그루를 중장비기사한테 팔아버렸다. 나무 심은 이와 그의 아내가 없을 때 잽싸게 처리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무가 없으니 왜 이리 서운할까. 나무에 단풍들면 눈이 즐거웠고, 붉은 열매를 지인들한테 나눔 했었는데.
남자는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겠다고 했었다. 겨우내 간식으로 먹겠다는 야무진 소망을 품었다. 남자는 감나무가 사라진 횅한 빈터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서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미안했다. 남자의 마음속을 좀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옛사람은 감나무를 칭송했다. 감나무에는 새가 집을 짓지 아니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나무는 수명이 길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며, 단풍이 아름답다. 낙엽은 좋은 거름이 되고, 열매는 맛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감은 황금빛 옷 속에 신선이 마시는 단물이 들어 있다고 해서 ‘금의옥액(金衣玉液)’이라고 불렸다.
삼국유사 ‘신주’편 ‘감호이적(感虎異蹟)’에 ‘동지섣달에 홍시 구한 효자’ 이야기가 나온다. 병든 어머니가 홍시를 먹고 싶다고 하자 효자는 집을 나선다. 이에 감응한 호랑이가 효자를 등에 태워 어느 부잣집에 데려다주었다. 마침 제사 지내는 날이라서 홍시가 있었다. 사정을 얘기하자 주인은 홍시를 주었고, 어머니는 홍시를 먹고 병이 나았다는 설화이다. 홍시는 치아가 부실한 어른들이 드시기에 그만이다. 단물이 그득하고 소화도 잘된다. 홍시는 효도하는 과일이 분명하다.
또한, 홍시는 배려하는 과일이다. 나뭇가지에 몇 개 남겨놓은 까치밥은 산새들의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옛사람들은 상대에게 이해받기보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이었기에 미물들의 굶주림까지 염려했던 것이다.
노계(蘆溪 박인로가 한음(漢陰) 이덕형의 집에 갔더니 잘 익은 홍시를 소반에 담아 내왔다. 홍시 빛이 참으로 고왔다. 홍시를 본 박인로는 문득 중국 후한 때 육적(陸績)의 고사(故事)가 생각났다. 여섯 살의 육적이 친구 집에 갔더니 귀한 유자가 있었다. 육적은 어머니께 드리려고 유자를 몰래 가슴에 감추었다는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가 전한다. 박인로는 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러나 감을 품어 가져가도 반길 부모가 없었다.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분들이다.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은 즉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박인로의 ‘조홍시가(早紅枾歌)’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홍시 먹다가 이 빠진다는 말도 있으나 살피며 나아가면 될 일이다. 홍시는 심장과 폐의 기능을 좋게 하고 갈증을 멎게 하며 주독을 푸는 효과가 있다. 베타카로틴 함량이 과일 중에 으뜸이며,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빈혈에도 좋다. 홍시를 보듬는다. 소소한 차림이나마 기꺼이 감나무를 심었던 남자에게 바치리라.
Tip: 감과 바나나를 함께 먹으면 철분 흡수를 방해하니 주의한다. 감의 타닌 성분은 지방질과 작용해 변을 굳게 만든다. 변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감꼭지 부근의 하얀 부분을 제거한 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