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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08. 2022

억울한 오명의 주인공, 도루묵


겨울철 생선 도루묵, 크기는 작으나 맛이 담백하다. 몇 해 전에 옆 아파트에 사는 김모 작가가 도루묵을 선물 받았다며 우리 집으로 가져왔다. 양이 많아 아파트 베란다에서 며칠 꾸들하게 말려 지인들께도 나눔 했다. 도루묵으로 찌개, 구이, 조림하여 질리도록 먹었다. 그 후로 도루묵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도루묵의 어원을 선조 임금과 결합한다. 임금은 피란지에서 맛있게 먹은 물고기 ‘묵’에게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후에 ‘은어’가 생각나서 다시 먹어 보았더니 옛날의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다.


도루묵은 동해에서 잡히는 생선이다. 선조의 피란길에는 도루묵을 먹을 가능성이 없었다고 전한다. 허균의 전국팔도 식품과 명산지에 관해 엮는 《도문대작》에 ‘은어’가 나온다. “동해에서 나는 생선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목어(木魚)’였는데 전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이름을 ‘은어’라고 고쳤다가 너무 많이 먹어 싫증이 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쳐 ‘환목어(還木魚)’라고 했다.”

조선 시대 이의봉이 편찬한 《고금석림》에 따르면 “고려의 왕이 동천(東遷)하였을 때 목어를 드신 뒤 맛이 있다 하여 은어로 고쳐 부르라고 하였다. 환도 후 그 맛이 그리워 다시 먹었을 때 맛이 없어 다시 목어로 바꾸라 하여, 도로목[還木]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어 ‘환목어’를 우리말로 풀이한 것이 바로 ‘도루묵’이며, 기록을 살펴볼 때 도루묵 이야기는 고려 때의 왕과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왜 도루묵은 선조 임금 옆에 끼여서 희생물이 되었을까. 선조 임금은 피란을 떠난 것도 부족해 망명까지 시도하였다. 전란에 시달린 백성들은 임금에 대해 원망을 했을 것이다. 정확한 까닭은 알 수 없으나 궁을 떠났다가 ‘되돌아온’ 왕을 애꿎게 도루묵 이야기와 연결 지은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도루묵은 크기가 작다는 것 외에 남들에게 오명을 쓸 만큼 맛없는 생선은 아니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입때껏 견디어왔다. 이제는 억울한 오명을 벗겨주어야 한다.

인조 때의 문신 이식은 <환목어(還目魚)>라는 시를 썼다.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라.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 데다/그 모양새도 볼 만한 게 없었다네.

그래도 씹어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겨울철 술안주론 그런대로 괜찮았지.

-중략-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이 아니라네.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지금은 도루묵 철이다. 제철 음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도루묵은 맛있어서 수라상에 올랐고, 맛있어서 ‘은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로써 맛은 증명된 셈이다.


모처럼 도루묵을 구입했다. 명태살보다 졸깃한 식감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생선에 미리 소금을 뿌렸다가 두어 번 헹궈내면 미끈거리는 점액질을 제거할 수 있다. 도루묵은 살이 연해 오래 끓이면 부스러진다. 찌개 국물을 한소끔 끓인 후에 도루묵을 넣는다. 도루묵구이는 비리지 않아 이 또한 별미이다. 


Tip: 동의보감에 ‘도루묵(은조어)은 속을 편안하게 하고 위를 보하며, 생강과 함께 죽을 쑤어 먹으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루묵에는 다른 생선류보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상대적으로 많이 함유되어 있다. 특히 인이 들어있어 성장기 아이가 먹으면 치아나 뼈 형성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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