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족이 즐기던 음식
수온이 높아지면 무법자가 설치고 다닌다. 비늘도 지느러미도 없는 강장동물이 무리 지어 바다에 둥둥 떠다닌다. 이 무법자를 ‘본초강목’에는 해차(海鰂), 수모(水母), 저포어(樗蒲魚), 석포경(石鏡)이라 하고, 육지 사람은 삶아 먹거나 화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였다. 영어로 풀이하면 ‘stone mirror(돌 거울)’, ‘sea moon(바다의 달)’, ‘monk's hat(중의 모자)’, 서양에는 씹히는 맛이 젤리 같다고 해서 ‘젤리피쉬’라고 부르며, 우리는 ‘해파리’라고 한다.
정약전의 ‘현산어보’에도 해파리를 삶거나 회로 먹었다는 내용이 있으나 중국 음식에 대한 기록을 따라가지 못한다. 은나라 재상이고 요리사였던 ‘이윤’은 비와 곡식의 풍흉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었다. 그가 중국의 음식을 성문화 시키며 해파리를 언급했다. 그보다 수 백 년 앞선 하(夏) 왕조의 자손인 ‘팽조’도 해파리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해파리 음식은 고대 왕족들이 즐기고 현재까지도 중국인들이 즐기는 진미 음식으로 꼽힌다.
한때 해파리냉채에 빠져든 때가 있었다. 아이들 돌상이나 어른 생일상, 집들이 손님을 맞을 때도 식탁에 해파리냉채를 올렸다. 염장한 해파리를 찬물에 몇 번 헹궈낸 후 따끈한 물에 잠시 담가 두면 꼬들꼬들 오그라든다. 너무 물컹거려도 식감이 좋지 않고, 자칫 끓는 물에 담그면 고무줄처럼 질겨져서 먹기가 거북스럽다. 그릇에 갠 겨자를 국솥 뚜껑에 엎어서 발효시키면 얼마 후 톡 쏘는 향기가 코를 얼얼하게 만든다. 겨자에 함유된 시니그린 성분은 침과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 기능을 돕고 항균작용을 한다.
30여 년 전,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자 시댁 식구들이 집들이 왔다. 시댁 백모와 숙모를 비롯하여 사촌들까지 모이자 집안이 북적거렸다. 해파리냉채를 상에 올렸는데 백모님이 한 젓가락 드시고는 식겁을 하셨다. 음식을 차리느라 서두르다 보니 소스를 많이 부은 모양이었다. 등을 두드리고 냉수를 떠다 드리고, 어찌 그 송구한 에피소드를 잊을 수 있으랴. 그 후로 어디서든 해파리냉채를 마주하면 한마디 내뱉는다. ‘매우니까 조심해서 먹읍시다’라고. 겨자소스의 매운맛에 눈물콧물 쏟아냈던 그 시절, 고초당초 매운맛은 몰라도 겨자 매운맛은 톡톡히 겪었다.
요즘은 밀키트(meal kit)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소스까지 동봉되어 나오니 얼마나 간편한가. 1인 가족, 2인 가족에게 더없는 요리 천국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식탁에 냉채가 어울린다. 해파리냉채는 지방이 거의 없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는다. 부재료에 따라 칼로리를 높일 수 있고, 화려한 차림을 할 수도 있다. 냉채에 파프리카를 넣어 색감을 살리고, 오이를 넣어 시원함과 더불어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하면 좋다. 삶은 수육과 닭고기를 곁들이면 영양적인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해파리에 오이나 무를 넣어도 좋지만, 게살을 넣어도 별미이다. 비싼 음식점에는 ‘해파리와 구운 오리고기’, ‘해파리와 닭고기무침’이 나온다. 그 외에도 해파리초밥, 해파리국수, 해파리아이스크림까지 개발했다니 해파리의 무한변신이 놀랍다.
해파리는 짜고 평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폐, 간, 신경에 귀경한다. 단백질, 칼슘, 탄수화물, 젤라틴 등이 주 성분이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관절염, 기관지염, 천식,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주의할 것은 비장과 위장이 허한 사람은 많이 먹지 않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