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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20. 2022

바다의 신선, 새우

감바스 알 아히요

장식장 한편에 있는 사기 접시를 바라본다. 접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새우 한 마리. 갑각류(甲殼類)의 ‘갑’은 십간의 첫 번째로 으뜸을 말한다. 갑옷을 입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이라니. 등이 굽어 ‘해로(海老)’라 했는데 음(音)이 ‘해로(偕老)’와 같아 ‘백년해로’를, 긴 수염을 가져서 바다의 노인, 즉 바다의 신선으로 불리고, 긴 수염만큼 오래 살라는 기원을 담아 시인묵객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새우젓은 항시 있었다. 어머니는 애호박에 새우젓을 넣고 찌개를 끓이거나, 가마솥 밥이 자작자작 뜸 들여질 때 새우젓 종지기를 솥에 넣어 쪄내기도 했다.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나 식구 중에 속이 더부룩하다는 말을 하면 새우젓은 상에 올랐다.

집 앞 도랑에는 징거미새우가 많았다. 골짜기에서 물이 내려와 고이는 웅덩이나 물을 막아놓은 보(洑) 아래 수초 덤불은 새우의 놀이터였다. 어레미로 몇 번만 뜨면 팔딱이는 새우를 제법 건질 수 있었다. 그것은 놀이였고, 시골 밥상차림의 반찬이 되었다. 된장찌개나 볶음요리에 사용한 식재료의 무한 변신, 특히 붉은색으로 변하는 게 신기했다. 갑각류는 자연 상태에서 단백질과 결합되어 있을 때는 어두운 갈색을 띠지만, 열을 받으면 결합이 풀려 붉은색을 띠는 것이다. 이것은 아스타잔틴(Astaxanthin)이라는 색소의 변화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도시에 나와서 큼지막한 새우를 보았다. 그 맛은 시골에서 먹었던 새우젓이나 징거미새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쩌다 새우튀김을 먹게 되면 최고의 밥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귀했던 새우가 뷔페 요리에 흥정망정이고 대형마트나 백화점에도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몇 해 전, 모임에서 신선한 새우를 만나러 바닷가를 찾았다. 수족관에서 펄떡거리는 새우를 건져 회와 소금구이로 먹고, 마지막에 새우머리 버터구이를 먹었는데, 그 맛이 압권이었다.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맥주 안주로 그만이었다.

새우는 다리가 10개라서 십각목(十脚目)에 속한다. 대부분의 십각류는 바다의 청소부 역할을 한다. 바다생물들의 먹이활동에서 남은 찌꺼기를 처리하는 것이다. 이들이 있으므로 바다 생태계가 혼돈을 겪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몸집이 큰 새우라는 뜻의 대하(大蝦)는 소금구이로, 단백질 풍부한 보리새우는 회와 초밥, 튀김용으로 사용된다. 살아있는 보리새우를 잡으면 팔딱팔딱 뛰는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하여 ‘오도리’라고 부르는데, 이는 ‘춤’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보리새우’라는 우리말이 정겹지 않은가.

열을 가할수록 붉어지는 새우는 정열과 사랑을 표현하기에 연인들의 식사 메뉴로 추천할 만하다. 달고 짜고 따뜻한 맛과 성질, 단백질·타우린·키토산·칼슘 등의 성분이 풍부하여 보양·보음의 효능을 지녔다. 예부터 총각은 새우를 삼가야 하고, 특히 남자가 혼자 여행할 때는 새우를 많이 먹지 말라는 말이 전해 온다. 또한 새우는 산성이 강한 식품이라서 알칼리성이 강한 아욱과 함께 먹으면 효능이 좋아지고 서로의 영양분을 보충해준다.

새우가 넉넉하다면 ‘감바스 알 아히요’를 만들어 두면 여러 요리에 응용할 수 있다. 감바스(Gambas)는 새우, 아히요(Ajillo)는 마늘을 뜻한다. 올리브유에 페페론치노(건고추)와 마늘, 새우, 기타 향신료를 넣고 끓이다가 간을 맞추는 스페인 음식이다. 바케트빵과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가 되고, 파스타를 삶아 섞으면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가 된다. 소스만 잘 만들어두면 그야말로 새우로 잉어를 잡는 격이다.

새우 싸움에 고래 등이 터지든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든지 간에 일단은 맛있는 새우를 먼저 먹어볼 일이다. 갑각류인 새우를 먹어야 ‘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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