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꼬막
벌교에 가서는 돈 자랑, 주먹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벌교의 자랑은 꼬막 음식이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은 광활하다. 소설에 나오는 음식 중에 벌교 꼬막을 더 감칠맛 나게 만든 인물이 있으니 염상구와 외서 댁이다. 염 씨는 외서 댁과 정분을 통하며 원초적 대사를 읊는다. 쫄깃한 꼬막 맛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염 씨의 완력이었다. 외서 댁은 원수의 씨앗을 품게 되자 저수지로 뛰어들었다. 죽음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던가, 외서 댁은 결국 염 씨의 아들을 낳게 된다. 이 무슨 삶의 장난이란 말인가. 삶은 갯벌과도 같은 것, 질펀하면서도 끈적인다.
보성과 화순 등을 내륙과 직결시키는 포구가 벌교이다. 태백산맥문학관, 구례, 피아골, 순천만에 들른 후에는 꼬막정식을 먹으러 가는 게 의례 코스가 되었다. 꼬막은 여러 음식으로 탄생한다. 숙회, 무침, 부침, 찌개, 파스타에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꼬막은 늦가을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서해와 남해 쪽 갯벌에 자생하며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으로 분류한다. ‘꼬막’은 우리말이다. “호남 사람들이 ‘고막’이라고 칭한다”는 기록이 있다. ‘와룡자’라고도 하는데 이는 꼬막껍질이 부챗살 같은 기와지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꼬막의 본초명은 ‘감(蚶)’이다. 꼬막은 발열식품으로 보기, 보혈의 효능이 있다. 오장을 통하게 하고 위를 튼튼하게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살이 노랗고 맛이 달다’고 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의 장흥도·해남현·보성군·흥양현의 토산물’로 기록이 되어 있다. 꼬막은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피로회복에 좋고, 철분과 각종 무기질은 빈혈에 도움을 준다.
꼬막은 다른 조개와 달리 패각에 털이 없어 ‘제사 꼬막’이라고 불린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제사상에 꼬막을 올린다. 임금님 수라상에도 8진미 중 1품으로 진상될 정도였다.
여행지에서 꼬막 음식을 먹을 때마다 궁금증이 일어난다. 조개는 삶으면 패각이 벌어지는데 벌교 꼬막은 삶아도 점잖이 입을 다물고 있다. 수저로 뒤태를 조준하여 알맹이를 끄집어내어 먹어야 한다. 주인장한테 꼬막 삶는 방법을 문의하면 꼬막 입 다물 듯 입을 봉한다. 미스터리이다. 나름 검색하고 궁리하다가 몇 년 만에 방법을 알아냈다. 삶아도 입을 다물고 있는 그 신기함에 희열을 느꼈다. 지방마다 꼬막음식 체인점이 있으나 벌교에서 먹는 맛만 하랴.
꼬막 음식을 만들면 탁주를 곁들인다. ‘주벅 든 년이 한 술 더 뜨고, 정지 파고드는 쥐가 더 기름기 도는 법’, 작가의 입담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주걱을 들었으니까. 꼬막을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린다. 삶은 꼬막을 분리하며 야채와 버무리면 꼬막숙회, 삶은 꼬막에 양념장을 끼얹으면 꼬막찜, 양념을 묽게 하여 재워두면 꼬막장, 양념 넣어 졸이면 꼬막졸임이 된다. 꼬막장이나 졸임으로 밥을 비벼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채소를 넣고 같이 버무려 찌짐을 붙여도 되고, 생꼬막을 잘 손질해서 국과 찌개에 넣어도 좋다.
꼬막요리에 시원한 탁주 한 사발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쫄깃한 꼬막을 씹으며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Tip: 꼬막을 오래 삶으면 질기다. 물이 끓으면 찬물을 섞은 후에 꼬막을 넣고 3분 이내에 삶아낸다. 꼬막 요리에 부추를 넣으면 스테미너 식이 되고, 미나리를 넣으면 혈관건강을 증진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