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서 길을 찾다
나는 글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오랜 시간 이 이야기를 써 내려왔다. 과거를 마주하고, 이해하고, 치유하는 모든 과정이 곧 이 글이 되었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나에게 글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 되었다. 과거를 적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숨겨진 감정을 마주했고, 때로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나는 조용해야만 했다.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집이었다. 울면 꾸중을 들었고, 아프다고 하면 매서운 눈초리와 짜증 섞인 말을 들어야 했다. 아프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만 아프니? 유난 좀 떨지 마" 그 말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점점 더 내 감정을 숨기게 되었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울음도, 두려움도, 아픔도 조용히 삼켰다. 밤이면 이불속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게, 눈물이 베개에 스며들 때까지 참았다. 들키면 또 혼날 테니까. 엄마는 내가 울면 화를 냈다. "뭘 잘했다고 울어!" "너 때문에 나까지 힘들어" 그 말이 무서웠다.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울고 싶은 마음도 잘못인 줄 알았다.
엄마가 손톱을 깎아줄 때면 피가 났다. 손끝이 따끔거렸지만, 엄마는 항상 말했다. "니가 가만히 있지 않으니까 그렇지" 아프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만 세 살이 되던 해, 나는 스스로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작은 손이 서툴렀지만, 아픈 것보다는 나았다. 그날 이후, 나는 더 많은 것들을 혼자 하게 되었다. 혼자 아프고, 혼자 견디고,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차별은 일상이었다. 언니와 동생은 늘 새 옷을 입었고, 나는 늘 헐거운 물려받은 옷을 입었다. 옷만이 아니었다. 소풍날이면 동생 도시락을 싸는 엄마의 손길은 분주했지만,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내 소풍날이 다가오면 엄마는 주머니에 2천 원을 넣어주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거면 되지?" 감히 아니라고 말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따뜻한 김밥 냄새는 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이 정성껏 싸 온 도시락을 꺼낼 때, 나는 은박지에 싼 김밥을 꺼내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내가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몸도 약했다. 자주 아팠고, 병원에 가는 일은 늘 부담스러웠다. 경제적 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몸 상태와 상관없이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했다. 어느 날, 출근길부터 배가 아팠다. 참아보려 했지만 결국 가게에서 쓰러졌다. 근처 병원에서는 맹장염이라며 보호자를 불러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부모는 바쁘다는 이유로 오지 않았다. 구급차를 부르면 돈이 많이 든다는 걱정에 그저 버텼다. 밤이 깊어서야 생부가 왔다. 나는 스스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수술 후 내 맹장을 보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시커멓더라." 맹장이 터질 뻔한 일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어야 했다.
언젠가부터 결혼은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집을 본다면 누구라도 도망칠 것 같았다. 경제적인 문제 역시 내 책임이 아니라는 걸 온전히 믿어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도 나를 위해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본질을 보고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남자친구로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 가족들은 나에게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니 남자친구 약점 잡힌 거 있니? 너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나는 귀를 의심했다.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일이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생모는 시부모님 앞에서 남편을 칭찬하며 말했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그 말이 얼마나 부적절하고 어처구니없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후에는 강아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 같은 엄마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내 생모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외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본인의 딸을 걱정하셨다. "너희 엄마 힘들게 하면 안 된다" 그 말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는 나보다 더 나를 세심하게 돌봐주는 두 사람이 있다. 매일 식사를 챙겨주고, 힘든 일이나 운전을 대신하며 요리사, 요양 보호사, 보좌관의 역할을 해주는 남편. 그리고 내 건강을 나보다 더 염려하며 병원에 가도록 이끌어 주고, 내 몸을 돌보는 습관을 갖게 해 주며, 글을 쓰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내 영혼의 반쪽 같은 친구. 이들의 존재 덕분에 나는 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그 어떤 순간에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였어. 잘못한 건 네가 아니라, 너를 상처 입힌 사람들이야. 그리고 네가 이겨낸 모든 순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잘 견뎠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너는 너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지금의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 나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 속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경험이 내 삶을 규정하도록 두는 대신,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제는 상처를 두려워하기보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나의 일부로 존중하려 한다.
이 글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당신에게 말을 거는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편지를 쓰고 있었다. 나를 돌아보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얻은 심리적인 통찰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우리에겐 상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이해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그 과정을 걸어왔고,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나의 경험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과거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치유와 성장은 계속되는 여정이며,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당신에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