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가 닿길 바라며

과거를 넘어, 상처를 이야기로 아픔을 위로로

by Mia 이미아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경험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곧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처를 다시 들춰보는 것이 두려웠고, 어떤 날은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현실 감각을 잃고 무력감을 느꼈다. 하지만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나는 과거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학대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고,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처가 나의 잘못이 아니고, 충분히 치유 가능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처럼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스스로의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 아픔이 남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동정의 대상이 될까 두려웠던 적도 있다. 그래서 한동안 망설였지만, 막상 글을 쓰고 나니 예상치 못한 공감을 받았다.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메시지와 "네 글 덕분에 위로받았다"는 반응이 이어지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상처를 공유하며 위로와 이해가 자연스럽게 싹텄고,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나 역시 타인의 경험을 통해 치유받는 순간을 경험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공감한 것은 상처의 무게를 덜어내는 힘이 되었다.


물론 부모에 대한 분노나 서운함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가끔은 트리거로 인해 예전 일이 떠올라 밤새 악몽을 꾸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그래도 부모이니 용서해야 하나"라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 "절대 아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오간다. 용서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진정한 치유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또 어떤 날에는 과거의 상처가 나의 전부가 아니며, 지금 내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마음은 이처럼 흔들리고 변화하며,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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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비슷한 상처를 겪은 이들에게 강요나 정답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과 속도가 다르기에 스스로의 치유 속도를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군가는 빠르게 벗어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억지로 정해진 해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내 이야기가 작은 참고가 되고, "나도 언젠가는 숨죽여 지내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었으면 한다. 모든 사람의 치유 여정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아마도 여전히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 모든 게 정말 내 탓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당신 잘못이 아니다. 나 또한 오랜 시간 스스로를 의심했고, 내 감정을 부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느낀 고통이 실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나르시시스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결코 작지 않다. 그 상처는 성장 과정에 깊이 영향을 미쳤고, 때로는 삶의 방향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완전히 규정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 흉터를 안고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이 오히려 삶을 더 단단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나 또한 이러한 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치유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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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언어'로 정의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겪은 일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닿을 때, 묘한 위로와 용기가 생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힘겹게 싸워 왔구나"라는 안도감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이 해소되고,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생존이 최우선이었던 시절에서 벗어나, 조금씩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유가 생긴다. 서서히 아픔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고, 이전보다 더욱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된다. 이런 과정은 나와 타인 모두에게 성장과 치유의 기회를 제공하며, 결국 우리는 상처를 넘어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경험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다.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내고, 그것을 통해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희생양으로 남아 과거에 갇혀 살 것인지, 아니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주체적인 삶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이 글을 닫으며, 당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용기를 내길 바란다. 상처는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자 성장의 과정이다. 그것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디 "내가 겪은 상처가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길" 희망하길 바란다. 우리의 치유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우리는 이미 한층 더 강해졌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닿기를 바란다. 어딘가에서 같은 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경험 속에 갇혀 있지 않다. 그 시간들은 여전히 나의 일부지만, 그것이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선택할 것이고, 내 목소리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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