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2021년 가을 첫 진료 이후,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매 진료마다 15분에서 30분 정도 상담을 했고, 처음 6개월 동안은 약 조정을 위해 매주 진료를 받았다. 이후 1년 가까이 2주 간격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긴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나는 선생님과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 진료에서 선생님은 내게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라”고 권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 문제는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신체적 한계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답지 않게 단호하게 말했다.
“기분이 좋아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나는 다시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날 정신과 진료는 오후 5시였고, 오후 2시에는 방문 상담 선생님이 다녀간 날이었다.
“오늘은 방문 상담 선생님이 오셨어요. 2년 전이라면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을 거예요. 그 후에 지쳐 쓰러지더라도요. 그런데 오늘은 30분도 말하기가 힘들었어요. 상담 선생님도 제가 눈에 띄게 쇠약해진 걸 느끼신대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예요. 오늘도 상담 후 체력이 다 소진되어 너무 피곤해요.”
그러나 의사는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불쾌함보다 당혹감이 먼저 밀려왔다. 4년간 나의 상태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조차, 내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우울증은 1차 증상이 아니라, 장기간의 신체적 고통에서 비롯된 2차 증상임을 그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우울하지 않았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무력감도, 사실은 통증을 너무 오래 참고 견디느라 생긴 탈진 상태에 가까웠다. 내 통증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나는 평생 내 몸을 관찰했고, 때로는 스스로 실험하며 그 패턴을 기록해 왔다. 트라우마가 신체 반응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지나, 이제는 원가족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의사는 또 다른 진료과 이야기를 꺼냈다. 산부인과 수술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그것은 허리 아래 통증과는 관련이 없었다. 수술의 부담이 일시적인 통증 악화를 불러올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원인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진짜 문제는 척수 낭종과 3년째 이어지는 불명열이었다. 인근 대학병원 두 곳을 포함한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남은 방법은 입원 검사뿐이었지만, 기간조차 예측할 수 없고 진단이나 치료를 보장하지도 않았다. 나는 남편과 단둘이 사는 2인 가구이고, 두 마리의 반려견은 모두 유기견 출신이라 낯선 환경에 극도로 예민하다. 입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경제활동도 중단된 지 오래였다. 통증과 발열로 일을 줄이다 결국 완전히 그만두었고, 병원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이상의 상급병원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입원이나 수술이 필요하다면, 먼저 아이들을 맡길 사람부터 찾아야 했다.
이렇게 자세한 내용은 아니더라도, 살면서 이러한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으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도 좀 쉬어야지."
"너무 무리하지 마."
그 말이 선의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과는 너무 멀게 들렸다. 나는 이미 최선을 다해 쉬고 있었다. 더 쉬면 생계가 무너지고, 생활이 유지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살아 있는 것’ 그 자체를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다.
가장 막막한 것은 외로움과 고립감이다. 분명히 존재하는 고통을 의료와 사회 시스템은 인정하지 않는다. 병명이 없거나 진단이 모호하면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고통은 결국 개인이 혼자 견뎌야 한다. 나처럼 존재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 홀로 갇힌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득해진다.
우리 사회는 고통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고통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안전망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안전망은 단지 경제적 지원이나 혜택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환경이다. 어떤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도 다양한 형태의 일을 하고 스스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기반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언제든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설명되지 않는 증상으로 삶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럴 때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사회적 보호망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
사회적 안전망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기본 권리’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34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