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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by Mia 이미아

내 삶은 늘 ‘증명’의 연속이었다. 생물학적 부모에게는 존재를 증명해야 했고, 의사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증명해야 했다. 이해받으려 애쓰고, 버텨내는 고단함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부모의 가스라이팅 속에서 아픈 것도 내 잘못이라 여겼고, 결국 그 믿음이 증상을 더 악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원가족에게서 벗어난 뒤에는 건강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사들은 귀를 닫고, 도움을 청할 곳은 없었다. 병명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고, 진단이 불분명하면 외면받는다. 보이지 않는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질병과 질환, 이 두 단어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질병은 병명이 붙고 사회가 인정하는 상태,
질환은 이름 없는 고통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다.

나는 질환을 가진 사람이었다. 증상은 분명했지만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기에, 내 고통은 늘 의심받았다.
“수치는 정상이네요.”
“기분 탓일 거예요.”
그 말들은 내 존재를 부정하고, 나를 더 깊은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보내준 이야기 속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각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었지만, 사실 같은 외로움 속에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어쩌면 우리가 건강에 대해 가진 너무나도 확고한 믿음과 선입견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프면 진단받고 치료받고 나아져야 한다"는 당연한 전제가, 우리를 진단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고개 돌리게 만드는 것 같다.



7월 10일 오전, 눈을 뜨고 뒤척거리면서 몸을 체크해 본다. 팔의 통증은 스케일 5, 왼쪽 어깨와 등은 7 정도로 낮아졌다. 화장실 다녀왔을 때 거울을 보니 눈이 붓지 않았다. 어제 자기 전 진한 레모네이드를 마셨는데! 최근 울렁거림을 완화하려고 수제레몬청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마시는데, 밤에 마시고 자면 눈에 띄게, 특히 눈이 퉁퉁 붓고는 했다. 알파 리포산 보조제 복용 중단 후 레모네이드를 마셔도 붓지 않는다. 당 대사를 조절해 준다는 알파 리포산이 나에게는 역효과가 났던 모양이다.

통증을 느끼는 일은 피곤하다. 42일간 왜 고집스럽게 보조제를 먹었을까? 나는 왜 통증에 둔감해져서 고통을 키우는 걸까. 보조제가 아니었다면 콘텐츠 제작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당조절을 위해 먹은 보조제는 오히려 당에 붓는 증상을 가져왔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 날의 일기에서는 ‘항상 내 몸을 감시해야 하는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 '내 몸의 감시자'가 되어 사는 고단함,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각을 느끼는지 기록해야 하는 삶은 정신적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만든다. 거기에 의학적 원인을 명확히 진단받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불확실성스트레스를 가중한다.



나는 이제 질문을 다르게 던지고 싶다.

"진단받을 수 없는 질환자가 지금 이대로 살아갈 방법은 없을까?"


나는 회복되지 않는 내 몸을 받아들이기 위해 오래 애써왔다. 그리고 그것이 나약함이나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상’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와 삶을 인정받고 지지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당신이 겪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은 결코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질병과 질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무언가 당장의 해결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내 이야기가 우리가 함께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여정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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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십 연재 안내

7월 30일부터 이어서 연재할 글들은 유료 멤버십 콘텐츠로 발행하려고 합니다. 자율신경계 항상성이 깨진 만성질환자로, 증상이 있는 척수 낭종 환자로, 또 양육자의 학대라는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로 살아오면서 생존을 위해 터득한 자기 관리법과 AI기술을 활용한 건강 관리법 등 매우 개인적이면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들을 담으려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왜 유료 멤버십인가요?
앞으로 연재할 글들은 제가 만성질환자이자 트라우마 생존자로 살아오며 축적한 매우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들을 담고 있습니다:

✨ 제가 공유할 실제 경험들
✔️자율신경계 항상성이 깨진 만성질환자로서의 일상 관리법
✔️척수 낭종으로 인한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 대처법
✔️양육자 학대 트라우마를 딛고 회복해 온 구체적 과정
✔️생존을 위해 터득한 자기 관리 노하우들
✔️AI 기술을 활용한 개인화된 건강 관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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