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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Jun 15. 2024

취리히 공항








취리히 공항은 아주 큰 편은 아니다.

수하물을 맡기고 출국 심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있는 면세점들이 전부이고 출국 심사를 통과해 비행기를 타러 가는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살 것이 있으면 미리 사놓는 것이 좋고 출국 심사 줄은 매우 길기 때문에 최소 1시간 반 전에는 줄을 서는 것이 안전하다.



입국은 일행과 함께라 어영부영 들어왔는데 출국은 혼자 하려니 바짝 긴장이 되어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기차에 내려서 공항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들어서자 탁 트인 넓은 홀 정면에 일렬로 늘어선 항공사 창구들이 보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수하물 부치기도 수월하게 해냈다.


그제야 숨이 풀린다. 8박 9일의 일정이 무탈하게 지나갔다는 것에 안도하며 가벼워진 짐만큼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벤치에 앉아 이른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은 새벽에 일어나서 늦을까 봐 미처 다 먹지 못하고 싸 온 샐러드와 과일이었다. 숙소에 버리고 올까 하다 그래도 음식인데 아까워서 들고 왔더니 이렇게 나의 요긴한 점심이 되어주었다.


느긋하게 식사를 했는데도 2시간이나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면세점 구간으로 넘어갔다.

들어가기 전 수하물 검사에 30분 정도가 소요됐지만 그래도 1시간 반이 남았으니 30분 정도는 구경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살 것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그저 남은 현금을 없애기 위해 작은 기념품과 과자를 사고 면세점 끝에서 끝까지 어슬렁거리며 아이쇼핑을 했다.

얼추 30분이 흘렀고 이제 비행기를 타러 가기 딱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두리번거리며 안내표지판을 따라 찾아낸 나의 탑승구는 지하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지하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아주 아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실 면세점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 줄을 보았다. 다만 내가 서야 하는 줄일 줄은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줄 끝에 서서 내 뒤로도 길게 늘어나는 줄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렸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도시락을 먹고 바로 일어섰더라면, 면세점 구경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들어와서 바로 탑승구부터 확인했더라면. 기차도 버스도 다 한 두 번씩은 놓쳐봤던지라 이번에 비행기까지 추가하게 되는 건가 정말 초조했다. 상상이 현실이 될까 생각을 쫓으려 애꿎은 핸드폰 시계와 앞사람 뒤통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슬아슬하게 출국 심사를 통과하고 냅다 뛰었다. 하지만  뜀박질이 무색하게 얼마   나타난 것은 비행기 탑승구가 아니라 버스 탑승장이었다. 게이트 건물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초조해서 빨개졌던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버리기 직전 이미 만차에 가까웠던 버스는 정말 다행히도 내가 탄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드디어 익숙하게 보아온 복도가 나왔다. 진심을 다해 전력질주를 했다.

저 멀리 항공사 피켓을 들고 노선을 크게 외치며 다가오는 승무원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헉헉대며 미안하다고 심사가 길어졌다고 말하는 나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방향을 안내해 주었다.


11시 비행기였는데 자리에 앉고 보니 10시 47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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