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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육아 Oct 31. 2024

미디어 디톡스를 결심하다 1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저녁 7시, 퇴근 후 아이 하원을 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와 아이에게 씻으라고 재촉한다. 아이가 씻는 동안 저녁밥을 준비할 심산이었지만, 그게 엄마 뜻대로 될 리가.

아이가 티브이 리모컨을 찾는다. 스마트 티브이를 이리저리 조작해서 만화를 보기 시작한다.


만화를 한번 보기 시작하면 목욕도 식사도 제 때할 수 없어 조바심이 난다.


씻고 밥 먹고 티브이를 보라고 어르고 달래지만 하루 10시간 밖에서 사회생활을 한 아이는 보란 듯이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다.


우선 티브이를 보며 밥이라도 먹이자 싶어 멀쩡한 식탁을 놔두고 티브이 앞에 밥상을 대령한다. 티브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 입에 밥과 고기반찬, 나물반찬 골고루 올려 입에 넣어준다.


그래, 밥 먹기 미션은 끝이 났고,

다음은 씻기자.


”페파친구들이 같이 목욕하려고 기다리고 있네 “라며 유치원선생님으로 빙의하여 아이를 살살 꼬시는 와중에 시계는 8시 30분을 가리킨다.


KBS2에서 방영하는 일일연속극이 할 시간이다.


15세 이상 관람가라며 티브이 리모컨을 지키는 엄마와 지금까지 매일 봤는데 왜 못 보냐며 리모컨을 뺏으려는 7살 아이와 팽팽한 신경전의 시작이다.


”티브이는 이제 그만 볼 거예요 “

”이제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세요 “


갑자기 존댓말과 흔들리지 않는 눈빛 콤보로 아이에게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이는 자지러지는 공격으로 맞선다.



이게 불과 4년전 우리집 저녁시간의 모습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의 육아휴직 후 줄 곧 워킹맘 신분이었던 나는 회사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며 아이를 키워내고 있었다. 때문에 아이를 함께 키워주신 고마운 할머니들이 계셨다. 아이가 4살 무렵부터 시작된 할머니들과의 동거 역사를 돌아보자.

첫번째 할머니는 집으로 오시던 돌봄할머니이시다. 당시 4살이던 우리집 아이는 낯가림도 심하고 울음떼가 심했는데 한번 울음보가 터지면 나랏님도 말리지 못할 강단있는 아이였다. 미운 4살이라고 하지 않던가? 엄마를 찾으며 울음보가 터지는 4살 아이를 달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유튜브였다. 아기상어부터 시작한 유튜브생활은 어린이 대통령 뽀로로로 이어지며,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돌봄할머니의 핸드폰은 아이의 전유물이 되었다.

아이가 5살이 되던 해에는 같은 아파트 윗집 할머니께 부탁하여 어린이집이 끝나는 저녁 6시부터 엄마나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는 밤 9시까지 3시간 정도 돌봄을 부탁드렸다. 그 집에서 머무는 3시간 동안 아이는 윗집 할머니 손녀인 중학생, 초등학생 언니들과 놀고 티브이를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먹고 하원한 아이에게 윗집 할머니는 ”바깥밥은 원래 먹어도 배가 안부르다“며 볶음밥도 해주시고, 떡도 구워주시고, 누룽지도 만들어 주셨다. 아이는 윗집할머니와 언니들의 사랑을 받으며 집주인도 아니면서 그 집 쇼파에 누워 누룽지 씹으며 할머니가 보시는 일일 연속극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 6살에 코로나가 창궐하자 어린이집 생활을 접고 강릉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댁으로 간 아이는 주말에나 엄마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초기였음으로 외부세계를 단절한 채 24시간 할머니와 집에서 머물렀다. 할머니집은 손때묻은 살림살이였지만 정갈했고, 다정했고, 다소 시끄러웠다. 거실에 있는 티브이에서는 미스트롯과 자연인, 세상에 이런일이, 고부열전, UFC(종합격투기대회)가 흘러나왔다.

그곳에서 음식솜씨 좋은 할머니는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지어 해먹이셨다. 일이 끝난 할아버지는 매일 떡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말랑말랑한 꿀떡을 사가지고 귀가하셨다. 아침을 먹고 사과를 깍아 먹고 점심을 먹고 꿀떡을 먹고 저녁을 먹고 누룽지를 씹으며 일일연속극을 보는 생활이 이어졌다.

아이가 7살이 되자 코로나는 일상이되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는 아이를 데려와 유치원에 보냈고,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영어학원, 미술학원에 보냈다. 한글을 떼기 위해 한글공부도 시작 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엄마와의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유치원이 끝나고 영어학원에 갔다가 엄마를 만나 귀가를 한 아이는 당연하듯이 티브이를 켰고, 티브이를 끄고 한글 문제집을 시작하자는 엄마와 티브이를 봐야한다는 아이의 팽팽한 신경전이 매일 이어졌다.

결국 사달이 났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도 티브이로 인해 아이와의 신경전에 화가 났지만 아이에게 더 이상 화를 내고 싶지 않아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
화가 난 와중에 거실 티브이 소리는 내내 거슬렸다.
그날은 유독 티브이에서 거친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일일연속극 빨간구두 여자주인공의 친모가 밝혀지며 여자주인공이 친모를 찾아가 따져 묻고, 친모가 여자주인공 뺨을 때리고 남자 주인공의 엄마도 여자주인공을 찾아가 뺨을 때리고 서로 악다구니를 하며 때리고 때리는 회차였다. 그 싸대기를 때리는 그 찰진 소리에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로 우리집에서는 티브이가 고장 난 것이 되었다. 코드선 하나를 뽑은 것이었는데 순진한 아이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뒤로 아이는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리모컨을 티브이 앞에서 눌러댔지만 티브이는 켜지지 않았다.

미디어 디톡스의 시작이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티브이를 없앤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고,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티브이를 없앨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의 생각과 태도에 대해 돌이켜보면 못내 부끄럽다. 어린아이를 엄마를 대신하여 애써 키워주신 할머니들을 탓하는 나의 빈약한 마음에 부끄러움이 몰려든다. 아이를 키워주신 할머니들의 자녀분들은 대체로 도덕적이고 성실하고 바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녀들의 자녀 들 만큼만이라도 내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미디어세계로 끌어들인 그녀들을 탓하고 있는 것은 좀 더 시간을 내어 아이를 돌보지 못한 것, 나의 편함을 위해 할머니들에게 아이의 돌봄을 맡겼던 것, 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얄팍한 수라는 것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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