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고쳐 내놓으라며 자지러지는 아이를 보며, 이거 괜한 짓을 시작했네. 이기지도 못할 거 아기 호랑이 코털을 건드려서 어쩐담. 안 그래도 고단한 육아생활에 큰 짐을 얹은 사람은 누구? 바로 나. 고뇌가 밀려왔다.
나에게 육아란 무엇보다 떼는 일의 연속이었는데 밤수유 떼기, 젖병 떼기, 공갈젖꼭지 떼기, 기저귀 떼기 그중 당시 내가 가장 집중하는 떼기는 한글 떼기였다. 그런데 거기에 난데없이 티브이 떼기가 더해졌다.
그래도 육아 인생 7년이 아니던가. 그 어렵던 떼기의 시간들은 언젠가 끝이 났고 이 시간도 분명 지나가리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아이의 기억에서 티브이를 지우기 위해 이른 저녁을 먹고 놀이터를 나가 놀았다. 모기에 뜯겨가며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7세 엄마들의 대화 주제는 단언컨대 한글이다.
한글을 뗐는지?
어떻게 뗐는지?
읽기 독립이 되었는지?
한글을 뗀 아이 엄마 말 한마디라도 주워듣고자 애를 쓴다.
아하 그것이로구나. 학습지
매일 한두 장씩 이어지는 학습지를 하지 않는 아이가 우리 집 아이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당장에 학습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학습지를 한번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이 연필은 싫고 저 연필이어야 하고
쉬야 싸러 화장실에 가야 하고
목이 말라 물을 마셔야 하고
다시 똥을 싸러 화장실에 가야 한단다.
떨어지는 건지 떨어뜨리는 건지
연필은 계속 책상 밑으로 떨어지고
그걸 주워달라고 했다가 자기가 주워야 한다고 했다가
오만가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학습지의 끝은 꼭 눈물바다.
어서 빨리 이 시간을 끝내고자 유튜브를 끌어들인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아이에게 왜 티브이를 보여주냐며 아이를 돌봐주신 고마운 할머니들을 탓하던 내가 바로 유튜브를 보여준 아이러니.
이럴 때 하는 말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아닌가?
다소 아니 매우 머쓱하지만 당시의 나를 변호해 보자면 퇴근해서 집에 와 씻고 밥 먹고 학습지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8시가 되는데 8시부터 9시까지 학습지 한두 장으로 씨름하다가 이건 공부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연필 줍다가 시간은 다 보냈는데 아이는 집에 와서 공부밖에 한 게 없다며 서럽게 울기 일쑤였던 것이다.
공부 시간도 단축시키고
아이 기분도 맞춰주고
한글 떼기에도 도움을 받고자
유튜브의 도움을 받기로 한 건 바로 내 선택이었다.
"자, 오늘부터 학습지 2장이 끝나면 유튜브를 볼 거야. 그러니까 얼른하고 같이 재미있게 보자"
아이의 올망졸망한 입술에서 배시시 흘러나온 미소가 나름 귀여웠다.
그래 한글이 야호로 한글을 뗀 아이가 있다는데 이건 괜찮을 거야 로 시작해서
호기심 딱지? 이건 과학적인 내용이 많네
에그박사는 생태과학이지 뭐.
그렇게 허용하는 유튜브 채널이 많아지고
허용 가능 채널과 불가 채널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엄마의 혼란을 틈타 아이는 기습공격으로 엄마의 허를 찔렀다.
"엄마, 오늘은 학습지 2장 말고 4장 풀 테니까 유튜브 2개만 더 보여주라"
"엄마, 공부 끝나고 엄마 목욕하잖아. 엄마 목욕하고 나오는 동안만 잠깐 유튜브 보고 있어도 돼요?"
어딜 눈 가리고 아웅이야? 싶다가도 작은 머리 굴리며 엄마와 협상 내지 타협하려는 아이의 속임수가 귀여워 몇 번 속아 넘어가 주었더랬다.
그런데,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티브이의 채널보다 더욱 강력했다. 아이의 선호를 반영했기 때문에.
하나의 유튜브 영상이 끝나면 아이의 선호를 반영한(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이 추천 내지는 재생이 되었기에 매일 아이의 자제력 테스트 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