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생긴일
눈 내리는 한국을 떠나 햇살 가득한 시드니에 도착한 우리는 피곤도 잊고 따스함을 느끼러 거리로 향했다.
5분남짓 지났을까 따뜻한 햇살과는 다르게 차가울 듯한 회색 거리에 누워있는 머리도 수염도 긴 남자 외국인을 마주했다. 그의 앞에는 종이 상자가 놓여 있었고 엘라자베스 2세 여왕이 그려진 지폐와 동전 몇 개가 가볍게 놓여 있었다.
아이는 저 아저씨는 왜 길거리에 누워 있느냐고 물었다. 태어나 서울역이라던지 명동이라던지 이런 곳에 가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줄까? 하다가 홈리스 :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사 먹을 수 있도록 돈을 주기도 한다며 홈리스 앞에 놓인 작은 상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이내 지금 당장 돈을 주어야 한다며 돈을 내어놓으라 했다. 시드니에 갓 도착했기에 큰 금액의 지폐 밖에 없어 안된다고 했지만 빨리 돈을 내어놓으라는 아이의 성화에 진땀이 났다.
스무 살 무렵, 전철을 타고 대학을 다니던 시절,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종종 껌을 팔던 휠체어 탄 아저씨, 구부정한 허리에 지팡이를 집고 껌을 팔 던 할머니가 계셨다. 그들은 전철에 앉아있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자필로 쓴 종이를 건넸다. 여러 사람들에게 건네어진 종이라 구겨지고 낡은 종이에는 껌을 팔러 나온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쓰여 있었다. 그 종이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고 그 종이에 시선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꼭 그 종이를 받고 읽은 후 돌려주며 그 사람들로부터 껌을 사 가방에 넣었다. 그래서 그 시절 메고 다니던 레스포색 가방에서는 늘 쥬시후레시 냄새가 났다.
대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신촌에서 3대 3 미팅을 했다. 다들 왜 이리 촌스러워 보이던지. 관심 가는 남학생이 없어 티브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3가닥의 노란색 브리지를 한 남학생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 아주 새침한 모습으로 그 남학생의 말을 못 들은 척했는데, 신촌 삼겹살 집에 껌을 팔러 온 할머니로부터 껌을 산 3가닥 브릿지 남학생의 모습에 단박에 큰 호감을 느꼈더랬다.
당시에 내가 그랬던 것은 내가 착해서는 아니었다. 중학생 때 IMF가 우리 집을 관통했다. 그전부터도 그랬지만 이후에는 더욱 가난한 집 맏딸로 컸다. 학교에서 동전 모으기 후원행사를 할 때면 엄마는 늘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하니 돈을 가져갈게 아니라 받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였는지 단돈 1천 원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할 수 있는 내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자기 위안이랄까.
여하튼 길거리에서 껌을 팔던 사람들, 차가운 바닥에 누워서 구걸하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자선냄비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나였다.
시간이 흘러 아이 엄마가 된 나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껌을 사 먹지도,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부러 다가가 돈을 내어주는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그곳 시드니에서 20달러는 너무 큰 액수라며 돈을 바꿔 5달러만 주자는 얄팍한 수도 쓴다.
시혜적 나눔이 빈곤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다는 지식이 생겼다거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식의 노동 가치를 저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바탕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내 시간과 에너지, 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없어 소박한 인간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나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의 모습을 통해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노숙자 쉼터에서 밥퍼 봉사를 해던 일
장애아동 손을 잡고 미용실에 갔던 일
20대의 내가 생각이 나서 또 그리워서 마음 한 곳이 뭉글했다.
그리곤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주변을 살피자고 생각도 했다.
시드니 생활이 2주가 넘어가자 우리는 매우 많은 홈리스들을 만났다. 서큘러키 앞에서 족히 더블사이즈는 되어 보이는 침대 매트리스를 길거리에 깔아 두고 비치파라솔까지 넓게 펼쳐 자외선을 피해 여러 와인병과 함께 뒹구르며 곤한 잠을 자고 있는 홈리스를 본 날, 아이는 한국말로 "엄마! 저 아저씨는 좀 너무하다"라고 했다. 많은 관광객이며 인파가 다니는 길거리에 넓은 자리를 차지한 그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이에게 말을 아끼기로 했다.
아이의 조그마한 머리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아이의 시선과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