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은 다 꿈이란다” <노간주나무>를 읽고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 때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by 따오기

퇴근길, 전철역 개찰구 주변 스마트도서관에서 무심코 도서를 검색하다가 《노간주나무》라는 제목에 이끌려 한 권의 책을 대출했다. 어릴 적 우리 집 울타리를 빙 둘러싸고 있던, 스치기만 해도 따갑게 살을 찌르던 그 '뾰족나무'에 대한 기억이 나를 이끌었다.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까지 있길래 망설임 없이 대출했다.


소설은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덕분에 속도감 있게 읽혔다. 책 서두에 그림 형제의 동화 「노간주나무」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잔혹한 본성을 예고한다. 특히 표지에 적힌 <나를 죽이려고 했던 엄마가 이젠 내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섬뜩한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강렬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산부인과 간호사인 주인공 영주와 병원놀이를 할 때 기묘한 행동을 하는 여섯 살 아들 선호, 그리고 뒤늦게 나타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엄마까지. 꿈과 현실을 혼동스럽게 오가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간다. 오죽하면 퇴근길에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차가 지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그러나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베일에 싸여 있던 과거의 비밀이 밝혀질 때는 맥이 풀리며 ‘괜히 읽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하지만 뉴스에서나 보았던 가슴 아린 비극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가족, 그리고 그 지옥 같은 기억을 지워주기 위해 딸에게 독한 노간주나무 액을 먹이며 “나쁜 기억은 다 꿈이란다”라고 기억을 없애려 했던 또 다른 가족, 엄마의 이야기는 정말 아팠다.


소설 속에서 노간주나무는 다층적인 상징으로 존재한다. 때로는 태아를 밀어내는 비정한 도구였으나, 동시에 아픈 기억을 도려내는 치유의 약이기도 했다. 노간주나무의 약리적 효능까지 연결하며 치밀하게 구성했다.


'노간주나무'라는 동화를 인용하며 시작되고,

노간주나무는 주인공의 유일한 피난처였으며,

노간주나무는 그날의 비극을 지켜본 증인이다.

노간주나무는 닫힌 기억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노간주나무는 아픔을 치유하는 마지막 약이 되었다.

모든 일은 노간주나무 위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나무는 말한다.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 때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죽을 만큼 힘든 게 무슨 기분인지 묻는 영주에게 나무는 답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데 날개가 없는 기분이란다.” 기억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쌓이는 것이기에, 영주는 자꾸만 꿈을 꾸고 환상통을 앓는다.


책 중간중간 볼드체로 등장하던 '그 여자'는 처음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결국 딸을 지키고 싶었던 엄마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날 때 다시 한번 더 태어난다”는 구절을 보며, 힘들게 손주를 키우는 큰딸이 생각 났다. 더불어 육아에 지친 딸을 위해 퇴근길 발을 동동거리는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이 책은 일종의 자기 위로나 치유소설 같다. 덮어버리고 싶다가도 다시 펼치게 되는 이유는, 각자의 내면에 있는 상처들을 소설의 주인공처럼 치유받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쁜 기억은 다 꿈이란다”라며 전부 잊고 새로 태어나라며 주문을 외던 그 여자의 마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퇴근길에는 집중해서 읽다가 연체된 책을 반납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주인공 영주도, 광옥도, 아들 선호도 내 마음에서 편히 보내주려 한다. 그리고 작가의 극본공모 우수작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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