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고향엘 갔다고 연락이 왔다.
올봄에 돌아가신 엄마를 모신 고향 납골공원이라고...
우연히 울 엄마와 친구 엄마가 같은 공설공원묘지에 계신다.
군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동네 사람들 이름이 간간이 보인다.
친구는 엄마 계신 봉안당 호수를 알려주면 인사드리고 싶다고 몇 호인지 알려 달란다.
엄마한테 전할 말 있으면 대신 전하겠다고 무슨 말을 전할지도 알려 달라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고향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갈 수 있게 해 달라 ‘고 전해 달라고 했다.
사실 나의 고향은 자동차로 두 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찾아가도 '왔냐'는 인사 한 마디 없지만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향 가는 게 자꾸 주저된다.
엄마가 요양원에 계실 땐 오히려 다 쓰러져가는 빈 집이어도
가끔 들러 마당에 자란 풀도 뜯어보고,
허물어진 담벼락도 돌아보고 했는데
이젠 그 조차도 할 수가 없다.
누가 뭐라는 건 아닌데.
아니 누가 뭐라고 했다.
‘우리 집에 왜 왔냐고?’
예전엔 '간다'는 말없이 가도 아무렇지 않은 집이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란다.
우리 집이 아니라서 그냥 오면 안 되는 거란다.
이젠 엄마 이름도 아부지 이름도 아닌 조카의 이름으로 바뀌어
오빠가 주말농장으로 사용하는 집!
대문이 있어도 잠그지 않고 살던 옛날 우리 집이 철문으로 철커덩 잠겨 있다.
열쇠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요새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땅이든 집이든 소유주가 중요한 건가 보다.
엄마 아부지 이름으로 되어 있을 땐 우리 집이었는데 이제 우리 집이 아니다.
나의 유년의 기억이 산산이 조각 나 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고향도 부모 있을 때나 고향이라고 하는 건가?
부모 없으니 내 고향을 가는데도 이렇게 고민이 되고
주저되는 걸 보면.
차라리 남의 동네면 아무 때나 예고 없이 허락도 없이 다녀올 텐데
동네 사람 다 아는 고향이라 몰래 염탐하듯 가기도 애매하다.
집에는 못 올라가고 동네 언저리만 배회하고 오기엔 안 가는 게 낫다 싶다.
동네 터줏대감 같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희진 언니도 보고 싶고
고향 산천도 보고 싶은데...
집 앞 냇가에 시냇물에 손도 담가보고
소꿉놀이 하던 버덩에도 나가보고 싶은데...
매번 고향 가려다가 애꿎은 서해바다만 휘익 다녀온다.
거기도 오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고민하게 하는 그 무엇은 없으니.
고향집 생각. 엄마 생각으로 잠시 먹먹한 사이에
납골공원에 가 있다는 친구가 엄마 모신 곳을 찾아뵈었다고 사진을 보내온다.
엄마가 계신 그 봉안당 사진을...
어려서 한동네에서 같이 자란 친구라 역시 다르다.
자기 엄마 뵈러 갔다가 울 엄마도 찾아봐 주고
나 보라고 사진도 보내오고
고향 친구니 울 엄마도 찾아보고 그러지 그 누가 그러겠냐 싶은 게 일하다 말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엄마는 생각만 하고 사진만 봐도 울컥하게 하는 신비한 존재다.
엄마란 이름엔 따사로움과 아픔이 동시에 숨어 있나 보다.
내가 전해달란 말도 전했다고 하는데 울 엄마가 나의 바람을 들어주시려는지
사실 엄마 돌아가신 후 상속 문제로 그렇게 다정하던 오 남매 관계가 소원해져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다 각자의 입장이 있어 상속은 언제나 어려운 것 같다.
법대로 한 것도 아닌데...
이제 세월이 제법 지나 화해무드가 조성될 때도 됐는데
아직도 우리 사이는 엄동설한을 살짝 지난 음력 2월쯤 되는 것 같다.
따뜻한 봄이 오려면 먼 지점쯤이랄까?
어쩜 아예 봄이 안 올지도.
그래도 어버이날에 엄마 아부지대신 오빠 올케에게 안부를 전하긴 했다.
내일은 울 엄마를 만나러 가야겠다.
그리고 친구 엄마도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다.
한 동네에서 일생을 보낸 이웃들끼리 하늘나라에서도 알콩달콩 재밌게 지내시라고
다시 한번 더 당부드려야겠다.
두 집 딸들이 부탁하는데 설마 모른척하시진 않겠지.
친구 덕에 엄마가 더 보고 싶은 날이다.
엄마가 계신 우리 집으로 달려가고픈 날이다
"엄마"하고 엄마 품에 와락 안기고픈 날이다.
앵두를 보면 또 고향이 생각난다. 앵두속에 내 친구 정화랑 은숙이가 송알송알 맺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