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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Apr 06. 2024

주문 폭주

야식 장사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영숙은 정말 몰랐다.

온몸을 파스로 도배를 하고, 양팔에는 직원들의 문신 못지않게 튀김기에, 포장하는 실링기에 데인 영광의 상처들과, 머리카락 빠질라 꽁꽁 동여 멘 꽁지머리를 한 모양새가 식당 이모님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외모는 예전에 비해 누추하게 변해 가고 있으나, 화려한 공항에서 존재감 없이 시키는 일만 겨우 해냈던 영숙은 어디로 가고, 신속배달 주안동 야식맛집의 명성에 맞게, 주문접수에서 포장까지 못하는 것 빼고는 다 할 줄 아는 우수직원이자, 거래처에 재촉도 할 줄 아는 사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의 손길이 담긴 음식을 포장까지 마무리해서 배달을 보낼 때의 뿌듯함이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도 느끼고 있는 중이다.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알고 살았던 지난날을 잊게 해주는 마법의 야식가게에서, 영숙은 양아치 같은 직원들의 무심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많이 밝아졌고, 많이 수다스러워졌으며, 무엇보다 가게 음식을 사랑하는 대식가가 되었다.




날씨가 선선한 것이 어느새 가을이다.

가게 맞은 편, 학교 운동장 넘어 해 질 무렵의 가을 하늘 풍경은 무념무상, 잠시 멍 때리기 딱 좋은 귀한 시간의 풍경이다. 영숙은 가게 앞 놀부가 마련해 준 등받이 캠핑의자에 앉아 잠시 그 시간을 누려본다. 점점 붉어지는 하늘과 구름 위 무리지어 나는 새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은 튀김 기름과 화로구이의 매캐한 냄새로 찌들어 있는 영숙을 환풍 시켜주었다.


이 동네는 좁은 골목골목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연립주택과 오래된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시야가 답답한데, 유일하게 학교 운동장이 시원하게 뚫려있어 하늘을 시원하게 쳐다볼 수 있다. 그게 바로 영숙의 가게 앞이라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런데, 늘 보던 학교 하늘 풍경에서 뭔가가 불편하다.

학교 정문 앞을 지키고 서있던 거대한 두 그루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몸뚱이만 빼고 사정없이 잘려져 있는 것이다. 두 그루만으로도 푸른 숲을 이룰 정도의 큰 거목이었는데, 도대체 왜 저런 처참한 모양으로 잘라 놨는지 영숙은 기가 막혔다. 때마침 가게를 나온 지콩이 속상해하는 영숙을 보고,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지난 번 쥐 출몰 사건에 영숙이 기절 직전까지 가자, 바로 구청에 신고해서 한 시간 내에 트럭을 출동시켜 주변 하수구를 모조리 쥐가 다닐 수 없는 외길 구멍으로 된 하수구 뚜껑으로 교체시켜 버렸던 지콩이 같은 곳에 또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자기는 이 동네를 사랑하는 상인이다. 학교 정문 앞을 지키는 큰 나무 두 그루가 그 자리에서 항상 묵묵히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을 지켜주는 장승처럼 떡하니 버텨주고 있어 든든했었는데, 누가 어제 왜 저렇게 흉하게 팔다리 없는 괴물처럼 가지를 다아 잘라놨느냐, 마음 같아서는 비포 에프터의 사진을 찍어서 청와대 신문고에 올리고 싶지만, 동네를 사랑하는 주민으로서 공무원들이 동네를 위해서 얼마나 노고가 많은지 알기에 이번은 참아 주겠지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라며 영숙을 대신해 시원하게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이제 그만 농땡이치고 들어가서 오픈 준비하자며, 영숙을 끌고 가게로 들어갔다. 참 친절하면서도, 사장을 사장으로 안보는 직원이다.


가게는 정말 그놈 말대로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배달 주문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코로나로 쌓이는 스트레스를 맵고 자극적인 맛을 찾는 건지, 진짜 가게가 맛집이라 찾는 건지, 주문 앱에서 맛집랭킹 1위를 2주째 찍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나날이 늘어나는 주문에 영숙은 자동으로 하드 트레이닝을 받아, 그렇게 못 외우던 모든 메뉴 외우기는 물론이요, 떡볶이 튀김에 기본 반찬까지는 혼자서도 뚝딱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화로 근처는 접근 금지 중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마감시간이 되어, 밤새 쌓인 주문 내역서를 보면 이걸 하루에 다 해냈네 싶은 게 놀랍고 뿌듯했다. 박스에 가득 들어있는 천 개의 젓가락이 열흘이면 사라지는 경험은 믿기 어려운  실화다.


" 이번 주말부터는 대박 더 바쁠 거예요. 추석에, 개천절까지, 거기다가 주말이 두 번이나 껴있어서 엄청 바쁠 거라고요. 거래처도 명절에 쉴 거니까, 포장 재고를 따따블로 주문해 둬야 하고, 정육도 냉동실에 꽉 채워둬야 하고, 계란도 미리 더 주문해 두고, 식자재 마트 가서 반찬거리 미리 사다가 만들어둬야 하고, 아이고 할 게 너무 많다고요. "


" 지금보다 더 바쁘다는 게 가능해? 우리가 할 수 있을까? “


자기들은 문제없이 해낼 수 있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며, 추석 다음 날 하루만 쉬고, 대신 명절 특별 보너스를 두둑하게 내놓으라고,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노사 합의를 결정했다.

도대체 지금보다 더 바쁘게 일한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경험 없는 영숙은 유능한 직원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린 명절이라고 딱히 만날 친지도 없는 처지가 같아 , 피로 누적을 풀기 위한  휴식 일 하루면 충분했다.






드디어 D-day, 준비한 재료들로 가게가 터질 듯이 꽉꽉 챙겨져 있다. 미친 듯이 많이 팔아 치우자며, 넷이서 퐈이팅을 외치고 시작한다.



" 불난, 불난, 닭발, 닭발, 뽜이팅!"



다른 날 보다 일찍 오픈 한 가게는 주문 앱을 켬과 동시에 주문이 쏟아졌다.

초저녁이라 식사대용으로 큰 손들의 주문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들어왔다. 보통 2~3만 원을 넘지 않는데, 오만 원을 넘는 주문이 많다. 닭발세트에 치킨과 국물떡볶이가 계속 주문이 들어온다. 모처럼 모인 친지들이 어른들은 닭발로 술안주를, 애들은 치킨과 떡볶이로 현명한 선택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쏟아지는 주문에 지콩과 빙구는 주방을, 놀부는 배달을, 영숙은 주문과 포장을 자연스럽게 전담하며, 각자의 맡은 일에 미친 듯이 바빴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자, 안주거리 위주로 단품 메뉴의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해서 주문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영숙은 놓치기 싫어 배달시간을 90분으로 찍어도, 주문 취소 없이 다들 잘도 기다린다. 명절은 그런건가 보다.

자정이 넘으니, 주변 모텔에서 주문이 폭주했다. 주안역 주변의 밤 문화를 선도하는 모텔 촌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지 쏟아지는 주문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주문 앱을 멈춰 버리는 사태가 생겼다.


화로를 담당한 지콩은 프로답게, 불닭 국물닭발 대패오돌뼈 등 동시에 해치우는 놀라운 스피드를 발휘하며, 아무리 많은 주문이 들어와도 척척 해내는 작은 거인이었다.


늘 모자란 웃음을 짓던 빙구도 웃음조차 잃어버린 채 몇 시간째 주구장창 닭만 튀기다가, 결국 엄지손가락 하나도 튀겨 놓고 아프단 말도 없이 묵묵하게 튀기고, 또 튀겼다.


놀부 또한 일당 백을 하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자란 놀부는 인간 티맵으로 보통 3개씩 묶어 나가도 최단거리로 기똥차게 신속 배달하고, 거리상 불가한 것은 과감하게 배달 기사를 부르는 빠른 두뇌 회전을 쓰면서, 배달로 인한 문제는 없게 했다.


그런데, 역시 구멍은 영숙이었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영숙은 자정이 넘어가자, 과부하가 걸려 이것저것 빼먹기 시작했다.


“ 놀부야~ 주안역 옆에 한국관 옆 라브모텔에서 주문한 불닭세트에 떡볶이에 치킨까지 포장 완료~, 어여 배달 가셔. ”

“ 오케이~ 갑니다.”


“ 앗! 잠깐만, 누나, 모텔인데 왜 수저 없어요? 비닐장갑은? 리뷰로 신청한 쿨피스는? “

“ 어머! 미안, 잠깐만 금방 갖다 줄게. “


“ 누나, 제발 빼 먹지 좀 마요. 또 갔다가 올 뻔했잖아. 으이그~ 이 조류 사장아~”



영숙 때문에 늦게 받은 배달음식을 들고, 주안동 최고의 라이더 놀부가 신나게 지름길을 달려, 친근한 한국관을 지나 라브 모텔에 도착했다.


‘ 늦은 밤 모텔에서 이케 많이 주문하다니, 친구들끼리 모여 한잔하나 보네.’

놀부는 묵직한 두 묶음을 들고 조심스레 모텔 방 벨을 누르고 대답을 기다렸으나 조용하다. 그냥 두고 오면, 이것들이 떡볶이가 불어서 못 먹었다며 리뷰 테러에 환불 요청까지 할 것이 뻔하다. 배달의 프로답게 놀부는 이번에는 문을 약간 세게 두드리고 잠시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쾅 열렸다. 순간 너무 놀라 배달 음식을 떨어트릴 뻔했다. 방금 목욕을 한 듯 타월만 걸친 거대한 여자가 문을 확 열어재끼고, 암말 없이 놀부의 손에 있던 두 봉지를 휙 낚아채 들어가 버린 것이다.

배달은 다녀온 놀부가 아주 오래간만에 사람에게 쫄려봤다며, 오늘은 더 이상 배달을 가지 않겠다며, 지콩에게 헬멧을 던져버리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얼마나 더 일했을까, 예상보다 더 빠른 시간에 재료가 다 소진되어 버렸다.




아직 동이 트려면 멀었지만, 재료도 재료고, 다들 체력이 바닥나서 그만 닫고 날음식을 먹고 싶다는 직원들의 요청으로 초밥을 주문했다.

맥주 한 캔 씩 마시면서 멍하니 홀에 앉아 있는데,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앗! 그때 그 잘생긴 남자였다. 영숙은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 순살 치킨 한 마리 포장되나요?”


“ 죄송합니다. 오늘 재료 다 소진돼서 없습니다.”


영숙은 녀석들이 저번처럼 무례하게 내쫓기 전에 먼저 미안함을 표시하며,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 아, 제가 또 잘못 왔네요.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남자는 가게 문을 나가면서 영숙에게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잠시 쳐다보았고, 영숙도 어색해하며 같이 말없이 웃어 주었다.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던 직원들이 영숙에게 한소리씩 한다.


“ 누나, 뭔 웃음이 왜 그렇게 헤퍼요? 그냥 안된다 하면 되지. 고작 치킨 한 마리 사러 온 사람한테 뭐가 그리 죄송한데? “


“ 맞아, 일할 때는 여전사처럼 말하면서, 말투가 왜 저래, 비염 있어요? “


“ 음... 좀 그렇긴 했지. “


말없는 빙구까지 합세해서 빈정댔다. 그냥 이유 없이 영숙이 잘생긴 남자에게 친절한 것이 싫은 모양이다. 영숙은 못난이들의 자격지심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다시 봐도 정말 잘생긴 얼굴이긴 했다.

야식의 성지답게 새벽시간에 신선한 초밥이 배달이 되다니, 오랜 기다림에 비해 비싼 초밥은 비빔밥 먹듯이 와구와구 순식간에 걸신들에게 먹혀 버렸고, 어느새 날은 밝아오고 있었다. 오늘은 가게를 쉬기로 했으니 내일 오후까지 내리 잠만 자다가 출근할 수 있다는 기쁨에 영숙이 가게를 나서려는데 또 누가 문을 열었다. 지콩이 문 쪽으로 보지도 않고 승질을 낸다.


“ 가게 마감했어요.”


“ 이모~ ”


꼬마 여자애가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이모를 찾는다. 이른 새벽에 웬 꼬마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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