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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Apr 13. 2024

꼬마 손님 지호

8살 꼬마 아가씨

꼬마 여자아이가 시커멓게 도배된 가게 안의 양아치 같은 직원들을 보고도 딱히 놀라지도 않고, 영숙을 보며 다시 부른다.


“ 이모.”


“ 나?”


영숙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단발머리에 안경을 쓴 꼬마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 야! 꼬맹, 쪼맨한 놈이 간댕이 크게 이 새벽에 어딜 싸돌아다녀. 얼른 집에 안 가. "


지콩의 문전박대에도 지콩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요지부동 영숙만 쳐다본다.

놀부가 짓궂게 씨익 웃으며 들어오라고 하자, 꼬마가 가게 안으로 쏙 들어온다. 어린양이 늑대 인간들 소굴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오니, 오히려 늑대들이 살짝 당황했다.


“ 야! 꼬맹, 너 누구보고 이모라고 하는 거야? 너 이 아줌마 알아? ”


역시나 지콩 따위는 쳐다 보지도 않고 고개만 까딱인다. 꼬마에게 무시당한 지콩이 유치하게 울려 버리려는 심보로 놀려대기 시작한다.


“ 어디 겁도 없이 쪼맨한 녀석이 새벽에 돌아다녀. 근데, 너 손에 들고 인형은 머야? 아하~우쭈쭈 울 애기 무서워쪄 인형 안고 다니는구나. 애기 이불에 오줌 싸쪄? 그래서 쫓겨나쪄? “


“ 아니거든, 내가 애긴 줄 알아. 얘 혼자 두면 심심할까 봐 델꼬 나온 거거든.”


" 야! 너, 근데 어른한테 왜 반말이야. 쪼맨한 게 뛕! "


" 삼촌도 쪼맨한 게."


꼬마는 지콩의 놀림과 위협에 겁먹지도 울지도 않고, 안경 너머로 지콩을 째려본다. 구경하던 놀부가 낄낄대며 끼어든다.


“ 지콩, 너 드디어 주둥이 강적을 만났네. 근데, 숨겨둔 딸 아냐? 둘이 콩만 한 게 왜캐 닮았냐? "


그러고 보니 자그마한 눈 코 입에 안경까지 쓰고, 야무지게 한마디도 안 지고 따지는 말투까지, 닮긴 닮았다.


" 아니거든, 울 아빠가 백배는 잘생겼거든. "


" 야! 나도 내 전여친들은 다아~ 쌍꺼풀 있고, 너 보다 훨씬 이쁘거든. "


양아치 직원들이 처음 보는 꼬마에게 더 이상 무례하게 굴기 전에 영숙은 퇴근하라고 내쫓아 버렸고, 영숙과 찾아온 꼬마 둘만 가게에 남았다.

온종일 폭주한 주문으로 체력이 바닥난 영숙은 이 낯선 꼬마를 빨리 내보내고, 어여 집에 가서 온 몸에 베겨있는 매캐하고 쪄든 음식냄새를 씻고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꼬마는 그저 예의상 앉으라는 영숙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낼름 영숙의 전용 캠핑의자에 앉아 버린다. 참 당찬 꼬마아가씨다.






" 나를 아니? “


“ 응, 알아. 이모, 내가 저번에 가게 앞에서 액체괴물 줬잖아."


" 액체 괴물? "


" 저기 있네. 내가 준거잖아."


선반 위에 부적처럼 올려 둔 액체괴물을 꼬마가 가르킨다.

처음 봤을 때의 긴 생머리는 단발로 변했고, 거기다가 안경까지 써 버린 꼬마를 눈썰미 없는 영숙이 알아 볼리 없었다. 거기다가 지난 한 달 사이에 생긴 엄청난 사건들로 영숙의 메모리 용량은 초과되어 있었다.


“ 아 맞네, 이모가 못 알아봐서 미안해. 잘 있었어? “


처음 가게에 오던 날, 가게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였던 영숙에게 액체괴물을 선 듯 주었던 꼬마, 이 동네가 마음에 들게 해 주었던 그 꼬마가 이 꼬마라니.

 핸드폰 시간은 5시를 알리는 이른 새벽에 잠옷 차림으로 한동안 씻기지도 않은 꼬질한 인형을 안고, 왜 여기 나를 찾아왔을까? 아직 밖은 어린애가 다니기엔 무서운 새벽인데,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지 못하고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지는 것이 숨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별 표정없는 꼬마의 얼굴에서 담벼락 밑에서 울고 있던 어린 시절의 영숙이 보였던 것은 너무 피곤해서 일 것이다.





“ 이름이 뭐야? ”


“ 1학년 3반 김지호. ”


“ 멋진 이름이네, 지호 밥 먹었어?  배는 안 고파? “


“ 배는 고프지 않은데, 치킨은 좋아해요. 떡볶이는 매워서 싫지만 떡은 좋아해요. 어제저녁에 할머니가 된장찌개랑 계란 주셨는데 그냥 그랬어요. 아직 아침은 먹지는 않았어요.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는 아니고, 밥 주는 할머니. “


추석인데, 가짜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혼자 먹었구나. 밥을 늦게 먹어 매번 욕과 함께 눈물의 밥을 먹었던 어린 영숙도 엄마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치킨을 사 오는 날은 기분이 좋은 날이라 화도 내지 않았고, 천천히 먹을 수도 있어서 아직도 치킨을 좋아하는 영숙이다.

 

“ 아! 그럼, 이모가 치킨 튀겨줄까? ”


“ 정말요? 아빠가 치킨 사 온다고 해놓고 약속 안 지켰어요..”


“ 그래? 잠깐만 기다려. 이모가 금방 튀겨올게. ”


영숙은 어린 영숙에게 행복을 안겨주었던 치킨이, 지금 이 새벽에 영숙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꼬마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들어가 튀김기를 먼저 가열시키고 냉장고를 뒤져본다.

재료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다행히 순살 몇 덩어리와 떡볶이용 밀떡 몇 개가 남아 있었다. 튀김가루를 찾아 순살을 버무리면서 기름이 가열되기를 기다리는데, 지호가 어느새 영숙의 옆으로 왔다.



“ 어머, 주방 바닥 청소 안 해서 미끄러워. 기름도 튀어서 주방은 위험하니까,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 알아요. 그냥 보러 온 거예요. 이모 팔에 상처가 많아서 알고 있었어요. 나는 혼자서 계란프라이도 할 줄 알아요. 나는 다치지도 않아요. “


“ 지호는 이모처럼 덤벙대지 않는구나. 그런데 지호야, 낯선 사람이 있는 곳에 따라 들어가면 절대 안돼. 그러다가 위험한 일 생기면 어떡하려고 해. 여자어른도 조심해야 해. ”


“ 알아요. 학교에서 다 가르쳐줬어요. 이모는 괜찮으니까, 괜찮아. “


꼬마 지호에게는 영숙에게 없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다. 하고 싶은 말은 또박하게 전달해 버리는 것이 어리숙한 영숙과는 달랐다. 그게 옳고 틀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내뱉는 배짱이 그저 부러웠고, 어디가서 가게를 덜컥 인수해 버리는 어른으로는 크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지호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때까지 주방을 나가지 않았고, 영숙은 지호의 취향에 맞춰 튀기기 시작했다.

치킨은 9분이 아닌 12분을, 밀떡은 살짝 튀겨 설탕가루를 뿌려 종이컵에 담아 긴 요지를 꽂아 지호에게 주었다. 그 자리에서 하나씩 천천히 맛을 본 지호는 다행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의무를 다한 영숙은 아까부터 걱정하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 엄마 걱정하시겠다. 이거 집에 가서 먹자. 이모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


갑자기 지호의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종이컵을 들고 쌩하니 주방을 나가 버렸고, 당황한 영숙은 어질러진 주방의 튀김기 전원만 끈 채 따라 나갔다.

지호는 캠핑 의자에 앉아 인형을 안고 있었다. 뽀로통하게 심통 난 것 같기도 하고, 약간 졸린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으로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가 버렸고, 그런 지호에게서 어린 영숙이 또 겹쳐 보였다. 지호가 측은해서인가, 아직까지 어린 시절 엄마의 폭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신이 가여워서인가, 영숙은 가슴이 아려왔다.


 






얼마나 흘렀을까,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끝낸 지호가 얘기를 시작했다.


“ 엄마 없어요. 나 아기 때 집 나갔대요. 아빠도 지금 집에 없어요. 어제 일 끝나면 맛있는 거 사 온다고 해놓고 안 왔어요. “


또박또박 부모의 부재를 알리는 지호의 혼잣말인지, 영숙에게 건네는 말인지, 영숙은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 우리 집에서 이모가게 보여요. 저기 삼송 빌라 2층이거든요. 나 이모가 가게 들어가는 거 맨날 봤어요. 내 방에서 다아 보여요. 못생긴 삼촌이 부릉부릉 오토바이 타는 것도, 친구들이랑 담배 피면서 욕하는 것도 다 봤어요. 꼬부랑 할머니가 매일 가게 뒤에 종이상자 훔쳐가는 것도 봤구요. "


" 걱정마요. 아무한테도 말 안해요. 나랑 내 동생 하늬만 알아요. 하늬는 애(인형) 이름이에요. 그리고, 울 아빠 등에도 용 그림 있어서 난 삼촌들 하나도 안 무서워요. "

" 어... “


" 근데, 이모는 왜 담배도 안 피면서  가게 밖에 나와서 긴 의자에 혼자 앉아 있어요? “


" 아, 봤구나. 하늘 구경, 이모는 멍하니 혼자 있는 거 좋아해서. “


" 난 싫은데, 맨날 혼자 놀아서. 나, 또 이모 보러 가게에 오고 싶다.”


혼자 있는 것에 신물이 났는지 벌써 다음 약속을 잡으려는 지호는 기분이 풀렸는지 참새처럼 조잘대며, 치킨을 오물오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가게에 또 오고 싶다는 지호의 말에 영숙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대신 어린 영숙이 대신 말을 건넨다.


‘ 알아 그 마음, 인형이랑 친구하고, 방 안을 마을 삼아, 베개랑 얘기하며, 이불 속 여행을 다녀봐도, 결국 무섭고 심심한걸, 매일매일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 길단 말야. '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지호가 벌떡 일어나 영숙에게 안긴다.

아니, 안아주는 거 같았다. 마음이 가면 행동으로 옮기는 지호는 외롭게 자랐지만 자유로웠다. 어린 영숙은 외로움에 길들여진 가축이었는데.

지호의 작은 손길이 영숙의 목을 꼭 감싸고,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며 보듬어 주었다. 꼬마 지호가 어린 영숙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었던 어린 영숙을 지호가 위로해 주고 있었다.




먹는 것보다 수다 삼매경에 빠졌던 지호는 결국 치킨은 다 먹지 못하고 영숙과 가게를 나란히 나섰다.

영숙의 냄새나는 가디건이 지호는 마음에 드는지, 영숙의 손에 깍지를 끼고,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걷는다. 지호의 단발머리가 가을 새벽바람에 나불댄다. 정말 지호의 집은 가게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낡은 연립주택이었다. 입구 앞에 도착했을 때 키가 큰 그림자가 지호를 불렀다.



" 아빠? "



지호가 영숙의 손을 놓고, 그쪽으로 달려가 안긴다



" 지호야, 어딜 간 거야? 핸드폰도 두고, 아빠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



그제서야 지호는 또래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 아빠가 왜 안 왔어, 기다렸는데 아침인데도 안 왔잖아. "


" 아빠 가게가 너무 바빴어. 아빠는 지호가 자는 줄 알고 일부러 전화도 안했는데, 기다렸구나. 아빠가 미안해. "



지호가 울먹이면서 아빠 오나 보려고 마중 나갔다가 한 발 한 발 걷다가 이모가게 불이 켜져 있길래 들어갔는데, 이모가 치킨 줬고 안아도 줬다며, 울먹이면서도 할 말은 다하고는 아빠가 안 와서 밤에 무서웠다고, 아기처럼 아빠에게 다시 꼭 안긴다. 어린 영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모 자식 간이다. 오직 사랑만이 있고, 말의 상처는 없었다.

지호가 조금 진정되자, 남자가 안은 채 일어선다. 그제서야 영숙과  눈이 마주친 지호 아빠라는 남자, 가게에 순살 치킨을 사러 왔었던 그 남자였다. 여명이 밝아 오면서, 남자의 외모는 더 빛이 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초라한 행색에 영숙은 급하게 지호에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뺨에는 영숙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가게에 돌아오니, 초밥도 먹지 않은 영숙을 위해 못냄이 직원들이 어디서 회를 큰판으로 사 와서 술판을 세팅해 놨다. 오늘 가게도 쉬니까, 한잔 마시고 집 가서 푹 자라는 자신들의 큰 배려를 고맙게 생각하라며, 굳이 영숙이 먹지도 못하는 날음식을 준비해 놨다.

술이고 뭐고 영숙은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상태였다. 그저 내 방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마음뿐이었다.

빈 속에, 구멍 난 마음에, 얼마나 들이부었을까, 영숙은 그렇게 들어간 어두운 방 안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야~~ 미친 사장이 연휴 3일째 잠수를 타.

확! 짤라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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