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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Apr 27. 2024

진상

" 누나, 몇 달 일해 본 소감이 어때? 돈은 안되고 몸만 축나지? "


" 그러네. "


“음식 만들고, 사람까지 상대하려니 힘들지? 아프니까 사장이다. 그치? ”


“ 그런가? ”


가게 일에 잘 적응하는 것 같으면서도, 진상손님이 생기면 버거워하는 영숙을 위로한답시고 건네는 지콩의 말에는 경험자의 거만함이 묻어 있었다.

사실, 이 가게의 사업자 명의는 지콩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영숙이 회사를 퇴사한 것이 아니라 강제 휴직기간 중이라, 가게를 영숙의 명의로 할 수가 없었다. 그놈은 이것까지 계산해서, 직원 셋 중 신용카드 발급이 유일하게 가능한 지콩의 명의를 사용하도록 영숙을 꼬드겼고, 불난 야식의 대외적인 사장은 지콩으로 되어 있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그놈에게 눈이 멀었던 영숙에게 야무지게 일을 해결해 주는 지콩을 만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십대 시절부터 중국집에서 양파 까기, 치킨 집 배달하기, 그 치킨집에서는 가출한 친구와 함께 가게 한편에 숙식 제공을 받으며 지냈는데, 사장 와이프가 손자 같은 친구를 겁탈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도망 나왔다는 얘기를 닭발을 불질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데, 옆에서 닭을 튀기던 빙구가 조용히 주방을 나가버렸다. 순간 영숙은 머리가 띵~했고, 들고 있던 치킨 양념통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 누나만 더 당한 세상처럼 빙신같이 굴지 마라” 조콩의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친구를 버리면 어디서 또 띨띨하게 당할 것 같아서, 같이 미나리 삼겹살 집에서 하루종일 미나리에 붙어있는 거머리를 잡았고, 중국집 배달도 하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며, 멀지 않은 미래에는 진짜 사장이 될 거라고 했다. 밑바닥부터 경험한 지콩이 있어, 장사에 생초짜인 영숙이 주안동의 어마한 야식 배달에서 경쟁에서 몇 달째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하다.

그런데 일이 슬슬 손에 익숙해지니, 영숙에게도 보기 싫은게 보이기 시작했다. 진상 손님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험해 보니, 배달업과 항공 서비스업의 묘한 공통점이 있다. 고객의 목소리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항공사에서는 고객의 말씀이라는 고약한 사이트를 만들어 고객불만이 접수되면 해당직원의 영혼까지 털어 버릴만큼 고객불만을 중요시한다.

배달업에서는 리뷰라는 무지막지한 별점제를 통해서 고객들의 일방적인 후기에 따라 가게 평가가 좌우된다. 작은 가게들의 유일한 홍보수단은 배달 앱 밖에 없으니까 리뷰이벤트에, 개진상손님이더라도 참고 또 참으며, 장수돌침대처럼 별 다섯 개를 사수해야 하는 아픈 사장이 되는 것이다.


불난 야식도 한때 야식배달 랭킹에 올랐던 맛집이라 그런지 똥파리가 너무 꼬인다. 영숙은 지난 몇 달을 밤낮 바꿔가며 열심히 어마하게 팔았는데, 사장에게는 아직까지 돈 맛을 못 보게 한 요상한 가게이다. 그럼에도 진상은 참지 않을 것이다. 과감하게 손절을 칠 것이다.

무엇보다, 진상은 한 가게만 공격하지 않는다. 한번 성공하면 그 맛에 다른 가게도 쑤셔댈 것이다. 장사를 해보니 알겠다. 왜 아프니까 사장인지.

진상도 손님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마음 상하는게 더 싫다. 그게 은근 오래간단 말이다.

적어도 여기 내 가게에서 만큼은 아니고 싶다.





몇달 해온 가게를 하면서 경험한 진상들은 정말이지, 제발 그만 우리가게를 찾았으면 좋겠다.


진상 1 (TOO MANY RQ)

닭발은 태우지 마시고 맵게 해 주세요.

주먹밥은 단무지 알레르기 있으니까 빼주시고, 대신 날치알 더 넣어주세요. 치킨도 추가로 주문했는데 저번처럼 너무 튀기지 말고요. 치킨무 그냥 하나 더 서비스로 주세요. 양념소스는 약간만 찍어먹게 따로 쫌만 주세요.

리뷰이벤트는 음료 말고 누룽지탕으로 주시면 안 되나요? 맛은 있는데 양은 늘 아쉽네요.


그건 탄게 아니라 불질한 거야. 불맛 몰라?

단무지 알레르기가 있다니 고건 빼고, 날치알 이천 냥, 치킨무 천냥, 추가로 누르셔.

그리고 부탁인데, 담에는 여기 말고, 양 많은 북경반점에서 시키셔!



진상 2(메인 메뉴만 빼고 주문?)

감자튀김 1개, 치즈볼 5개, 콘샐러드 2컵, 모둠튀김 1개 주문에, 뭐어~ 만수동까지 배달?

거기다가 리뷰 이벤트는 쿨피스 달라고?


메인요리 빼고 주문을 한다고? 장난치는 거야 뭐야?

시원하게 주문접수 불가를 눌러줬더니, 잠시 후 똑같은 메뉴가 다시 주문하고, 다시 접수 불가 누르니, 또 주문하며 계속 장난을 쳐?


" 배달의 후예 회사죠? 여기 불난야식인데요. 다시는 주문 못하게 블랙리스트 등재 신청합니다. “



진상 3(거지 근성)

" 저기요, 계란찜에서 머리카락 나왔어요. 진짜 기분 나빠서 못 먹겠네, 환불해 주세요. "

" 어머,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가서 남은 음식 수거해서 머리카락 확인하고, 바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


놀부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 원룸 문 앞에 던져져 있는 음식을 수거해서, 불난 야식의 브레인 지콩이 과학수사를 시작한다. 음식물 쓰레기 같은 봉지를 열자마자, 욕부터 박고 시작한다.


" 와~ㅅㅂ 다 처먹어놓고 뭘 못 먹겠대. 이 머리카락은 도대체 누구거야? 파마에, 노랑에, 긴데??? "

" 환불해 줄 테니, 리뷰 테러만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는데, 수거해 간다니까 급하게 지 머리카락이라도 뜯어 넣은 거지 뭐. 이거 딱 내 전여친 수법이네."


어디서 나타났는지 빙구가 훈수를 뒀고, 수사를 마친 지콩이 사정없이 진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저기요~ 이 머리카락은 도대체 누구 겁니까? 그리고 다 먹어놓고 뭐가 못 먹었다는 겁니까? 환불? 장난해? 한 번만 더 장난쳐봐. 경고하는데 울 가게에 또 주문하면 디진다. "




진상 4(민폐 커플)

” 손님, 외부 음식 반입하시면 안됩니다. 그리고 강아지 출입도 안됩니다. “

“ 어머 우리 파피는 너무 작아서 괜찮아요. 손님도 별로 없네 뭐, 금방 먹고 갈 거니까, 일단 요거 요거 요거만 먼저 주세요. ”


젊잖게 말로 통하는 커플이 아니다. 몸의 대화가 답이다.


“ 놀부야~ 놀부 어딨니? 우리 파피 나와라~ ”




진상 5(위화감 조성)

“ 소주 한병이랑 치킨 한 마리 주세요. 순살치킨 한 마리는 포장해 주시고요. “


가게 안으로 들어온 손님에게서 빛이 난다.

 헉! 이 남자... 지호 아빠?


“ 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양복 입었는데 어색하네요.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한잔하고 들어가려고요. 오늘은 다행히 치킨이 있네요.ㅎㅎ 감사합니다. ”


심으로 우수한 남자를 보니, 안구 정화가 되는 것 같다.


" 누나 머리 풀었스, 눈은 왜 사라짐? “

" ㅉ~ 노답이다. “

“ 난, 저 누나가 자주 무서워. ”



“ 사장님, 안 바쁘시면 같이 한잔 하실래요? “


“ 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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