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이 Mar 30. 2024

메뉴의 구성

영숙은 태어나 처음으로 하는 사장놀이는 해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직원들에게 하극상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 누나, 할 줄 아는 요리 있어요?”


“ 아니.”


“ 야, 딱 보면 모르냐, 라면 빼고는 가스불도 켜 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맞죠?”


“... “


“오늘 불닭 만드는 과정 옆에서 잘 배워두고, 다음에는 누나가 직접 해야 합니다."



" 닭발을?  나보고 만지라고?"


" 그럼 당연하죠. 닭발집 사장이 닭발을 만질 줄 알았야지. 누나가 무슨 공주예요? 그리고 이따가 앱으로 주문 들어오면 주문 접수받고, 포장도 해봐요. 포장할 때는 메뉴에 따라서 사이드 메뉴가 조금씩 다르니까, 냉장고에 미리 만들어 둔 거 있으니까 잘 봐둬요. 그리고 메뉴는 당근 다아 외웠겠죠? 아! 그리고, 가게 샵 앤 샵 인건 알고 있죠? 다른 샵은 치킨하고 떡볶이가 메인 인건 알고 있죠? “


뭘 자꾸 알고 있냐고 묻는 건지, 가게에 가게가 더 있다는 건 무슨 소린지, 메뉴도 다 비슷한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뭔지, 영숙은 분명 모국어인데 낯설고 외워지지도 않는 이상한 말들이 그저 어렵기만 했다.


" 화로 닭발, 간장 닭발, 국물 닭발, 불닭(순살), 대패오돌뼈, 치킨(뼈, 순살, 옛날), 또 하나 더 있던데... 그리고, 여기다가 날치알 주먹밥과 계란찜을 더하면 기본세트 메뉴이고, 치킨을 추가하면 스페셜 메뉴가 되고, 또, 또, 아우~ 진짜 뭐가 이렇게 많아. "


생닭발은 징그러워 못 만지겠고, 메뉴는 암기력이 딸려 못 외우겠고, 혼자 중얼대는 영숙을 보며, 직원들은 낄낄대며 즐거워한다.


” 머리 나쁜 사장님, 일단 밥부터 먹고 하시죠. “


며칠 같이 있었다고 영숙이 총명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을 정확하게 파악한 츤데렐라 놀부가 영숙을 위해, 다른 상호의 가게 세트메뉴를 저녁 식사로 준비랬다.

본격적으로 오픈을 하기 전에 모든 재료준비가 완료되면 다 같이 식사를 먼저 한다. 영숙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 만나기를 꺼려했고, 밤낮 구분 없이 술과 잠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던 영숙이, 자신을 막 대하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매콤 달달한 국물떡볶이에 갓 튀긴 치킨을 푹 찍어 먹는 맛의 합은 커피 앤 도넛이요, 짜장과 탕수육이었다. 거기다가 날치알 주먹밥에 국물떡볶이를 살짝 적셔 한입 크게 먹고, 푸딩 같은 계란찜으로 입가심하니, 아~ 너무 행복하다.

정신 못 차리게 맵단짠한 맛에 취해 와구와구 먹는 영숙에 비해, 빙구와 지콩은 쿨피스만 마셔대며, 놀부에게 한소리씩 한다.


" 와~ 씨, 먹다 디지라고 이케 만들었냐?"


" 야! 이 새끼야, 이케 매운 걸 누가 처먹냐?"

 

놀부가 우동면처럼 긴 밀떡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영숙을 턱으로 가리키자, 여자라는 종족은 참 독하다, 저렇게 매운 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 누나가 너무 매운 걸 먹어대서 머리가 나쁜 게 아니냐, 입은 좀 닦고 먹으라는 등, 영숙을 계속 놀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숙은 입안 한가득 쫀득한 밀떡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때, 시커면 가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훤칠한 외모를 가진 손님의 입장에, 영숙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쳐다봤다.


" 실례합니다. 지금 순살 치킨 한 마리 포장 가능한가요?"


" 아직 오픈 전입니다. "


“ 아~ 네, 실례했습니다. ”


남자는 군말 없이 가게를 나가면서, 영숙과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외모는 영숙의 입안 가득 찬 떡볶이가 부끄러울 정도로  빛이 났다. 상대적으로 칙칙한 외모의 직원들과 비교되어서 더 잘생겨 보였을 수도 있지만 정말 훈남이였다.

갑자기 지콩이 영숙에게 메인 닭발 요리도 할 줄 모르면서 무슨 사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자기들처럼 착한 직원들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알아라, 지금 당장 화로 닭발 요리를 전수해 주겠다며, 징그러워 싫다는 영숙에게 닭발이 누나를 더 무서워한다며 실습을 시작했다. 아직 떡볶이는 더 남았는데 말이다.






첫 번째, 닭발의 기본 중의 기본 누린내 잡기.

국내산 냉동 닭발 20kg를 핏물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찬물을 수시로 교체하면서 해동시킨다. 이게 생각보다 시간과 물이 엄청 많이 소비되는 작업이다.






두 번째, 큰 통에 묵은 때 싹 씻은 닭발 넣고, 물 붓고, 소주 한 병 꽐꽐 다 붓고, 월계수 잎 몇 장 띄워 끊인다.

백숙처럼 푹 익히는 것이 아니라, 팔팔 끊어 오르면 바로 불 끄고 몇 분 정도 뒀다가 닭발을 건져낸다.


세 번째, 삶은 닭발이 식기 전에 양념을 버무린다.

마늘, 고춧가루, 물엿, 그리고, 비밀의 양념을 섞어준다. 예전 사장인 그놈이 지콩에게만 전수했다는 비밀의 양념은 체인점 두 곳에서도 여기서 사서 쓴다며, 지콩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네 번째, 양념에 버무려진 닭발을 반건조 시킨다.

가게 한켠에 분리되어 있는 건조실에서 꼬들하게 반건조를 시키고 소분해서, 냉장 보관을 한다.


다섯 번째, 주문이 들어오면 소분해 둔 닭발을 화로 위에서 불질한다.

태우지 않으면서, 불맛을 골고루 맛있게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


왠지 이건 할 수 있겠다 싶은 영숙은 지콩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질에 도전했다.

맵고 단 양념으로 발라진 닭발은 활활 타오르는 화로 위에서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음을 영숙은 미처 몰랐었다. 정말 불판에 쩍 달라붙어 불질 한번 못하고, 순식간에 시커멓게 타 버렸다. 주방은 닭발의 시커먼 연기로 대형 환풍기는 요란하게 작동했고, 탄 냄새와 연기가 영숙의 얼굴을 확 덮쳐 눈물에 콧물, 기침까지 솟아내는 처참한 꼴에 지콩도 놀랐다. 그래도, 누구보다 놀랐을 영숙을 진심으로 달래 주었다.

불질이 원래 어렵고 귀찮은 일이라, 어떤 가게는 화학조미료로 가짜 불맛을 내거나, 미리 대량으로 불질을 해놓고 냉장 보관을 해서 주문이 들어오면 전자레인지에 데쳐서 배달하는 곳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찬물 한잔을 영숙에게 마시게 한 뒤, 불행 중 다행으로 눈썹은 아직 반 정도 남아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매운 닭발 만드는데 씻고, 삶고, 버무리고, 말리고, 소분하고, 불질하고, 거기다가 포장까지 해서 세트가 이만 원이 안된다니, 장사를 모르는 영숙이지만 이게 남는 게 있는 장사인가 사장으로서 진지하게 의구심이 생겼다. 거기다가 직원의 안전문제까지. 아... 내 눈썹.





“ 자~ 누나, 닭발은 다음에, 다음에 천천히 배우는 걸로 하고, 주방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고, 당분간은 주문 접수, 포장에만 전념하자고요. ”


“ 주문 들어오면, 기본 배달시간은 50분으로 잡고, 주방이 조금 밀리거나, 거리가 좀 먼 곳이면 60분, 더 밀리면 70분으로 잡아요. 더 늦추면 이 동네는 야식집이 많아서 바로 취소 들어오니까, 접수 잘 받아야 해요. 아~ 맞다.구역도 대충은 알아야지 배달 시간을 계산할 수 있으니까, 시간 날 때 짬짬이 지리도 외워요.

배달 접수하고, 주방에서 메인요리 만드는 동안에 나머지는 미리 포장해 둬야해요. 기본 반찬, 리뷰 서비스 신청한 음료수, 수저 등, 알았죠? “


적절한 타이밍에 ‘배달의 민족 주문‘ ‘요기요 주문 요기요’ 동시에 울려댄다.


“ 뭐해요? 빨리 접수 눌러요. 50분으로. 으이그, 또 까먹었어. 배 고파요? 왜 자꾸 까먹지? 이제 진짜 안 가르쳐줄 거니까 쫌 외워요. 여기 누르고, 여기도, 주문서 나오면 주방에 한 장, 배달 포장지에 한 장, 음료수랑 반찬 같은 거는 미리 포장지에 담으랬잖아요. 요청사항도 잘 확인하고요.”


“어? 어. 여기 누르고, 한 장 주방에 주고, 나머지는 뭐라고? ”  


“으이그~ 누나! 사장!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머리가 정말 닭이야?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