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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Mar 16. 2024

주안동 야식 배달 사장이 되다.



" 속은 괜찮아, 누나? “


“ 어 “



“ 나 사실 가게 오픈한 지 반년쯤 됐어. 코로나 때 야식 배달업이 잘 될 것 같아서 주안동에 차렸는데 완전 대박 났어. 메인요리는 닭발이야. 누나가 좋아하는 치킨도 있으니까 꼭 한번 와줬으면 좋겠어."


“어? “


“ 여전히 길치지? 밤에 운전해서 가게 오기 그러니까, 내가 낮에 가게에 있을게. 꼭 와, 알았지? 그리고… 내가 미안했어. 누나."


“ 어. ”


영숙이 지난밤에 술에 취해 무슨 헛소리를 했는지, 그놈의 전화 목소리는 겨울이불처럼 포근했고, '누나, 누나’ 하는 다정한 말에, 다음 날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내비게이션은 주안동을 찍어 버렸다.






인천에 살면서도 미추홀구 쪽은 가 본 적이 없었다.

확 트인 인천대교를 지나 송도에서 좌회전을 해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쭉 타고 가니, 신기시장이 보였다. 시장 가기를 좋아했던 영숙이 시장 가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제법 큰 시장 같은데 시장 역시 코로나 여파로 사람도 가게도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시장을 지나 큰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 골목길로 들어서니, 오래된 상가 건물들과 낮고 낡은 연립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골목길에서 계절에 맞지 않는 두꺼운 옷차림의 폐지 줍는 할머니를 위태롭게 피해, 초등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니 드디어 ‘불난 닭발’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나대지 마라 심장아.


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가게는 온통 시커먼 암막필름으로 발라져, 도통 가게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너무 일찍 도착한 영숙은 가게에서 멀찌건히 떨어져 낡은 가게 건물을 쳐다보았다.

가게는 생각보다 컸고, 바로 옆에는 작은 문방구가 붙어 있었다. 이층은 교회가 인듯 대낮인데도 LED 전광판으로 예배시간을 실시간 알리고 있었다. 삼층은 별다른 간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가정집 같았다.


노란색 학원 버스가 가게 앞에 정차를 한다. 병아리 떼처럼 작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애들이라, 영숙은 귀한 구경을 놓치지 않았다..

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문방구로 뛰어 들어갔다. 문구용품보다는 불량식품과 자그마한 뽑기기계로 가득 찬 작은 문방구에는 꼬마 손님들로 북적되기 시작했다. 앞치마를 두른 심술궂게 생긴 중년의 주인장은 가게 앞에 서서, 빚쟁이처럼 코 뭍은 돈을 열심히 걷어 들였다.

달달한 불량식품과 뽑기에서 건져 낸 캡슐 장난감을 고사리 같은 손에 한가득 담은 아이들은 그놈의 가게 앞에 퍼질러 놓고 앉아서 까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들이 아닌 것 같다. 8월의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진지하게 뽑기를 개봉하고 있었다.


“ 야, 나 또 이거 뽑았어. 아 진짜 맨날 이것만 나와. 야, 오백 원만 빌려줘. 나 다시 뽑을래.”


“ 싫어. 나 돈 없어.”


쪼그마한 놈들이 돈 꿔 달라는 소리를 잘도하네. 나름 애들의 사회생활이겠지. 빌리는 놈도, 안 빌려주는 놈도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에 영숙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이모, 왜 자꾸 봐요? 이거 갖고 싶어요? 줄까요?"


똘망하게 생긴 긴 머리 여자아이가 영숙을 똑바로 쳐다본다. 맑고 당찬 눈빛의 아이는 낯선 영숙이 신경이 쓰였나 보다. 처음 보는 영숙에게 ‘이모’ 하며 서슴없이 말을 건넨며, 내미는 작은 손에는 캡슐에서 건져 낸 액체괴물이 햇살에 흐물대고 있었다.


" 어머 진짜? 가져도 되니? 정말 주는거니?"


" 응."


영숙은 액체괴물을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그 아이도 이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되니?"


" 응, 여덟 살."


의젓하게 불량품을 바닥에 내려놓고, 양손가락 여덟 개를 펼쳐 보인다.


" 예쁘네."


몽땅한 손가락도, 딸기우유 비린내 날 것 같은 핑크 빛 얼굴도 예뻐 보였다. 영숙은 액체괴물의 물컹한 촉감을 만지며, 그만 가게로 들어갈 마음의 채비를 한다.


" 나도 줄래 , 이거 받아요."


왜 다들 못줘서 안달인지, 다른 녀석도 영숙에게 주려고 손을 내민다. 이 동네가 마음에 훅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다른 학원차가 가게 앞에 정차하더니, 애들을 담아가 버림다. 학원차 뒤에는 ' 미래의 대통령이 타고 있습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낮에 영업 안 하는  그놈의 가게 앞은 미래의 대통령의 주차 구역으로 암암리에 정해졌나 보다.


약속 시간이 살짝 지났다. 여기까지 오긴 왔지만, 막상 만나려니 왜 뭣하러 왔는지 뒤늦은 후회가 급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런 갈팡질팡 대는 영숙의 속을 봤는지, 가게 문이 열리고 그놈이 영숙을 부른다.





“ 누나 왔어? 잘 찾아왔네. 어여 들어와.”

“ 어.”


가게 안은 생각보다 넓고 어두웠다.


“ 운전 힘들지 않았어? 여전히 길치야? 밥 안 먹었지? 잠깐만 기다려. 금방 준비해 줄게.”


“ 어.”


안 본 사이에 수다스러워진 건지, 어색해서 그런 건지, 놈은 영숙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불편하고 낯선 영숙은 액체괴물만 조물딱 거린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영숙은 한껏 움츠리고 앉아 가게를 몰래 훔쳐보기 시작했다.

온통 시커먼 색으로 칠해진 가게 안에 테이블과 의자도 어두운 색이었다. 홀은 꽤 넓었고, 테이블마다 켜진 작은 노란색 조명이 술이 잘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가게 안을 제대로 다 훔쳐보기도 전에 놈이 주방에서 배달음식처럼 한가득 준비해서 나왔다.


“ 이건 매운 달밝인데 계란찜하고 날치알 주먹밥이랑 한 세트야. 치킨은 누나가 좋아하는 양파크림소스로 준비했어. 먹어봐. “


“ 어. ”


닭발을 먹으라고? 남의 발을 나보고 먹으라고? 족발도 안 먹는 영숙에게 닭발을 내밀다니, 허기야 내가 족발을 못 먹는다고 놈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 알리가 없지. 항상 놈이 먹고 싶은 걸로 ‘그래’ 하고는 군말 없이 따라갔던 영숙이었다. 못 먹는다고, 먹어본 적 없다고, 이제 와서 말해봤자 어색한 분위기만 더 어색해질 것이다.  그래,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보자.


놈이 날치알과 알단무지와 김가루를 버무려 주먹밥을 만들어, 주먹밥 위에 불향 가득 베인 매콤하고 무섭게 생긴 무뼈 닭발 한점을 올려 영숙에게 건넨다. 놈의 어색한 손길에 못 이겨 받아 먹어본다.


어라? 뭐지? 맛있다!

불맛이 확 배겨있는 매운 닭발에 날치알이 톡톡 터지는 주먹밥의 조합이 미쳤다.

맛있게 매운맛에 영숙은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 어때? 맛있지? 맵지? 계란찜도 한 입 먹어봐. “

“ 어. ”


액체괴물 보다 더 흐물대는 계란찜은 입안에서 사르륵 사라져 버렸다.


“ 어때? 먹을 만 해? 많이 맵지? 매운 닭발에 쿨피스는 국룰이야. 이거 마셔봐.‘


“ 어. ”


매운 불맛을 차가운 복숭아맛 쿨피스가 쏵 씻어주는 이 조합이 뭐지. 날치알 주먹밥에 매운 닭발, 푸딩 같은 계란찜, 차가운 쿨피스는 정말이지 영숙이 순식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영숙의 마음을  읽었는지 놈은 씩 웃으며 재확인을 한다.


“ 맛있지?”


“ 어.”


“당근 맛있지. 내가 이 레시피를 얼마에 주고 샀는데 당연히 맛있어야지 여자들이 환장하는 맛이라니까. 내가 이 맛에 가게 하기로 결정한 거잖아. 누나한테는 꼭 먹여주고 싶었어.”


“ 어."


어느새 소주 한 병들고 와서 한잔 따라주며, 생양파에 양파크림이 가득 부어진 순살치킨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내미는 놈은 예전보다 더 친절하게 다가왔다.


“ 사실 나 헤어지자고 하고 많이 후회했어. 그런데 내가 누나처럼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도 없었으니까 다시 연락할 용기가 안나더라고. 그동안 열심히 돈도 모았고, 중고차 딜러도 여전히 잘되고 있어서 이제 누나한테 맛난 거 많이 사줄 수 있어. “


“이 가게 정말 장사 잘되고 있고, 맛소문도 나서 가맹점이  연수동과 부평에 벌써 생겼어.”


“ 어, 그래? 축하해.”


“ 그런데, 사업이 한꺼번에 잘되는 것도 문제네. 국산차 제네시스가 러시아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야. 바이어가 한국에 오기 힘들다고 나보고 자기 회사에 와서 일해달래. 이게 돈이 엄청되거든. 지금 코로나 때문에 해외에 자주 다닐 수 없으니까, 내가 현지에서 일 년 정도 있으면서 한국과 연락해서 차량 매수를 해보래. “


“어, 그래? 잘됐네. “


“ 그런데, 이 가게도 장사가 잘되고 있거든. 이제 재미 좀 보는데 아무한테나 넘기고 싶지 않아. 누나 회사 쉬고 있다는 얘기 들었어. 이거 누나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어? “


매운 닭발과 소주에 취해,

놈의 나긋나긋한 꼬심에 취해,

놈에 대한 찌질한 감정에 취해, 영숙은 또 당했다.

마른오징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고 했던가.

휴직 중에도 직장인 대출은 빵빵하게 나왔고, 권리금을 챙긴 놈은 진짜 러시아로 튀었는지, 송도 중고차 매매단지로 튀었는지 더는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영숙의 주안동 야식 장사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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