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이 Mar 23. 2024

직원의 구성

그놈의 친절한 배려인지, 기존에 있던 직원 3명은 그대로 남아 주방과 배달일을 하기로 했다.


직원들은 동네 동생들이라고 했다. 알고 보면 착하고 성실한 애들이라며, 잘 부탁한다는 것이 놈의 가게 인수의 마무리였다. 영숙은 전생에 그놈에게 무슨 대죄를 지었는 것이 분명하다. ‘어’ 밖에는 할 줄 모르는 호구 영숙은 얼떨결에 인수받은 가게에다, 동네 동생들의 생계까지 덤으로 얹혀 받았으니 말이다.




드디어 첫 대면식 날,

직원들은 새로 온 사장이 어리숙한 외모의 연상인 것을 보고는 몹시 기뻐하는 눈치였다. 반면, 영숙은 평범하지 않은 외모와 , 곧 승천할 것 같은 그들의 몸에 그려져 있는 화려한 이레즈미(문신)에 몹시 놀랐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영숙을 직원들은 재밌게 쳐다보며, 자상한 미소로 잡아먹진 않겠다고 웃어줬지만, 영숙은 이미 잡아먹힌 기분이었다. 눈치 빠르게 생긴 자그마한 직원이 아직까지 조폭에 몸 담은 적 없고, 빵에 간 적도 없다며, 친절하게 영숙의 상상이 더 앞서가는 것을 막아주었다.

붉은 불이 깜빡이는 유로 방범 cctv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어두운 가게 안에서 나쁜 짓은 못하겠구나 하는 영숙 혼자만의 오버스러운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있을 때쯤, 직원들은 호칭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영숙은 생에 처음으로 사장이 된 것에 용기를 내어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요구했지만, 직원들은 일방적으로 '누나'로 통일했다. 자기들의 이름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평범하니 그냥 별명을 부르라며, 각자의 별명의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코로나로 반년 넘게 집에만 처박혀있던 영숙에게 그놈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뒷골목 양아치 같은 직원들과 사장으로서 영숙이 이 험난한 야식 장사를 해 낼지 있을지, 이미 결과가 뻔할 것 같았다.



놀부

주안역 근처에 있는 한국관에 배달을 갔다가, 웨이터 흥부와  대판 붙고 놀부가 되었다고 한다.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쪽 째진 눈매, 벌어진 앞니, 불룩하게 나온 배, 그리고, 양팔 문신과 주황색 짧은 반바지를 삐집고 나온 다리 문신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피하게 되는 무서운 외모를 가졌다. 그런 얼굴로 영숙을 보고 자꾸 해맑게 웃는다. 의외로 맑아 보이기는 하는데, 살짝 그게 더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어린아이처럼 안겨서 엉엉 울어대는 버릇이 있다고, 절대 같이 술 마시지 말라며, 다른 직원이 놀부에게 경고를 날렸다.


지콩

생긴 게 쥐 거시기만큼 작다고 지콩이라고 한다.

딴 놈들의 외모에 얼마나 놀랐냐며, 직원들의 개인사부터 성격까지, 쉼 없는 폭풍 수다로 브리핑을 해주었다. 얘기 도중 수시로 아이컨텍과 눈웃음으로 영숙을 대하는 것이, 새로 온 어리숙한 사장이 도망가지 않고, 진득하게 붙어있길 바라는 눈치 같았다. 무슨 액세서리를 그리도 좋아하는지, 귀 한쪽은 온통 피어싱으로 새끼줄을 엮어놨고, 팔찌에, 반지에, 문신에, 부족의 호신용 장신구처럼 작은 몸을 온통 치장을 해 놓았다.


빙구

그냥 바보 병신이라, 빙구라고 한다.

너무 말랐고, 말도 없고 비실비실 웃기만 하는 게, 모자라 보이기는 한다. 십 대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뚜껑을 완전 열었다 닫아서 약간 맛이 갔을 수도 있다고, 지콩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빙구는 시키는 건 군말 없이 잘하는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은 꼭 챙겨줘야 하는 것과, 여자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문제라고 했다. 쉽게 말해서 동네 똥개처럼 밥만 잘 주면 집은 잘 지키는데, 한번 발정 나면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나저나, 저 가녀린 몸으로 야간 주방일을 할 수 있을런지, 오토바이 배달 나가다가 자빠지지는 않을런지, 약간 비어 보이는 눈동자가 싸~하기도 한 것이 살짝 불안해 보인다.







지콩의 말에 의하면, 셋다 스물여덟, 같은 나이 말고도 닮은 점이 있다고 했다.

학창 시절이 없다는 것, 십 대 시절부터 오토바이 배달을 시작했다는 것, 즉 어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군대 미필자라는 것, 군대는 본인들은 가고 싶었으나 국가에서 거부했다고 했다.


놀부는 태어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놀부 엄마는 연애하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랴, 바빠서 놀부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지콩은 어릴 때, 어머니가 술병에 바람까지 나서 집을 나가 버렸고, 아버지는 지콩의 끼니보다는 말의 끼니를 걱정하며 말 밥 주러 경마장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빙구는 홀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시면서 남매 키우셨고, 지금도 그냥 그러고 사신단다.

그렇게 자신들은 어릴 때부터 돈을 번다고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고생을 많이 해서, 본의 아니게 양아치 상이 된 거라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에 비해 영숙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 문제는 불같은 성격의 모친이 영숙을 당신 기분에 따라 대했다는 것이다. 어린 영숙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혼자 남겨지는 외로움보다, 엄마의 기습적인 폭언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몰아붙이는 엄마의 폭격적인 폭언은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 야! 이년아, 하루 왠종일 처먹어라. 이가 썩어 문들어질 때까지 처먹고 있을 거야? 내가 니 다 처먹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을까? 소새끼처럼 느려터져 가지고는, 내가 뭘 처먹고 저런 거를 낳았는지 몰라. 얼른 안 처먹어! “


그러고는 반도 먹지 못한 영숙의 밥그릇을 휙 뺏어버렸다. 울지 않으리라 밥그릇 뺏기기 전부터 다짐을 하지만, 눈물은 눈치 없이 흘러내리고, 목에 퀙 걸려버린 밥 한 덩이가 오도 가도 못해 대답도 못한 채 눈물을 보여 버리면, 그때는  어김없이 담지 못할 폭언으로 이어졌다.


“ 뭘 잘했다고 울어! 그냥 나가 디져! 나가! 나가 디지라고! “


어린 영숙은 나가 디지는 방법을 모르니, 눈물을 보여서는 안됐었다. 쫓겨나다시피 나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긴 부대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서럽게 울었었다.

내가 엄마에게 태어난 것이 뭔가 큰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한데, 담벼락 넘어 군부대 아빠 친구아저씨들은 알건데, 물어보고 싶지만 만날 수가 없으니, 내일은 빨리 밥을 먹어야지하는 눈물의 다짐만 했었던 아픔이 직원들을 대하니 다시금 울컥 올라왔다.


손 안의 리모컨처럼 영숙을 조정했던 엄마는 영숙이 성인이 되어 취직을 하자, 영숙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은 명함 좋은 선자리를 구해, 결혼까지 성공을 시켰다.

결혼이라는 탈출은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다. 엄마는 당신이 잘못 고른 것에 몹시 당황했지만, 영숙은 결혼이 상관없었듯이, 이혼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걸 기회 삼아, 엄마와 거리를 두고 살아도 되는 그게 다행이었다.


태어난 것이 죄가 되어버렸던 그때의 어린 우리들,

아직도 아동학대 신고건 수는 한해 3만 건이 넘는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를 친모가 짐슴처럼 쇠사슬로 묶어서 베란다에서 생활하게 하고, 욕조에서 고문하고, 달군 쇠젓가락으로 고문하는 끔찍한 짓을 뉴스에서 보고, 이 코로나에 얼마나 많은 애들이 고립되어 부모라는 양의 털을 쓴 늑대의 우리에 갇혀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을지, 법의 심판은 역겹게도 너무 관대해서 결국 영숙처럼 직원들처럼 어릴 적 흉터가 가슴에 고스란히 남겨져 아픈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남 다른 가정사로 세상 찌질할 수밖에 없는 영숙과, 세상 양아치일 수밖에 없는 직원들과의 첫 만남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어쩌면 이 구성이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고요한 코로나 시국에, 가게는 밤이 깊어지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장난스럽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숙련된 움직임으로 주문된 요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영숙은 전에 없던 일 욕심이 생겼다. 같이 집중해 보고 싶어진다. 낯선 주방일이 재미있어 보인다니, 묘한 기분이다.


“ 내일은 주말이라 더 바빠요. 저희 야간업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그런 영숙의 마음을 언제 읽었는지, 눈치 빠른 지콩이 활짝 웃으며 환영을 해 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