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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Jun 08. 2024

동네 이모 영숙

“ 컵밥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겠어요. ”


지호아빠의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나 버렸다. 컵치킨과 떡볶이와 어묵이 연일 완판되는 것에 비해 자리만 많이 차지하고 하루에 열개도 팔리지 않는, 그것도 평균 두 개는 컵밥남자가 포장해 가는 것을 빼면 정말 저조한 판매실적의 컵밥이었다.


" 형, 굳이 컵밥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애들 장사라 컵밥보다는 컵 치킨 종류를 늘리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연어 공수 핑계 대고 자주 오려는 거면 그냥 와. 내가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 줄 테니까. 크크. "


“ 아냐, 그게 아니라 컵밥 이게 롱런으로는 괜찮은 종목이라고! 영숙씨, 그런 표정으로 웃지만 말고 내 말 잘 들어봐요. 이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홍보가 부족한 거라고요. 그니까 일단 쿠폰을 만들어서 열 번의 스탬프를 찍으면 열한 번째는 공짜로 준다는 이벤트 하고, 원조 매운 닭발 레시피에서 아주 매운맛 컵밥 추가해서 어른들을 공략해 보자고요. 여기 원래 닭발 마니아들 있었으니 분명히 온다고요. 우선 급한 대로 가게 유리창에 홍보 그림 몇 장 붙이고, 음... 영숙씨 금방 그릴 수 있죠? “


“ 네?... 네. “



드디어 지호아빠의 단점을 발견했다. 고집을 넘어 땡깡이 보인다. 컵밥이 없애도 가게 운영에 전혀 영향을 안 미칠 것 같은데 말이다. 장사에서는 안될 것 같으면 쿨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고작 육 개월 해본 영숙도 알 것 같은데, 예술가처럼 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니 아직 돈의 쓴맛을 덜 본 모양이다. 뭐 딱히 큰 영향은 없다. 참새떼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까.






“ 오~ 손님 많은데. ”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선배언니가 찾아온 것이다.



“ 어머, 선배 드디어 온 거야? 밥은 먹었어? 떡볶이 먹을래? 아님 컵밥? 라면? 일단 앉아봐. 살은 왜 또 빠졌어? 맥주로만 끼니 때우지 말고 좀 먹으면서 지내. 가게는 어때? 에고 이게 뭐야, 뼈 밖에 안 남았잖아. ”



좋아하는 선배를 반년만에 만나니 영숙은 너무 반가웠다. 선배의 팔을 끌어당겨 의자에 앉히고는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 너, 뭐야? 하나씩 물어. 그리고 맘고생 심하다고 하소연 해놓고 살은 왜 찐 거야? 너 진짜 식당 이모 같아. ”


“ 그럼 내가 식당 이모지 뭐야? 뭐 먹을래? 떡볶이가 기가 막히게 맛있어. 아깝다 저녁이면 둘이서 반주로도 가능한데 히히. “


전에 없던 영숙의 모습에 선배는 당황했다. 십 년 가까이 알고 지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숙은 달라져 있었다. 영숙이 극찬한 떡볶이는 그저 달달하기만 할 뿐 특별한 맛은 없었는데 꼬마 손님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에 덩달아 맛이 느껴지는 것 같기는 했다. 그때 애들 몇 명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와, 이미 가방이 쌓여 있는 구석에 지네들의 가방을 던지고는 바쁜 영숙에게 소리쳤다.



“ 이모, 가방 좀 봐줘요. 놀이터 갔다 올게요. ”


“ 응~ 학원 버스 시간 늦지 않게 와. ”



너무도 자연스러운 저들의 행동에 선배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엇보다 영숙의 변화는 정말 놀라움 자체였다. 사람들과 대화를 꺼려하고 특히나 공항에서 손님들이 조금만 언성을 높여도 주눅 들어 자동으로 위축되어 있던 영숙은 어디 가고,  지금 가게 안에서 손님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니, 그게 꼬마 손님이라 할지라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처음에는 달기만 하던 떡볶이도 쫀득하니 계속 손이 가는게 선배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뭔가를 제대로 씹으며, 확 달라진 영숙을 구경했다.

잠시 후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 둘이 들어왔다. 윗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아이와 성별이 분간이 안 가는 긴 곱슬머리의 아이가 들어와서는 여전히 바쁜 영숙을 불렀다. 여기 애들은 가게를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이모를 부르는 것 같았다.



“ 이모~ 에스파 노래 틀어줘요. 빨리요 나 춤춰야 한다고요. ”


" 왜 맨날 추려는 거야? 정신없게. "


" 그냥요. "


“ 지금은 손님 많아서 안돼. ”


“ 힝~~ 왜 안 돼요? ”


“ 너희가 춤추면 정신 사나워서 안된다고, 이따 한가할 때 와. 그때 틀어줄게. ”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아이였다. 영숙의 거절에 곱슬머리가 혼자 노래를 흥얼대더니 갑자기 개다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개다리는 흐물흐물 점점 더 격렬해졌다. 선배는 처음에는 어디 아픈 아이인 줄 알았다.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영숙의 말대로 정말 정신이 사나워졌다.

가게는 문지방이 달도록 손님들은 들락거렸고, 꼬마 손님들은 무한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쉼 없이 떠들며 깔깔대고 있었다. 작은 가게는 북적대는 손님들로 선배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이상한 개다리 춤과 떠드는 아이들은  멈추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숙은 잘도 주문받고, 잘도 웃으면서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 넌 안 시끄러워? 내가 아는 너 맞아? "



“ 아, 선배 너무 시끄럽지. 으이그~ 재는 나중에 추라니까, 또 머리는 엉망으로 해 가지고는, 곱슬아~ 너 왜 오늘도 머리 안 묶고 왔어? 빨리 집에 가서 엄마한테 머리 묶어 달라고 해. 도복도 단정하게 다시 입고 오고, 그리고 제발 양말 좀 신고 다녀라. ”


“ 이모, 얘 엄마 없어요.  할머니랑 살아요. “


“ 울 엄마 나 두 살 때 죽었대요. 울 할머니는 머리 못 묶어요. 손가락이 다 휘어서 머리띠만 사 줄 수 있대요. ”


“ 이모, 애 할머니 떡집해요. 떡 진짜 맛있어요. 근데 애는 그거 안 먹고 여기 떡볶이만 맨날 먹는대~요. ”


“ 이모 떡볶이 맛있거든. 그리고 울 할머니 돈 많거든. ”



영숙은 얼굴이 후끈거렸다. 가게를 하면서 말이 점점 늘더니, 이제는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말을 멈추는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고삐가 풀린 말은 곱슬머리가 안 해도 되는 말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런 영숙을 보는 선배의 표정은 웃는 건지, 난감해하는 건지, 묘하고 씁쓸해 보였다.



“ 바쁜 것 같으니, 우린 동네에서 만나자. 할 얘기도 있고, 나 간다. ”



영숙은 오래간만에 본 선배에게 미안했지만, 엄마 없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곱슬머리가 더 신경 쓰여, 선배를 쉽게 보내고 말았다.

말이라는 게 잘 다루어야지  정말이지 주둥이 아니, 말의 똥꾸녕이라도 꿔매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며칠 전에는 남자아이가 쭈뼛거리며 내민 아동급식카드를 어떤 용도로 발급된 카드인지도 모르면서, 바쁘니까 그저 여기는 가맹점이 아니라고 다른 애들이 있는데 생각 없이 말을 훅 던져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으면서, 또 실언을 하다니...

이제 눈빛만 봐도 속 마음을 꿰뚫어 보는 지콩이 괜찮다고, 이 동네에는 흔해서 애들끼리는 신경도 안 쓴다고 몇 번을 안심시켰지만 영숙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곱슬머리에게 다가갔다.



“ 이모가 미안해, 말실수를 해서... 잠깐만 기다려봐. 이모가 머리 예쁘게 묶어줄게. ”



영숙은 급히 문방구에서 핑크색 머리끈으로 사 와, 미안한 마음에 엉클어진 곱슬머리를 정성 들여 묶어주었다. 아이는 영숙이 왜 미안해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영숙의 손길이 닿아 머리를 묶어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매번 시켜놓은 떡볶이는 반도 먹지도 않으면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가게를 들르는 아이의 깊은 곳의 ‘그냥‘ 이 뭔지 알 것 같다. 떡볶이를 핑계로 그리움을, 외로움을 달래려고 했던 마음이 손끝에 닿아 아렸다.

“ 이모, 내일도 묶어줘요. “


“ 그래, 대신 개다리 춤은 이제 그만 좀 추자. ”


“음… 그건 생각해 볼게요. ”



또 반도 먹지 않은 떡볶이를 내평개치고 신나서 놀이터 쪽으로 뛰어갔다. 꽉 조여 멘 머리가 꽤나 맘에 들었나 보다. 놀이터로 향하는 걸음이 바쁘다. 친구들에게 빨리 자랑하고 싶은 가 보다.






참새떼가 집으로 돌아가고 드디어 조용한 저녁이 다가왔다. 겨울 저녁바람은 잘 생각을 하지 않고 쌀쌀맞다.



“ 가게 밖에서 왜 그러고 있니? 집에 안 가니? “


“ 그냥요.”



가게 입구에서 얼쩡거리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한 여자아이가 추운 겨울 저녁에 왜 가게 앞에 서 있는 걸까, 아이가 바람에 날아갈까 영숙의 오지랖이 또 발동해서 말을 걸어보지만, 아이는 별 반응 없이 영숙을 무시하였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저녁바람이 매섭다. 아이에게 무시당했다고, 무시할 바깥 날씨는 아니었다.



“ 가게 인형을 보고 있었니? 인형을 좋아하나 보네. 만져봐도 되니까 잠깐 들어올래? 어묵 국물이라도 줄까? ”



영숙의 과다 친절에 작은 아이는 말없이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다행히 끄덕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여자아이는 왜소한 체구에 비해 생김새는 성숙해 보였다.



" 예쁘게 생겼네. 몇 학년이야? "


" 5 학년이요. "

 


열두 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 영숙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 자신의 나이를 말하면 다들 영숙처럼 놀란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영숙은 더는 말을 달리지 않았고 따뜻한 어묵 국물을 건넸다. 작은아이는 국물은 마시지 않고 손만 녹이며 만지작 거리다가, 영숙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상당히 작은 목소리였다.



“이모, 이 인형들 어디서 샀어요? 그림들은 다 이모가 그린 거예요? ”


“ 가게 삼촌이 뽑기 달인이야. 저기 사거리 있는 뽑기 가게에 가서 잔뜩 뽑아 온거야. 그림은 이모가 혼자 유튜브 보면서 따라 그린거고, 어때? 맘에 들어? ”


“ 네, 맨날 밖에서 보고 갔어요. 저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거든요. 이거 봐요. 내가 그린 그림을 핸드폰에 찍어 둔 거예요. 인형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오고 싶었는데 애들이 너무 많아서 못 왔어요. 엄마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다칠까봐 못 가게 하거든요. 우리 집 가게에서 가까워요. 지금은 엄마가 퇴근해서 동생 보고 있어서 잠깐 나왔어요. “


“ 아, 그랬구나. 그런데 너 그림 너무 잘 그린다. “


“ 히히 저 엄마 몰래 유튜브도 해요. 그리는 거 올리면 ‘좋아요’도 눌러주니까 기분 좋아요. ”


“ 우와~ 멋진데. “


" 유튜브에서는 내 그림만 보여주면 되니까 좋아요. 친구도 생겼어요. 봐요 나 구독자도 많아요. "


" 대단하다.  밥 많이 먹고 많이 그려야겠다. "


“ 저 많이 못 먹어요. 심장이 안 좋아서 오래 다니지도 못하고 많이 먹으면 자꾸 토해서 조금만 먹을 수 있어요. 근데 이모네 떡볶이는 먹어보고 싶어요.”


“ 아 그랬구나. 떡볶이 매운데 먹어도 괜찮겠니? 이모가 작은 컵에 몇 개만 담아줄게 함 먹어볼래?


작은 아이는 자분자분 수다스러웠다. 영숙이 말의 오지랖을 펼치기 전에 많은 말을 쏟아내주어 다행이었다.


무슨 동네가 사연 없는 애들이 없는 건지, 영숙은 오지랖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말을 멈추는 대신, 맞장구를 잘 쳐주는 동네 이모가 될 작정이다.

참새떼들이 수다스럽고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는 것 같지만, 정작 깊은 얘기는 쉽게 들어내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 대답을 할 때는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말을 들으면 동네 이모 영숙은 이제 이렇게 대답할 작정이다.


왜 그래?

그냥요.


기분이 어때?

그냥 그래요.


맛있어?

그냥 그래요.



아~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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