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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Jun 01. 2024

행복한 오픈

- 태권소년 -

“ 헉헉, 범인 검거했어. ”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반사적으로 뛰쳐나간 지콩이 범인의 모가지를 잡고 들어왔다. 역시 식당에서만 일하기에는 아까운 인재다. 의심의 여지없이 범인의 손에는 증거품이 있었다.


“ 이 자식이 간도 크게 새총에 돌멩이 끼워 넣어서 길고양이 잡는다고 쏜다는 게 실수로 가게 유리창을 맞췄대. 넌 이제 큰일 났다. 경찰차 곧 오면 넌 감빵 가는거야. 어린 눔의 쉐끼가 이 밤에 무슨 새총질이야. 그러다가 사람 맞추면 살인무기가 되는 거야 알아? 몰라? 그리고 고양이는 맞으면 아플까 안 아플까? 너도 함 맞아볼래? “


지콩은 어린 범인을 모질게도 심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찬 꼬마는 두 눈 또랑하게 부릅뜨고는 굴하지 않는 게 유경험자의 포스가 느껴졌다. 범인은 하루종일 얼마나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으면 하얀 도복과 얼굴이 꼬질꼬질했다. 어딘가 낯이 익다 싶었는데, 낮에 본 참새떼 무리 중 가장 개구지게 생긴 녀석이었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녀석이 간도 크게 늦은 밤까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동네를 활보하고 있었나 보다. 꼬질꼬질한 꼬마의 모습은 귀엽다 못해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개구지게 생긴 것이 영숙은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 야, 너 당장 엄마 전화번호 대. ”


“ 안 돼요, 엄마한테 걸리면 혼나요. 아빠 전화번호 줄게요. ”


“ 안돼! 엄마 전화번호 대. 안 그러면 진짜 경찰 부른다. ”



지콩의 온갖 구박에도 굴하지 않던 녀석이 엄마를 부른다는 소리에 누런 코까지 훌쩍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날이 추운 것도 모르고, 코감기 걸린 것도 모르고 신나게 놀았나 보다. 참다못한 영숙이 말려봤지만 지콩은 단호했다.




“ 콩아, 그냥 아빠한테 연락하자. 응? “


“ 안돼! 나도 어릴 때 아빠 무서워서 할머니 불러서 해결했더니 이 모양으로 자랐잖아. 잘못했을 때는 호되게 혼나야지, 안 그러면 나처럼 큰다고. ”



그건 안될 일이라 지호아빠가 어느새 따뜻한 코코아 한잔을 녀석의 손에 쥐어 주면서, 지콩이 하는데로 지켜보자고 했다.

늦은 밤까지 귀가하지 않은 아들을 찾고 있었던 부모는 지콩의 전화에 숨을 헐떡이며 들이닥쳤다. 꼬마가 왜 엄마를 무서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정말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들을 보자마자 솥뚜껑만 한 손으로 등짝 스매싱을 날려버렸다. 옆에서는 흰머리가 힐끗힐끗 나 있는 가녀린 아빠는 말리지도 못한 채, 그저 늦둥이 귀한 자식을 안쓰럽게만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덩치엄마는 더는 솥뚜껑을 날리지는 않았다.



“ 너 정말 왜 자꾸 말썽 피우는 거야? 피아노 학원은 왜 안 갔어? 엄마가 밤에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지. 너 정말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이 새총은 어디서 났어? 아빠가 또 사준 거야?  당신이 자꾸 애를 오냐오냐 하니까, 애가 더 말썽을 피우잖아. 내가 못 살아 진짜. "



덩치엄마는 죄 없는 아빠까지 한통속으로 몰아넣어 부자는 나란히 공범이 되어 버렸다.



“ 정말 죄송합니다. 이 놈이 장난기가 너무 심해서 제가 맨날 불려 다닙니다. 에고~ 누굴 닮아 이 모양인지, 정말 죄송합니다. 너 이 눔의 자식, 죄송하다고 말씀은 드렸어? ”



등짝 스매싱은 진심이었지만, 혼줄은 내면서도 아들의 이곳저곳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고는, 덩치엄마는 한두 번 불려 다닌 게 아닌지 신속한 사건 합의에 들어갔다. 우선 가녀린 부자를 앞세워 진심 어린 사과로 상대방으로부터 동정심을 유발시켰으며, 문제의 유리창은 내일 오전 중으로 교체하겠다는 신속한 처리를 약속함으로써, 깐깐한 지콩조차 순수히 합의를 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솔직히 지콩도 속으로는 녀석의 귀여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덩치부인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나서야, 귀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가게를 나 설 수 있었다.



“ 잘 가~ 태권소년, 어머니 애가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으니, 너무 혼내지 마세요.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 것 같은데, 피아노보다는 몸을 쓰는 곳으로 보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



지호아빠는 참 너그러운 사람이다.


 



- 컵밥남자-

오전 8시 가게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면서 가게 밖에서 멀뚱하니 가게를 쳐다본다. 환한 아침에 보니 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동네장사지만 외형만 봐서는 학교 앞 분식집의 밝은 이미지는 없고 너무 칙칙하다. 거기다가 깨진 유리창도 한몫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방학이라 가게 앞 학교는 조용했고, 흐린 겨울 하늘의 구름도 조용했다. 손을 꼭 잡은 노부부가 가게 맞은편 방지턱에 앉아 볼품없는 가게구경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늘 닫혀있던 가게가 활짝 열려있는 것이 무료한 일상에 구경거리가 된 모양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가게 앞에 서 있는 영숙도 유심히 쳐다보며 사이좋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영숙은 다시 가게로 들어가 닦을 것 없는 바닥을 닦으며 지콩이 도박판 같은 사이트에서 구해온 고가의 LP 턴테이블에 김광석의 친필 사인이 적혀있는 LPE 판을 살포시 올린다. 아까워서 틀지도 않았던 소장용을 오픈날이라고 그런지 괜스레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면 틀어야 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겨울 하늘도 흐린데, 가을도 흐리면 안 되는데... 역시 영숙에게는 클래식보다는 김광석이다.



“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


“ 어머! 깜짝이야! ”


“ 여기 분식집이 생긴다고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제가 혼자 사는데 야간 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하면 밥을 꼭 먹어야 푹 자는데, 집 앞에 먹을 곳이 생겼다니, 너무 좋습니다. 전 배달은 안 시켜 먹거든요. 맛도 없고, 배달비가 너무 아까워서요 하하. 메뉴가... 어디 보자. 오오~ 컵밥이 있네요. 그럼 치킨 컵밥 하나, 연어 컵밥 하나 주세요. 아, 그리고 컵치킨도 하나 주시고요. 제가 치킨을 좋아합니다. 아참 저도 올드하게 동물원 노래 좋아하는데 취향이 비슷하군요 하하. “


음식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는 가게를 찾아온 첫 손님은 싱거울 정도로 키가 큰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영숙이 공항에서 많이 본 보안요원의 재킷을 걸치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어린애가 봐도 아직 오픈 전임을 알 수 있는 가게에 불쑥 들어와서는 일방적으로 주문을 하였다. 영숙은 끼어 넣을 말의 틈을 찾지도 못한 채, 놀란 토끼마냥 얼어붙어 남자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 불가함을 말할 수 있었다.



“ 아.. 그게… 아직… 지금… 음식 준비가…. 죄송합니다. “


“ 아! 제가 너무 좋아서 흥분을 했었나 봅니다. 그럼 몇 시에 가능합니까? ”


“ 열 시에 오픈합니다. ”



“ 아, 열시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열 시에 다시 오겠습니다. 가격대비 맛을 봐야지 다음에 또 먹을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참! 저기 벽에 있는 해바라기 그림은 사신 겁니까? ”


“ 아니요. 제가…”


“ 어쩐지 날 것의 느낌이 확 나는 게 제 스타일입니다. 색감 선택을 아주 잘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공항에서 야간 보안요원 일을 하지만, 사실 제 전공이 그쪽이라서요. 광고회사를 했었는데 경영이라는 게 실력만으로는 안되더라고요. 하하. 그럼 열 시에 올 테니 포장으로 부탁합니다. “



몹시 수다스럽고, 보안요원답지 않게 개인의 정보까지 털어주고는 컵밥남자는 가게를 떠났다.

안 그래도 오픈 첫날이라 긴장한 영숙을 컵밥남자가 더 정신을 빼놔 버렸다. 참새 방앗간 첫 손님이 귀여운 참새가 아니라 수다쟁이 어른이라니, 아무래도 열 시에 올 것 같은데, 마트에 간 지콩은 왜 아직 안 오는 건지 영숙은 마음만 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지콩이 대형 식자재마트에서 두 상자 가득 담아서 돌아왔다. 진짜 시작이다.

주방에서는 튀김류와 식사류 음식을 주로 하기로 했고, 넓은 홀의 반은 테이블로 쓰고, 반은 즉석에서 담아서 팔 수 있는 음식들을 배치하도록 했다.


대형 떡볶이판에 물과 떡볶이양념을 넣어 먼저 끊인 뒤 밀떡과 어묵 한가득 넣어 보글보글 끊인다.

바로 옆 어묵통에는 육수로 쓸 멸치와 무, 파를 넣고 조선간장 게간장으로만 간을 맞추고, 개당 오백 원으로 정한 어묵꼬치를 꽃다발처럼 가득 꽂아 넣는다. 그다음 순살 치킨을 가득 튀겨 컵에 나누어 담아 온장고가 꽉 차도록 진열한다. 각종 튀김은 종류별로 튀겨 큰 바구니에 한가득 투박하게 담아 온장고 앞에 둔다.

컵밥에 들어갈 재료들은 미리 만들어서 온열 통에 각각 담아 주문 즉시 바로 나가도록 배치한다. 


처음이라 그런가, 양 조절을 실패했다. 남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이 만들었고, 오픈시간인 열시를 훌쩍 넘겨 버렸다. 제시간에 온 컵밥남자는 불만 없이 가게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기다려 주었다. 미안한 마음에 컵치킨을 서비스로 줬더니, 공짜에 신나하며 맛도 보지 않고 찐 단골이 되어 내일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다행인 것은 열 시에 참새떼가 몰리지 않았다. 얼추 준비가 다 되어갈 때쯤 하나둘 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애들은 정말 말이 많았고, 웃음도 많았다. 정말 혼을 쏘옥 빼놓을 정도로, 광녀처럼  널 뛰었다. 더 받고 덜 받고를 확인한 틈도 없이 꼬마 손님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그렇게 참새떼는 온장고에 가득 담겨 있던 컵치킨을 시작으로 어묵과 떡볶이까지 채우기 무섭게 싹 쓸어 버렸다. 몇 시간이나 그렇게 팔았을까, 드디어 잠잠해지고 바로  맞은편 벽시계를 보니 오후 네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재료 소진으로 더는 팔 수도 없었고, 고작 몇 개의 튀김과 생각보다 인기 없는 컵밥만이 남아 있었다.



초토화된 가게를 보고, 지콩과 영숙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은 말없이 서로를 수고했다고, 안아주고 있었다. 지금 이 선택을 잘했다고, 말없이 서로를 칭찬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노동이었다. 오는 손님마다 웃고 있었기 때문일까, 다들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어서일까, 일에 스트레스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다. 내일은 재료를 따블로 준비하자며 오픈 첫날은 일찌감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엄청 바쁜 것에 비해 역시나 돈은 그리 되지 않는 장사였다.





- 아이언 맨 -

“ 아줌마, 아저씨, 아까 점심때 왔는데 저는 컵치킨을 못 사 먹었어요. 지금도 못 사 먹나요?”


아이언 맨 가면을 쓰고 검을 찬 아이가 텅 비어 있는 치킨전용 온장고를 보고는 정중하게 컵치킨을 강력하게 사 먹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였다. 비어있는 온장고를 보고 몹시 실망한 표정이 가면 밖으로도 느껴질 정도였다.  영숙은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 고기전용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 한 컵은 너끈히 나오는 양의 순살이 남아 있었다.



“줄 수는 있는데 십오 분 정도 기다려야 해. 괜찮겠니? ”



아이는 기쁨의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들어올 때부터 지켜보던 지콩이 참지 못하고 입은 댄다.



“ 어이~ 아이언맨, 왜 가면 쓰고 있냐? ”


“ 그냥요. ”


“ 그 검은 뭐야? ”


“ 그냥요. “


“ 가면에, 검에, 목도리까지 안 답답하냐? ”


“ 아니요. 전 이게 안전하게 저를 지켜줘서 좋아요. ”


" 그래, 그럴 수 있지. 블랙 위도우 만나면 삼촌이 보고 싶다 한다고 전해다오. "


드디어 기다려던 컵치킨을 들고 영숙이 주방에서 나왔다. 이상한 차림의 아이언 맨에게 영숙이 컵치킨을 건네며 마음에 없는 말을 건넸다.


“ 오오~ 검이 좀 멋있는데. 도복이랑 너무 잘 어울려. 친구들이 부러워하겠는데 “


영숙의 말에 아이언맨 가면이 씩 웃었다. 컵치킨을 받아 들고 가게를 나서는 아이언 맨의 뒷모습을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어른 영숙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언 맨의 뒷모습을 보며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뒤늦게 테이블 위에 오백 원을 발견했다. 급히 가게 밖으로 나가 아이언맨을 불렀다.


“ 아이언 맨~ 오백 원 놓고 갔어~~.”


아이언 맨이 뒤 돌아보며 소리쳤다.


“ 팁이에요~ 팁! ”


오백 원의 팁이 수지타산을 따지느라 잔가지처럼 흔들리고 있던 영숙의 마음을 꽉 잡아 주었다. 먹고 싶었던 치킨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던 어린 소년의 진심이 영숙의 마지막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어쩐지 처음 이 동네가 훅 들어오게 했던 꼬마들이 예사롭지 않터라니, 영숙은 자꾸 웃음이 실실 나온다.


참새 방앗간 오픈 첫날, 행복지수가 스물스물 올라가더니 오백 원이 상따를 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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